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치과랑 친하게 지내자
이젠, 치과랑 친하게 지내자
이재원(2023)
"치과랑 안 친하시죠?"
이가 또 깨졌다. 바로 임플란트 심으라고 할까봐, 돈이 억수로 들어갈까봐, 살얼음 위를 소곤소곤 걷듯 살았는데, 방금 엎어져버렸다. 이젠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치과에 가야겠다. 그런데 깨져도 하필이면 아이 돌잔치 도중에 깨지냐. 맛있는 고급 회가 눈 앞에 있는데, 거의 제대로 손도 못 댔다. (시바.)
2014년 여름, 고통스럽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피하고 도망다니다가, 결국 법정까지 끌려나왔고, 허망하게 관계가 끝장났다. 그 뒤로 나는 암흑 속에서 5년이나 살았다. 그 중 4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고, 3년 동안 우울증을 앓았으며, 2년 동안 쓰레기집에 살았고, 1년 동안 라면만 먹고 살았다. (에고.)
돈이 없어서 종신 보험이고 뭐고 다 깼고, 그 돈으로 라면을 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라면 종류를 다 한 번씩 먹어본 듯하다. 말하자면, 나는 슬픈 라면 박사다. 하루에 한 끼만 겨우 입에 밀어 넣던 시절, 구강 관리를 제대로 했을 리가 없다. 자학 모드에 빠져서 일 주일 내내 이를 안 닦은 적도 많다. (하하.)
어떤 때는 정말 이가 아팠다. 너무 아파서 새벽에 통증을 참으며 누워 있다가, 집 밖으로 비병을 지르면서 뛰쳐나갈 뻔 한 적도 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이 치통인데,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참고 또 참았다. 신기하게도, 죽어라 참으면 한동안은 아프지 않았다. 계속 썩어 들어갔겠지만. (흑흑.)
충치먹은 이처럼 썩어 들어가던 내 삶을 구해준 현재 아내를 만난 후에도, 너무 쪽팔려서 이가 안 좋아지게 된 사연을 말하지 못했다. 운좋게도, 그동안은 아프지 않았다. 막연한 불안. 물통 밑으로 눌러 놓은 풍선처럼, 언젠가는 튀어 오르겠지만, 그때까진 나 몰라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보처럼. (흐흐.)
다시 치과에 다녀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실행하는데 거의 이 주일이 걸렸다. 옷을 다 차려 입고 향수까지 뿌린 채 준비하다가 집 밖에 못 나간 적도 있었다. 의사는 그런 아픈 사연까지는 궁금하지 않을 텐데도, 내 판타지 속에서는 매번 물어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오셨길래 치아가 이꼴인가요?" (엉엉.)
내 판타지 속에서는 그렇게나 집요하게 물어보시더니, 막상 치과 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냥 치료를 시작하신다. 아, 딱 한 마디 말씀하셨다: "치과랑 안 친하시죠?" 나는 마음 속으로만 대답했다. "네, 한때는 정말 오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못 왔습니다. 최근에는 너무 창피해서 영 안 친했던 것 같구요." (영차.)
속이 시원하다. 어떤 이는 절반 이상 갈아냈지만, 그래서 치료가 끝나고 가글할 때 모래(?)를 한 움큼 뱉어내는 느낌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돈 걱정 크게 안 하고 치료 받는 상황이 어디냐. 이미 지나간 시간도, 이미 갈려나간 치아도 그리워하고 연민해 봤자 아무 소용 없다. 앞으로 어찌 사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읏샤!)
문득, 한뼘 밖에 안 되는 쪽방에서 몸을 반으로 접은 상태로 고통스러워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너무 한심해서 땅으로 꺼져 죽고 싶은데,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학하던 시절. 갑자기 행복해진다. 내가 그 정도 고통까지 겪어 봤던 사람인데, 앞으로 뭘 더 못 참으랴, 싶다. 난 대단하다. (아자.)
이젠, 치과랑 친하게 지내자.
요즘엔 학생들 글을 살펴봐 주느라 내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마침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그동안 생각하던 글감으로 30분 만에 쓱~ 써 봤다. 단락 길이를 대략 맞추는 훈련을 하고 있는데, 나쁘지는 않게 나왔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데, 내 삶도 그런 듯하다.
유영덕과 이재원의 글쓰기 학습 모임,
'봄나물 돋듯' (준비 중)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