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에게 상담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이, 어느 날 문득 생각하다
사회복지사에게 상담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이, 어느 날 문득 생각하다
"안타깝지만, 그런 기술은 없어요. 있다면 저부터 배우고 싶어요."
나는 2005년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시민단체와 장애인 재활 관련 재단, 병원 및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고 난 후, 좀 더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2012년 대학원에 진학했다. 마침 지도 교수님께서 해결중심가족상담 전문가(전 해결중심치료학회 회장)이셔서 박사과정까지 해결중심상담을 공부했고 10년 넘게 임상 경험도 쌓았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귀인(양원석 선배)을 만나 함께 글을 쓰고 세상에 발표하면서 사회복지계에 이름이 조금 알려졌고, 결국 주로 사회복지사에게 해결중심상담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법과 기초상담 기술을 가르치게 되었다. 가족치료 업계에서 활동할 수도 있었지만, 학생들 피를 빠는 자격증 장사(?)를 하고 싶지 않아서, 추가로 자격증을 딸 필요가 없는 사회복지사에게 상담기술을 가르쳤다. (아, 내가 워낙 사회사업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널리 알려져 있는 해결중심 질문 기술을 내가 배운 대로 가르치려고 애썼다. 사회복지사 동료들도 기적질문이나 척도질문 등 여러 가지 해결중심 질문을 열심히 배우고 싶어하는 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려고 해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나는 질문 기술을 배우려고 10년을 투자했고 미친듯이 공부했는데, 단 몇 시간 만에 해결중심상담에 대해서 개념을 가르치고 실질적인 질문 기술도 가르치려니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짧게는 3시간, 길어도 7시간 짜리 대중 강연 외에, 중/장기적으로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개인 클래스를 열었다. 그동안 상담에 관심있는 사회복지사 수십 명에게 3개월부터 10개월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중심 질문 기술을 가르쳤다.
나는 학생 시절, 거의 '목숨을 걸고' 해결중심상담을 배웠다. 농담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참담한 일을 겪은 후에 약 5년 동안 백수로 살면서 거의 유일하게 한 일이 해결중심상담 공부였다. 돈 한 푼 못 버는 룸펜 녀석이 해결중심 관련 원서를 150권(500만원 상당) 사서 무차별적으로 섭렵했다. 고3때 이렇게 공부헀다면 서울대, 아니 하버드도 갔을 정도로 무섭게 파고 들어서 공부했다. 해결중심치료학회장을 역임하신 내 지도 교수님께서도 혀를 내두르실 정도로 깊고 넓게 공부했다. 해결중심상담 뿐만 아니라 인접한 상담 모델이나 이전 모델까지 두루 공부했다. 공부도 공부지만 10년 동안 꾸준히 가족 상담 경험을 쌓으면서 공부한 내용을 철저하게 적용하려고 애썼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면으로 보나 해결중심상담을 가르칠 자격이 충분히 된다. (여전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계속 벽에 부딪혔다. 처음에는 실체를 알지 못했다. 이 벽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모양인지, 어떤 색깔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저기 어딘가 뭔가 있긴 한데,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만 들었다. 구체적으로 본질을 말하자면, '적용 가능성'이었다. 나는 사회복지사 동료들에게, 내가 보유한 전문성을 다 바쳐서, 정말로 이해하기 쉽게, (때로는 장기적으로 충분히) 가르치는데, 학생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해결중심 질문 기법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열심히 가르쳤는데, '적용할 수 없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때부터 상담 모델을 잠시 벗어나서 구체적인 적용 맥락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유컨대, 장인이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최고급 의자를 만들면 뭐하겠나? 이 최고급 의자로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 적용 맥락이 너무 달랐다. 해결중심상담은 어디에서, 누가, 왜 만들었나? 미국에서, 사회복지 전문대학원을 나온 사회복지사(영어로는 'social worker'이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심리치료사'라고 칭해야 옳은)가 스스로 자기 돈을 내고 상담을 받으러 오는 (그러므로 상당히 적극적인) 클라이언트를 도우려고 만들었다. 그리고 가족상담은 왜 받는가? '관계' 문제가 본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본적으로 (가족) 관계 문제는 경제적인(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다. 해결하는데 돈이 별로 필요 없다. 그렇다면 해결중심상담을 적용하려는 한국 사회복지 현장은 어떤가? 자기 돈을 내고 자발적으로 찾아오기는커녕, 상당히 비자발적으로 사회복지사를 만나는 클라이언트가 호소하는 경제적인 문제에 주로 개입한다. 현실적인 자원이 부족하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개입한다는 말이다.
이런 현실적인(결국 돈)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서 해결중심상담을 배우니, 맥락이 애초부터 안 맞는다. 위에 적은 비유를 다시 적겠다. 장인이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최고급 의자를 만들면 뭐하겠나? 이 최고급 의자로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기에서 장인은 사회복지사, 최고급 의자는 해결중심상담이고, 병원은 사회복지 현장, 수술받을 환자는 사회사업 클라이언트다.) 다시 말하자면, '관계 문제'를 개선하려고 만든 해결중심상담을 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회사업 클라이언트에게 적용하면, 서로 맥락이 맞을 수가 없고, 그래서 효과가 없거나 있어도 별로 크지 않다는 뜻이다.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삽으로 바느질을 할 수 없고, 공방에서 사용하는 바늘로 공사장에서 모래를 뜰 수 없는 이치다. 그래서 나는 이 맥락 차이를 공부해서 강의 중에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편, 나는 사회복지사에게 해결중심상담을 가르치면서 두 번째 벽에 부딪혔다. 바로, 사회복지사는 사실상 상담 자체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해결중심상담은 상당히 고급진 상담 모델이다. 오랫동안 제대로 배우고 실전 경험을 충분히 쌓아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해결중심상담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받아 막상 기관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놀랍게도 사회복지사 동료들은 기본적인 상담 능력이 부족했다. 방금 '놀랍게도'라고 썼지만, 실은 당연하다. 사회복지사는 거의 대부분 학교시절에는 실천론이나 실천기술론 시간에 상담이 어떤 것인지 개념적으로만 이해하고, 졸업해서는 맨땅에 헤딩하면서 혹은 (그래도 운이 좋으면) 상담을 잘하는 선배들 어깨 너머로 상담 기술을 배운다.
건물짓기에 비유해 보자. 어떤 건물을 지을 때, 기초 공사를 안 하고 3층을 지을 수가 있을까? 나무를 키우는데, 뿌리를 충분히 내릴 때까지 기다리지 안고 열매를 따 먹으려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가능할까? 아니다. 그런데 (상담 교육과 관련해서) 사회복지사 동료들 상황은 딱 이렇다. 뿌리(상담 기초 기술)가 허약한데, 열매를 키워서 수확하겠다(고급진 해결중심상담 질문 기술 학습)고 나선 모습.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고급진 내용을 가르친다고 해도, 실제로는 제대로 써 먹을 수가 없다. 예를 들면, 클라이언트가 닳고 닳은 레퍼토리를 돌려 대며 장황하게 말을 하는 상황에서, 사회복지사가 가장 기본적인 상담 기술인 '요약 기술'을 모르는데, 뭔가 고급진 개입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상담 기초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회복지사에게 상담을 가르치면서 세 번째 벽에 부딪혔다. 바로 '한국 클라이언트가 품은 대단히 독특한 비자발성'이었다. 사회사업 현장에서 상담을 어려워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상담 기술을 많이 못 배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아닐 수도 있다. 사회사업은 학식이나 정보나 기술보다는 인격과 심장과 지혜로 하는 것이니까. 어쨌든, 아무리 상담 기술이 뛰어나도 뛰어 넘기 어려운 현실이 존재한다. 사회복지사를 피하고, 안 만나 주고, 대답도 잘 안 하고, 답해도 단답형으로 답하는,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 사회복지사가 아무리 뛰어난 선생에게 상담 기술을 배워도, 아예 상대를 안 해 주는 클라이언트 마음을 열어 제끼기는 어렵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는 백 번을 찍어도 꿈쩍도 안 한다.
그래서 나는 '비자발성'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선 한국 자료를 찾아 봤다. 놀랍게도 자료가 거의 없었다. 사회복지사가 가장 많이 만나는 클라이언트는 거의 비자발적인 사람인데, 사회사업 실천 기술 자료는 거의 자발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클라이언트로 전제하고 기술되었다. 해서, 외국 자료를 찾아 보았다. 다행히 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보였다. 외국에서는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를 '법적인 의무 때문에 강제로 사회복지사를 만날 수밖에 없는 클라이언트' 정도로 규정하는 듯했다. 예컨대, 전과자나 가정폭력 가해자처럼. 그러니까, 한국 사회복지사가 자주 만나는, 우리를 만날 의무는 없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 대단히 '한국적인' 비자발적 클라이언트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있는 자료가 (외국에도) 별로 없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세 가지 벽. 모두 나에게는 너무 높게만 느껴졌다. 현장 사회복지사에게, 정말 가치가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상담 교육을 해 보고 싶은 선생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어려운 벽이었다. 그런데, 내가 꺼낸 벽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다. 마지막 끝판왕이 남았다: 평가 그리고 실적. 한국에서 사회사업은 독특하게 발전했다. 사회복지 서비스 대부분을 민에서 전달하는데, 돈줄은 관에서 쥐고 있는 형국. 사회복지사는 대부분 민간인인데, 운영 자금은 세금으로 충당하는 상황. 사회복지사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책임성을 요구받는다. 특히, 거의 모든 사회복지사가 종속되어 있는 구조가 바로 평가, 그리고 실적이다. 세금을 썼으니 관리와 감독이 들어올 수 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관리와 감독이 양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중간을 생략하고 상담과 관련해서 사회복지사가 경험하는 말단을 묘사한다면, 결국 사회복지사는 평가와 실적에 쫓겨서, 클라이언트를 여유있게 만날 수가 없다. 사람을 돕는 일인데, 사람을 숫자로 매겨야만 현실을 유지라도 할 수 있다. 내가 상담 기술을 가르치면서 만난 사회복지사가 이구동성으로 해 준 말: "정해진 시간 안에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뽑아 내야 하는 상황이라서,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술을 써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형편이다 보니, 사회복지사가 관심을 가지고 배우려는 기술은 죄다 '즉자적인 꼬임' 기술이다. 지금, 당장,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기술. 저 사람을 어떻게든 내 페이스로 꼬여서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는 기술. 30분 만에 라포를 형성하고 효율적으로 상담하는 기술.
"안타깝지만, 그런 기술은 없어요. 있다면 저부터 배우고 싶어요."
이 모든 현실을 인정하고 이해하면서도, 마음이 너무나도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30분 만에 라포를 형성하면서 빠르게 변화를 끌어내는 상담 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요구를 받을 때다. 가만 있자... 내가 배우고 사용했던 기술 중에서 그런 기술이 있었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우리는 엄연히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데, 사람 마음을 30분 만에 여는 기술이 어디 있겠나. 혹시 있다면, 내게 알려 달라. 10억을 주고서라도 사겠다. 나부터 달려가서 줄 서서 사겠다. 그런 기술은, 다시 생각해도 없다. 정말로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없다. 그렇다면 동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첫째, 동료들과 연대해서 (적어도 직접적인 대인 서비스 만큼은) 평가를 철폐시켜야 한다. 둘째, 만약 평가를 없앨 수 없다면, 평가를 우회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쉽게 말하자면, 양적인 평가 시스템 때문에, 애초에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만나는 클라이언트를 구분해서, 정말로 우리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분들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수밖에 없다. 집중 관리 대상, 일상 관리 대상. 이렇게 나누는 구분도 참 모호하긴 하지만, 우리가 평가라는 우산을 쓰고 있는 한, 어쩔 수 없다. 복지관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쏟을 수는 없다. 사회복지사는 인간이다. 한계가 많다. 동료들께서 마음 속에 간직하신 진심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그래야 소진되지 않고 오래, (가급적이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이야기는 (잠정적으로는) 가치와 태도, 관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선택과 집중은 바로 가치와 태도, 관점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무엇을 선택하실 텐가.
그대는 무엇에 가치를 두실 텐가.
그대는 어떤 관점을 가지실 텐가.
2023년 10월 19일,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씀.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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