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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 말 없이 안아주세요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5. 6. 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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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아무 말 없이 안아주세요

     

    글쓴이: 송주연(교육복지사, 2025) 

    첨삭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5)

     

    교육복지사가 되어 고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발령 첫해 만난 연우(가명)는 올해 졸업했는데, 몇 달 만에 나를 찾아왔다. 연우는 담임선생님이 도움을 요청하셔서 처음 만났다. 연우는 또래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고, 관계로 힘들어했다. 학교를 등교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우울증이 깊었고, 자해까지 시도했다.

     

    연우 손목엔 항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보였다. 그리고 매번 상처가 낫기 전 새로운 상처가 생기고 피부엔 흉터가 남았다. 연우 손목에 감긴 붕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연우와 가까워지고 싶어 바쁘지만 틈을 만들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같이 식사하고, 어떤 날은 함께 산책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우가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연우는 아버지, 작은 형과 살았다.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큰 형은 어머니가 데려갔다. 아버지는 일하느라 바쁘셨고, 연우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어린 아이였던 연우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에게 만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거절했다. 그래도 연우에겐 할머니가 있어 괜찮았다.

     

    연우는 할머니를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2년 뒤 할머니 건강이 안 좋아지셨고, 어쩔 수 없이 따로 살다가 얼마 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연우는 거절당하고 빼앗기면서 살아낼 힘을 잃어갔다. 차라리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우를 알고 나니 연우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사람을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우울과 무기력이 밀려오는 순간에도 학교에 나오려고 노력하는 연우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연우를 만날 때마다 연우가 노력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격려했다.

     

    연우가 “이번 주는 3일이나 안 나왔는데요.”라고 말하면, “그래도 2일이나 나왔네. 장하다. 네가 학교에 나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라고 격려했다. 연우가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때마다, 얼마나 강점이 많은 사람인지, 얼마나 선한 인품을 가졌는지,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그때마다 연우는 “제가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우가 어느 날 자해했다. 연우 오른쪽 손목에 상처가 보였고, 연우에게 물었다. 연우는 감정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터지면 자해했다. 자해하면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우는 자해하지 않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연우가 자해하지 않기 위해 그만큼 노력하는지 몰랐다. 그동안 고군분투하며 버텨온 연우에게 고마웠다. 그래서 연우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상담 끝에 연우는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 누구라도 저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면 좋겠어요.”

     

    연우는 조언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면 충분했다. 나는 연우를 토닥이며 안아줬다. 그리고 연우가 감정을 쌓아두지 않고 풀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연우가 지역사회에서도 지지를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우 동의를 받고 상담센터와 종합복지관에 연계했다. 연우가 인복이 있는지 좋은 상담사, 좋은 사회복지사를 만났다.

     

    그러자 연우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후배들과 친해졌다. 같이 웃고 떠들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조언도 해주었다. 연우는 내가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함께 들어주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뒷정리를 도와줬다. 연우는 당당히 말했다.

     

    “제가 선생님 첫 제자잖아요.”

     

    연우는 그동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는데, 대학 입시에 도전했다. 자신이 전보다 더 밝아졌다며 스스로 변화를 느꼈다. 연우가 웃으면서 학교를 졸업할 수 있어 기뻤다. 연우는 성인이 되더니 더 성장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했다. 키도 좀 컸을지도?

     

    연우는 씨익 웃으며 양쪽 손목을 내밀었다. 상처가 흐릿해졌다. 온전히 아물었다. 나는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연우를 만나면서 극적으로 변화하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연우가 자해하는 주기가 조금 더 길어지기를, 조금이라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기를, 학교가 조금 더 즐거워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연우는 내 기대를 넘어 더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내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졌구나.

     

    아이들은 가능성을 실현하는 힘을 가졌다. 그 사실을 종종 잊을 때마다 내 첫 제자를 떠올린다. 지금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힘이 있겠지. 나는 그저 아이들이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하고, 꼬옥 안아줄 뿐이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글을 내시면서 송주연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번 글은 좀 길어요. 한글 파일로 2쪽 정도 되더라고요.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요약 능력을 상실했나 봅니다." 그래서 읽어 봤는데... 아뇨, 전혀 길지 않던데요. 대단히 짧았어요. 오히려 글에 쓰신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은 사연을 슬며시 숨기셨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신기했어요. 간결하게 요약해서 쓰셨는데,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 존중하고 공감했는지 속속들이 다 읽은 듯했습니다. 맞아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쉽게 부리는 마법을 송주연 선생님께서도 부리셨습니다. 우리가 초점을 뚜렷하게 잡으면 어떤 글을 쓰든지 전부 쓰지 않아도 전부, 혹은 그 이상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곱게 접은 종이학 천 마리, 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송주연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송주연 선생님께서는 사회복지사 자기-돌봄 글쓰기 클럽,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세 줄 일기, 이렇게 씁니다(다양한 사례와 원리)>

     

    세 줄 일기, 이렇게 씁니다(다양한 사례와 원리)

    이재원 선생, 세 줄 일기 2024년 8월 21일 수요일. (날씨: 낮에 비.)  (누가/무엇) 1. 오늘도 딸과 함께 다이소에 다녀왔다. (내용/의미) 2. 뽀로로 스티커북과 풍선을 샀다. 합쳐서 4천원. (감정/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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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세 줄 일기 워크샵', 후기>

     

     

    첫 번째 '세 줄 일기 워크샵', 후기

    최유나 사회복지사 세 줄 일기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날씨: 하늘 하늘 맑다(누가/무엇) 1.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내 책상에 하트 색종이를 붙여주었다.(내용/의미) 2.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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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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