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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텐트도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든다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10. 2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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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트도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든다 

     

    글쓴이: 김정현 (안동성좌원 복지기획과 팀장, 2024)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벽장 안에 넣어둔 텐트는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도록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다. 이야기가 오래 묵으면 귀신이 된다던데, 내 불쌍한 텐트는 오래 묵어서 곰팡이 먹이가 되겠구나.

     

    부서 이동 후 업무를 다시 익히고 부서원들과 합을 맞추며 일을 처리하다 세 달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어느새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반드시 텐트를 치겠다 마음먹고 캠핑장부터 예약해 버렸다. 큰 행사를 눈앞에 두고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상황에 나를 맞추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행사에 필요한 계획서를 작성하고 부지런히 물품을 구입한 후 길을 나섰다.

     

    아침에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자 맑고 파란 하늘이 내 앞에서 길을 안내한다. 두 시간쯤 달려 울진 해변에 도착했다. 이 캠핑장은 카라반이 없이 데크만 30개 정도 있어서 내가 머물 데크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어릴 때 뛰어놀던 바닷가처럼 솔밭과 모래밭이 나란히 펼쳐져 있어 고향처럼 편안하다. 텐트를 치기 전에 잠시 의자에 앉아 열 걸음 앞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눈에 담는다.

     

    5시가 넘어가자 여기저기 저녁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해가 지기 전에 세팅을 마치려고 서둘렀다. 하지만 텐트를 오랜만에 치니 감이 떨어졌는지 쉽지 않다. 겨우겨우 이너 텐트를 치고 플라이 시트를 덮는데 입구가 어딘지 헷갈려서 가로세로 4미터가 덮는 시트를 펄럭거리며 이리돌리고 저리돌리느라 시간이 너무 걸렸다. 지친다.

     

    ‘원터치로 샀으면 이 고생을 안 했을 텐데……. 아니야, 이렇게 고생스럽게 집을 한 채 지어야 뿌듯하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음을 다독인다.

     

    다음은 타프치기. 가을에는 밤낮 기온차가 커서 밤이슬이 많이 내려서 아침이면 시트가 축축하게 젖는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서 물기를 말리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중고마켓에서 방수지붕용 타프를 사 두었다. 지난 봄에 장만했는데 이제 처음 꺼냈다. 막대기 두 개, 구멍 여섯 개에 줄 몇 개. 텐트치기에 비하면 식은 죽먹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기둥을 세우면 넘어지고 줄을 당기면 사방이 삐뚤다. 삼십 여분을 뱅뱅돌며 당기고 세우고 반복했더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여 저녁을 먹는다. 뒤편 솔밭사이에서 고기 구운 연기가 하필 내 자리로 날아온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온다.

     

    ‘한 명만 더 있어도 금방 끝냈을 텐데 뜨뜻한 집 놔두고 혼자 와서 이게 뭔 짓이냐……. 에이, 말을 줄이고 생각에 잠기기 위해 떠나온 길이잖아. 힘내.’

     

    한 시간이 넘게 텐트와 씨름하고 나 자신과 싸우고 나니 밥 먹을 힘도 없다. 벌써 이슬이 내리기 시작했는지 데크 위에 올려둔 가방이 축축하다. 이너매트를 깔고 짐을 집어 넣고 작은 버너와 코펠을 꺼내 물을 끓인다. 차 한잔 들고 모래사장을 걸으며 어두워진 바다를 바라본다. 멀리 반짝이는 집어등이 아니라면 어디까지 바다고 어디부터 하늘인지 구별할 수 없다. 바람이 잔잔해서 늦가을치곤 밤공기가 차지 않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재잘거리고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어른들 그림자가 일렁인다. 낯모르는 이들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정한 이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늦도록 밖에 앉아 있는다.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모두 문을 닫고 들어가자 텐트도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든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텐트 사이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나도 침낭 속에 몸을 눕힌다. 아마 내일 아침에는 일찍 눈을 뜨겠지. 모자를 눌러쓰고 모래밭에 앉아 일출을 봐야지. 이 고요와 평화에 감사하면서.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김정현 팀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김정현 팀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서사문을 시처럼 근사하게 쓰셨네요. 김정현 선생님 문장에는 비유적 표현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요. 그런 문장을 손에 쥐고 힘을 뺀 채 그냥 슥슥 휘둘러 그리시는데 그림이 참 곱고 아름답습니다. 원래도 그물이 촘촘했는데 이번에는 그물코가 더욱 잘고 촘촘해서, 글을 읽는데 웅크려 자는 텐트와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듯 생생합니다. 

     

    2. 어떻게 글을 쓰셨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두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네모 프레임 안에 잡힌 피사체를 솜털까지 잡아낼 듯, 눈을 들어 주변 모든 사물을 따갑게 관찰하셨겠지요. 그리고는 그렇게 축적하신 시각 데이터를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언어 데이터로 따박따박 번역하셨겠지요. 이렇게 촘촘하게 쓰시려면 따가운 관찰력과 정확한 번역 능력이 필요합니다. 

     

    3. 처음에 이 글을 읽을 때는 약간 나른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고쳐 읽어볼수록, 뭔가 탁한 느낌보다는 투명한 느낌이 드네요. 그래서 여쭈었습니다. '어떤 느낌으로 캠핑을 하셨고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셨냐'고요. 김정현 선생님께선 이렇게 답하셨죠. '생각도 많이 안 하고 그냥 순간에 충실했어요' 라고요. 답변을 들으니 저는 '명상'이 떠올랐습니다. 부지런히 계속 뭘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냥 뒤로 물러서서 행동과 행동 사이에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관찰하는? 

     

    4. 한 마디로, 이 글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마음은 뒤로 슬쩍 숨기고 다 쓰지 않으셨지만, 글을 깊이 읽으면 비에 젖는 옷소매처럼 한 방울씩 매달리는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고요'와 '평화' 속에서 일출을 보며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셨을 듯 하여 기쁘네요. "아직도 답을 찾고 있어요" 라고 말씀하셨는데, 언젠가 답을 찾으시길 기원합니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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