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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세 줄 일기' 교육 후기

또치-01 2024. 10. 3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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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고양시에서 장애인복지 종사자를 모시고 '세 줄 일기' 워크샵을 진행했다. 하루하루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분들이다. 간단하게 '세 줄 일기' 개념을 설명드리고 생생하게 예시를 보여 드리니, 곧바로 수작을 써 내신다.

 

<seul님, 세 줄 일기>

2024년 10월 29일, 화요일. 날씨: 바람따라 떠나고 싶은 날

(누가/무엇) 이틀 사이에 고구마 두 박스가 도착했다.
(내용/의미) 하나는 친정에서, 하나는 시댁에서 보내주셨다. 한 달 내내 고구마만 먹으란 거야?
(생각/감정) 어떻게 처리할지 살짝 짜증이 났지만, 감사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참 놀랍습니다. '세 줄 일기'라서, 정말로 딱 세 줄만 쓰셨는데, seul님은 물론이고 뒤편에 서 계신 양가 부모님까지 다 만나 본 듯 글이 풍성하고 생생합니다. 세 줄 일기를 쓰면 글 구조를 왜, 어떻게 세울지, 자연스럽게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 줄 일기로 뼈대를 잘 추려내면, 이야기 맥락과 역사도 배경에 은은하게 드리울 수 있습니다.


<세 줄 일기를 두 단락 글로 확장>

제목: 잘 먹겠습니다
글쓴이: seul님

이틀 사이에 고구마 두 박스가 도착했다. '조금만 보낸다'던 엄마 말을 이번에도 믿었는데, 커다란 박스를 보고 '역시나'를 외쳤다. 감기몸살을 앓느라 아파 죽겠는데 계속 전화해서 '고구마는 받았는지 쪄 먹어 봤는지' 물어 보신다. 출근길에 전화가 또 와서 "엄마, 쪄 먹어 보고 전화할게"라며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니 웬걸 커다락 박스가 또 하나 현관문 앞에 떡 하니 자리잡고 앉아있다.

이번 박스는 시댁에서 보내셨다. '한 달 내내 고구마만 먹으란 거야? 이 많은 고구마를 어떻게 처리하지?'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아들 녀석은 내 속도 모르고 고구마 맛탕을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 "어. 그래. 주말에 해 줄게." 적당히 둘러대고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짜증이 가라앉자 이게 무슨 복인가 싶다. 양가 부모님께서 고구마를 직접 기르시고 한 상자 가득 보내주실 정도로 건강하시니 참 감사하다. 자식들 먹으라고 꼼꼼하게 포장하고 꾹꾹 눌러 쓰신 주소를 보니 울컥했다. 잘, 먹겠습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보통, 아이가 어떻게 크나요? 키도 크고 몸집도 커집니다. 만약에 키만 커지면? 삐쩍 마른 멸치처럼 보이겠지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줄 일기를 쓰며 발굴/포착한 글감을 조금 더 늘려 쓰려면, 길이만 길어지면 안 됩니다. 키에 맞게 몸집도 커져야 합니다. 더 길어진 분량에 맞춰서 살을 잘 붙여서 밀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seul님께서는, 제가 가르쳐 드린 대로, 세 줄 일기 내용을 두 단락으로 늘리셨습니다. 우선, 세 줄 일기 첫 줄을, 두 단락 글 첫 단락에서 첫 문장으로 박아놓고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줄 일기 두 번째 줄과 세 번째 줄을, 두 단락 글 두 번째 단락에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문장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내용을 붙이셨습니다.

아, '대화 삽입' 테크닉을 꺼내 쓰셨네요. 상황을 설명하시면서 "엄마, 쪄 먹어 보고 전화할게", "어, 그래. 주말에 해 줄게" 라고 실제로 대화나누신 내용을 넣으셨잖아요. 글을 늘려 쓸 때, 우리 손에는 '세부 사항'이 들려 있어야 합니다. 경험을 세 줄 일기 안에 우겨 넣으려고 어쩔 수 없이 생략한 바로 여러 세부 사항 말입니다.

아직도 잘 모르시겠다고요? 자, 우선은 너무 억지로 늘리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늘려 쓰고 싶은 문장을 그냥 여러 번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까,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그러면 문장 속에 담긴 이야기가 그대에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그대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받아 쓰시면 됩니다.


<기타치는 튜브님, 세 줄 일기>

2024년 10월 28일. 날씨: 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날

(누가/무엇) 1. 가을밤에 가족과 함께 산책했다.
(내용/의미) 2. 작은 딸이 아기새처럼 쉬지 않고 조잘거린다.
(감정/생각) 3. 내년에 저 녀석 결혼하면 허전해서 어이하나.

[이재원 선생 피드백]

첫 줄부터 잘 쓰셨습니다. 시원한 가을 밤에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그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직관적인 그림을 꺼내셨어요. 추가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습니다.

두 번째 줄부터는 스르륵, 부드럽게 줌인하셔서 좀 더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아마도 함께 길을 걷는 작은 딸이 엄마 팔에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아기새처럼 조잘거렸나 봅니다.

세 번째 줄에 도착하니, 비로소 이야기 맥락이 보입니다. 조잘대는 아기새가 곧 결혼한다고요. 엄마는 건강하게 자란 딸이 기특하지만, 빈 둥지를 앞에 두고 벌써부터 마음이 허전해집니다.


<세 줄 일기를 두 단락 글로 확장>

제목: 허전해서 어이할까
글쓴이: 기타치는 튜브님

가을밤에 가족과 함께 산책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니 작은 딸이 감바스와 파스타를 근사하게 만들어 놓고 우리를 맞이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운동하기 위해 함께 가을 속을 걸었다.

작은딸이 오늘 남친과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풀어 놓는다. 저렇게 좋을까 싶어서 내 입가에 미소가 꽃처럼 피어난다. 이제 곧 너를 결혼시키고 아빠랑 둘이 이 길을 걷게 되겠지? 그래서 이 시간이 귀하고 귀하다. 너 결혼하고 나면 허전해서 어이할까.

[이재원 선생 피드백]

세 줄 일기를 두 단락으로 확장하는 기본 테크닉을 가르쳐 드렸더니, 곧바로 따라 오셨네요. 세 줄 일기 1번 문장을 두 단락 글 첫 단락 1번 문장으로 우선 박아 둡니다. 그리고 1번 문장을 들여다 보면서, 떠오르는 내용을 풀어 씁니다. 기타치는 튜브님께선 산책하기 전 상황을 자연스럽게 소개하셨네요. 퇴근하신 시점부터 산책 나가시는 시점까지 생긴 일을 적절하게 요약하셨어요.

그리고 세 줄 일기 2번, 3번 문장을 두 단락 글 두 번째 단락에 배치하고, 곰곰 들여다 보면서, 떠오르는 내용을 자연스럽게 풀어 쓰셨네요. 세 줄 일기에서는 그냥 딸이 '조잘댄다'고만 쓰셨는데, 두 단락 글에서는 '무엇을 조잘댔는지' 쓰셨어요. 아, 딸이 남자친구 이야기를 조잘댔군요. 이어지는 내용을 보니, 딸과 남자친구는 곧 결혼하는군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빈 둥지'를 떠올리셨죠.

사랑스러운 딸을 떠나 보내야 하니 마음이 벌써 몹시 허전하지만, 바로 그래서 함께 가을밤에 산책하는 이 시간이 더욱 더 소중합니다. 아마도 어머니, 아버지, 작은 딸은 올해 겨울에 하얗게 쌓인 눈길도 두근두근 걷으시겠지요.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년 봄에 딸이 배필과 힘차게 미래로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 보시겠지요. 괜찮습니다. 사랑하니까요. 새 생명과 돌아올 테니까요.

학생들에게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면 모두 입을 모아 말합니다. "너무 평범해서 쓸 이야기가 없어요." 아마도 특별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하지만 방금 우리가 기타치는 튜브님께서 쓰신 글을 읽으며 확인했듯이, 평범한 이야기도 잘 정리해서 투명하게 쓰면 특별하게 느껴진답니다. 특별한 이야기가 따로 있다고 생각지 마세요. 의미를 적절하게 부여하면 특별해집니다.


<나돌보기님, 세 줄 일기>

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날씨: 야호! 남편이 출장가서 홀가분한 가을 저녁

(누가/무엇) 1. 9살 아들 녀석, 나에게 40 인생 어떠냐 묻는다.
(내용/의미) 2. 딸과 아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대답하고 너는 어떠냐 물었다.
(감정/생각) 3. "살 만해요." 띠용!

[이재원 선생 피드백]

나돌보기님께서는 남편이 출장 가서 홀가분한(?) 저녁에 생겼을 무수한 작은 사건 중에서 아드님과 재미있고 따스하게 나눈 대화 내용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아들과 나눈 대화 내용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목만을 잘라서 딱 세 줄로 '요약'하셨다.

글을 쓸 때는, 펜을 들어 실제로 쓰는 행동보다, 쓰기 전에 잠시 생각하면서 내용을 가려 뽑고 '선택'하는 행동이 훨씬 더 중요하다. 생각은 무한하지만 지면은 정해져 있으니, 적절히 선택해야 글을 쓸 수 있다. 나돌보기님, 핵심을 정말 잘 선택하셨다!


<세 줄 일기를 두 단락 글로 확장>

제목: 저, 살 만해요
글쓴이: 나돌보기님

내겐 12살 딸과 9살 아들이 있다. 어제 밤, 느닷없이 아들이 내게 묻는다. 엄마, 질문이 있어요. 엄마 40살이에요? 40살 인생은 어떠세요?” 방 정리를 하다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문이 막혔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누나와 너가 있어서 행복해. 너는 9살 인생 어떠니?” 아들이 어떻게 답할지 기대가 되었다. “저요? 저 살 만해요.”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사랑스런 아들 덕분에 오늘도 행복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세 줄 일기는 어디까지나 일기이므로 일반 독자를 크게 고려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야기 배경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누가 무엇을 했다'라고 쓴다. 하지만 두 단락부터는 제목이 붙으면서 정식 글이 되므로 독자를 상정해야 한다. 느닷없이 본 이야기부터 꺼내면 안 된다는 말씀.

2. 글쓴이는 첫 단락을 '내겐 12살 딸과 9살 아들이 있다'라고 쓰면서 시작했다. 그러니까 글쓴이는 독자에게 '저는 엄마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과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아들)을 소개했다. 누굴 처음 만나면 인사하고 소개하듯이, 글로 처음 만났으니 인사하고 소개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3. 이어서 글쓴이는 세 줄 일기에 쓴 대화 내용에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맥락을 덧붙인다. 아들은 '느닷없이' 질문했고, 엄마는 '방을 정리하다가 웃으면서 말문이 막혔다.' 엄마는 아들 질문에 답하면서 특정한 답변을 '기대했고', 기대한 답변이 나오자 '아들을 뿌듯하게 느끼면서 행복해했다'.

4. 대체로, 글쓰기 초심자는 글을 쓸 때, 생각나는 대로 무조건 많이 쓰고 난 후에 우왕좌왕 초점 없는 결과물을 들여다 보고 당황스러워한다. '내가 썼는데, 내가 읽어도 뭘 썼는지 잘 모르겠네...' 그러면 자신감이 떨어져서 글을 안 쓰게 되고, 안 쓰니까 계속 못 쓰는 악순환 함정에 깊숙이 빠진다.

5. 단언컨대, 글은 '표현'이 아니라 '구조'다. 시적인 표현이 잔뜩 들어간다고 좋은 글이 되지는 않는다. 쓰기 전에 잠시라도 생각하면서 무엇을 쓸지 초점을 분명히 정하고, 기본 뼈대를 견고하게 세운 후에, 적절하게 살을 붙여야 한다. '세 줄 일기'는 이 과정을 부담 없이 연습할 수 있는 도구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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