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아니 글쎄, 당신이 나를 거의 밀었다니깐

또치-01 2023. 8. 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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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니 글쎄, 당신이 거의 나를 밀었다니깐!

그녀: 말도 안 돼욧! 내가 언제 그랬어요?


그녀는 내가 가르친 학생이었다. 나는 2020년 3월부터 약 10개월 동안 해결중심상담을 가르치는 온라인 클래스를 소규모로 진행했다. 그녀는 이 클래스에서 내게 해결중심상담을 배웠다. 음... 첫 인상이 무척 좋긴 했다. 우리 클래스는 메신저 그룹 통화 기능을 활용했기에 수업 중에는 늘 음성만 들었지만,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 잠깐 화상 통화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얼굴을 처음 보았는데, 홀딱 빠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왠지 잊혀지지 않았달까. '목소리도 곱고, 얼굴도 곱구만!'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 그렇지. 초기에 그냥 막연하게 호기심이 들어서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열어 봤다. 그냥 평범한 사진이 많았는데, 중간에 그녀와 닮은 아이 사진이 두 장 보였다. '아~ 딸인가 보네.' 그런데, 온 가족이 나오는 사진은 안 보여서, 아마도 남편 사진을 안 올렸거나, 이혼했다고 추정했다. 솔직히, 관심이 아예 없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딸처럼 보이는 아이 사진이 보여서 초장부터 마음을 접었다고 말해야겠다. 김칫국을 마시고 싶진 않았으니까. 학생에게 관심을 품고 껄덕대는 듯 보이기는 정말로 싫었다. 

 

그래도 운명은 운명이었다. 6월 경에 그녀가 내가 잘 아는 분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꼭 만나 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분을 잘 안다고 말했고,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녀는 좋다고 말하기에 7월 중순에 만나는 약속도 잡았다. 헌데, 내가 연결해 주기로 한 분이 지방으로 장기 여름 휴가를 떠나셔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만날 건수가 사라진 셈인데, 나는 메신저로 그녀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그냥 재미있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이 대화했다.  


7월 25일, 토요일. 아침.


며칠 동안 거의 밤을 새워 가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에 그녀는 직장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갔는데, 함께 동행한 부하 직원들이 '팀장님은 도대체 누구랑 그렇게 필담을 나누시냐?'며 핀잔을 줄 정도였단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냥 한 번 만나도 괜찮겠다 싶었다.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젠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눠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녀도 좋다고 답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한 터라,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자고 말했다.

 

우리는 잠실 롯데월드 쪽에서 만났다. 그녀는 흰 티셔츠에 치마를 입고 나왔는데, 무척 곱고 단아했다. 실물은 처음 봐서 조금 긴장되었지만, 데이트는 아니었기에 빈 마음으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 근처 레스토랑으로 가서 맥주를 마시면서 파스타를 먹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프로필 사진 속 아이는 '조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자가 혼자 살면, 의미 없이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이 많아서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상당히 의도적으로 조카 사진을 올려 놓았단다.

 

그런데 파스타를 먹다가 목에 얹힐 뻔한 순간이 왔다. 너무나도 멋진 말을, 그녀가 내놓았다. 먼저 첫 번째 말: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같아요. 그동안 혼자서 지내면서 저 자신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 말: "저는 사회복지사가 천직 같아요. 성인여성발달장애인을 돕는데, 저에게 딱 맞는 일이라서 좋아요. 정말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 왔어요." 이 말을 하는 그녀 눈을 들여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눈빛을 내뿜었다. 그래서 참말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산들 바람이 불어오는 석촌호수. 산책.


7월 말이니 한참 더울 시기였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시원하게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그 바람을 뺨으로 느끼면서 석촌호수 산책길을 걸었다. 나는 원래 산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평생 최고로 재미있는 책을 '산책'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단언컨대, 이날 산책길이 내가 평생 걸었던 산책길 중에서 최고였다. 그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었다. 나는 이혼한 이야기를 포함해서 힘들게 살았던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귀를 기울이는 그녀. 

 

그런데, 약간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녀가 걸으면서 자꾸 내 쪽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부지불식간에 나에게 다가와서 서로 팔뚝이 닿을 뻔한 상황도 생겼다. 이미 썼듯이, 이 만남은 결단코 데이트는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가 느끼지 못하도록 조금씩 내가 걷는 궤도를 옮겼다. 말하자면 계속 길 한쪽으로 내가 몰렸기 때문에(?), 결국 나는 사람들이 많이 앉은 계단형 스탠드 쪽으로 걸어가서 앉았다. 우리는, 시원하게 한 여름 바람이 불어오는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웃으면서 헤어졌다.

 

분명히 그린 라이트였다. 아니라면 처음 만난 남자 쪽으로 돌진(?)했을 리가 없다. 우리가 결혼한 계기를 꼽아 보자면 꽤 많겠지만, 나는 굳이 이날 그녀가 나에게 다소 격하게(?) 다가온 일을 꼽겠다. 그녀는 결혼한 적 없는 아가씨였는데, 아무리 마음에 들었어도 이혼한 내가 함부로 들이댈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길 한 쪽으로 미는듯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르게 우리 관계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 우리가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만난지 단 4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겠는가. 우린 운명!


나: 아니 글쎄, 당신이 거의 나를 밀었다니깐!

그녀: 말도 안 돼욧! 내가 언제 그랬어요?


글쎄, 아니란다. 죽어도 아니란다. 결혼한 후에 이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아내가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서 완전 아니라고 부인했다. 아니, 만약에 그런 일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나 또렷하게 기억하겠냐고, 나는 당신이 좋았는데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조심했기 때문에 당신 행동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고, 까지 말했는데도 부인했다. 허허... 어쩔 수 없지. 이렇게까지 아니라면 내가 착각했겠지. 그래도 좋다. 나는 분명히 당신이 좋았고, 심지어 끝내주게 멋있어 보였으니까. 

 

우리 가족은 둘이 시작했는데, 이젠 셋이 되었다. 우리 둘 다 아이를 원했기에 결혼하자마자 산부인과에 갔는데, 의사가 바로 난임 클리닉을 소개해 주었다. 산모 나이가 많았기 때문(46세)이었다. 시험관 시술이 어렵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아내가 아침 저녁으로 배에 주사를 놓는 모습을 지켜보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어렵게 세 번째 시도해서 실패한 날, 우리는 서로 말은 안 했지만 대략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2021년 5월, 아이가 들어섰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정말로 '기적'이라고 칭해야 옳았다. 

 

딸이 태어나고 우리 삶도 많이 바뀌었다. 우리는 늙은(?) 부모. 부모가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으니 좋은 점도 무척 많지만, 신체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해서 쉽게 피곤해진다. 매일 아이에게 쏟을 에너지가 금방 바닥나니, 서로 관심을 기울이고 애틋한 마음을 확인할 힘이 달린다고 느낀다. 그래서 부부 사이도 전에 비해서는 소원해졌다. 하지만 오늘처럼 뜨뜻한 한여름 밤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엔, 나를 석촌 호수 쪽으로 조금씩 밀어내던(?!) 아내 눈빛이 다시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운명은 운명이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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