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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오늘: 3일만에 깨달았다

또치-01 2020. 7. 1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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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라시아 대륙 끝 지점까지 내 발로 걸어가 봐서, 딱히 답이 안나오면, 콱 죽어 버리려고 했다.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산한 상태라서, 어차피 이대로 있다가는 말라 죽겠다 싶었다. 3주 만에 20kg이 빠진 상태였다. 물만 겨우 먹을 수 있었다. 3일 동안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배도 고파왔다. 고프다가 아프다가 했다. 그런데 3일째가 딱 지나니까 신기하게도, 서서히 배고픔이 사라졌다. 날이 갈수록 정신이 오히려 또렷해지고 명료해졌다. 진짜, 살만 했다. 

 

그러다가 질렀다. 갑자기 산 프랑스 행 비행기표. 125만원 짜리. 평상시 같으면 2, 3개월 전에, 싸기로 유명한 러시아 항공으로 구입해서  95만원이면 충분했을 터인데. 내 사정이 그만큼 절박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스페인 접경 지역으로, 생장, 이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마을, 그곳에 위치한 작은 여행자 숙소까지. 나는 계속 혼자였다. 혼자 걷는 길이 이미 익숙했다. 이 낯선 땅에서 한 달 동안 걷게 되면 최소한, 찌그러지고 구부러진 내 삶이 정리될 거라고 기대했다. 

 

어라? 그런데 외롭지가 않았다. 길 위에서 사람들이 끝없이 다가왔다. 나에게 말을 붙였다. 허락도 안한 내 마음 문을 툭, 하고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마구 휘젓고 다녔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사람들에게 삐쳤는데, 그래서 심각한 척 하고, 외면하고, 짜증내고 기분 나빠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다가온 그가 좋고, 막 이야기 하고 싶고, 함께 걸어가고 싶을 때. 그러고 보니 여기는 내가 예상했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나를 혼자서 걷게 두지 않는 곳이었다. 

 

저 사진은, 걷기 시작한 지 3일째 되던 날, 알베르게(저렴한 순례자 숙소) 2층 침대에 누워서 스스로 찍은 사진이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에, 삐그덕 거리는 침대 위에 몸을 얹고 내가 나를 찍었다. 사실은 그리 오래 누워 있지는 않았다. "쓰레빠 짝"을 찍찍 끌고 마을로 나가서 허름한 맥주집 야외 자리에 앉아서 스페인 맥주를 한 잔 들이켰다. 그리고 내일부터 나도 사람들에게 다가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들이 열어제끼던 마음 문, 나도 열고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요즘 드는 생각:

 

"히유... 그때 죽었으면 어쩔 뻔했냐? 이 좋은 때를 두고 말야."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