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평생 본 연극 중 최고 작품
2024년 11월 24일, 일요일. 결혼 기념일 주간을 맞이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무려 세종문화회관(M 씨어터)에 연극을 보러 갔다. 아이는 장모님께 안전하게 맡기고, (잠시나마) 오붓하게 둘만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광화문에 데이트하러 나왔으니,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장에 일찍 도착해서 시간도 넉넉히 남았다. 그래서 어깨로 따땃하게 흘러 내리는 햇볕 속을 누비며 산책했다. 특별한 일 없이 그냥 걸었는데도, 덕수궁 돌담길은 충분히 로맨틱했다. 아내 팔이 스스륵 내 품을 파고 들어서 팔에 단단히 감겼다. 행복했다.
한 달 전쯤, 한겨레 신문 문화면에 연극 '퉁소소리' 개막 소식이 실렸다. 처음에는 팔순을 넘기신 노배우 이호재 선생께서 나오신다고 해서 관심이 생겼지만, (각본과) 연출을 맡으신 고선웅 선생이 매우 유명하시다길래 연출력이 과연 어떤지 궁금했다. 티켓값이 꽤 높았지만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다. 기사를 읽자마자 바지런히 움직였더니, 상당히 앞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우리 사모님께서는 상당히 알뜰하시지만, 또 이렇게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에는 가치가 있다고 믿으셔서, 고맙게도 부드럽게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행복했다.
오후 3시 정각에 연극이 시작되었다. 인터미션 시간 포함해서 총 150분 동안 극이 이어졌는데, 마치 1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내가 50년 동안 본 온갖 연극 작품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구체적인 이유는? 첫째, 극이 전체적으로 아름답고 우아했다. 연극을 보면서 처음으로 연출자 손길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중심 이야기부터 각종 세부 사항까지, 연출자가 극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둘째, 극이 자연스럽게 해학적이었다. 꽤 여러 번, 모든 관객이 신나게 웃었는데, 전혀 억지스럽지 않았다. 말장난을 치거나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서 웃기려고 하지 않았다. 셋째, 전체적으로 연기 앙상블이 매우 훌륭했다. 오랫동안 제대로 훈련받은 연기자들이 정교하게 합을 맞춰서 말하고 움직이니, 잘 정비한 기계가 돌아가듯 극이 착착착 이어졌다. 넷째, 무대 위 장치 및 미술이 매우 고급스러웠다. 이야기가 국제적으로 펼쳐지면서 온갖 장소가 등장하는데, 각 장소를 관객이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무대를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꾸몄다. 다섯째, 주제가 명료해서 좋았다: '끈질긴 가족애, 그리고 평화.' 연출자는 정유재란 이후 시대를 힘들게 살아낸 민초들을 보여주면서, 조용한 희망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와 함께 연극 내용을 반추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나에게, 결혼 기념일을 제대로 기념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행복했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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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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