-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3. 10. 07:48728x90반응형
어제, 강의가 있어서 직접 차를 몰고 지방에 다녀 왔다. 상경하는 길에 라디오를 틀었는데, 유독 노래 한 곡이 귀에 감긴다. 노영심. 노영심을 기억하는가? 1989년,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해에 최고 인기 가수는 변집섭이었다. 쌍팔연도(1988년)에 데뷔한 변집섭이 가요계를 거의 '씹어 먹고' 있었는데,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던 노영심이 작사/작곡한 어떤 노래 덕분에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그 노래가 바로 '희망사항.'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헌데, 내가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는 이 노래가 아니었다.내가 들은 노래는 '희망사항' 답가라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였다. 1992년, 서태지가 데뷔한 해에 노영심도 솔로 가수로 데뷔를 했다. 그때 발매한 데뷔곡이 바로 이 노래. 남자가 좋아하는 여성을 품평하듯 늘어놓는 희망사항 가사 마지막 대목을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여보세요 날 좀 잠깐 보세요. 희망사항이 정말 거창하군요. 그런 여자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 이 가사 뒤에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여성판(!) 희망사항이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가사 내용이다.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노영심 작사/작곡)
나를 처음 본 게 정확히 목요일이었는지 금요일이었는지
그 때 귀걸이를 했는지 안 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 시시콜콜한 걸 다 기억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내 생일이나 전화번호를 외우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아요
내가 전화걸 때 처음에 여보세요 하는지 죄송합니다만 그러는지
번호 8자를 적을 때 왼쪽으로 돌리는지 오른쪽으로 돌려쓰는지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안에서 내 표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내 모습까지도 기억하는 남자
같이 걷던 한강 인도교에 철조 아치가 6개인지 7개인지
그때 우리를 조용히 따르던 하늘의 달이 초생달인지 보름달인지
우리 동네 목욕탕 정기휴일은 첫째 셋째 수요일에 쉬는지
아니면 둘째 넷째 수요일에 쉬는지 그걸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수많은 모습과 내 마음 속의 숨은 표정까지도
오직 나만의 것으로 이해해 주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내 새끼손가락엔 매니큐얼 칠했는지 봉숭아물을 들였는지
커피는 설탕 2스푼에 프림 한갠지 설탕 한개에 프림 둘인지
그런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을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하겠지만
아주 가끔씩만 내게 일깨워준다면 어때요 매력 있지 않아요
어릴적 동화 보물섬 해적선장 애꾸 잭은 안대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만화 주인공 영심이를 좋아하는 남학생이 안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
고깃집에서 내가 쌈을 먹을 때 쌈장을 바르고 고기를 얹는지
고기부터 얹고 쌈장을 바르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는 나를 일깨워 주듯이 볼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능력보다 소중하지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지난겨울에 내가 즐겨 끼던 장갑이 분홍색인지 초록색인지
그게 벙어리 장갑인지 손가락 장갑인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처음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던 날 어느 정류장에서 들리던 노래가
목포의 눈물인지 빈대떡 신산지 혹시 기억할 수 있을까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이 재치있는 가사를 들으며 운전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노래 가사도 글이라고 본다면, 이 글을 쓴 사람(노영심)은 글을 참말로 잘 쓴다. 어째서? (1)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스쳐 지나갈 일상 중에서 가사 주제와 관련된 작은 부분에 관심을 기울였고, (2) 그렇게 기울인 관심을 구체적인 예시 문장으로 다듬었으며, (3) 다채로운 예시 문장 위에 '사랑하는 여성이 보이는 미세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남성'이라는 의미(주제)를 부여했다. (역시, 글쓰기란 흩어져 있는 보석을 꿰는 작업이다.)
예시(例示)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설명 방법이다. 상대가 모르는 지식/정보를 내가 설명할 때, 언제나 쉽게 꺼내들 수 있는 전략이다. 너무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다. 오로지 예시만 들어 있는 글은 무척 지루하고 수준이 낮으리라 예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야말로 예시만 잘 구사해도 훌륭하게 글을 쓸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노영심 가사처럼, 우리는 사물을 관찰하고, 사례를 다채롭게 포착하고, 그 결과물을 주제에 연결만 잘 해도 아주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기본을 무시하지 말라.)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지식 공유하기(기타) >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합니다 (0) 2023.03.14 글이 위로가 될까요? (2) 2023.03.10 간결하면서도 풍성하게 글을 쓰는 비법: 상술(부연) (0) 2023.03.09 놀아줄 때, 잘 놀자! (0) 2023.03.08 불안과 함께 산다 (0) 2023.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