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D+399)
나: 안녕하세요? 봄이 데리러 왔어요.
씨앗반 주임 선생님: 봄이 할아버지세요? 안녕하세요?
나: 아, 저 봄이 아빠입니다. 제가 조금 늦게 아이를 낳아서요.
씨앗반 주임 선생님: 저런... 죄송해요. 아버님이시구나~
나: 괜찮습니다. 흐흐...
새학기를 맞아서 딸 아이가 어린이집을 옮겼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이라서 좋다.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나로서는 부담이 훨씬 덜하다. 이젠 느긋하게 걸어서 5분이면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나.
그런데 첫 번째 날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씨앗반 주임 선생님이 나를 못 알아 본다. 할아버지인 줄 아셨단다. 하긴... 검은 야구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했는데, 흰 머리까지 희끗희끗 보이니까 오해할 수 있겠다.
아니지! 내가 오리엔테이션 날에도 참석했는데 말야. 그때 인사도 나누고, 눈 인사까지 다 해 놓으시고선. 경력도 꽤 되시는 분이 왜 이리 눈썰미가 없으실꼬. 어휴, 나이 먹는 일도 속상한데, 할아버지 취급까지 받으니 더 속상하다.
역시, 마누라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최근 며칠간 아내가 염색하자고 계속 말했는데, 내가 귀찮아서 미루고 또 미루다가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 앞으로는 사모님 말씀을 귓등으로 흘리지 말고 잘 지키자고 마음 속으로 다짐한다.
우리 부부는 48세, 47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딸 하나를 얻었다. 나이를 먹고 아이를 가지면 장/단점이 제법 많은데, 우선 제일 큰 장점은 부모 정서가 상당히 안정되어 있어서 아이도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약점이 있다. 우리는 이제 한창 꺾여가는 나이인데, 딸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린 '에너지 덩어리'라는 사실. 아주 명랑한(?) 아이를 자주 안다 보니, 우리 둘 다 손목과 허리 상태가 말이 아니다.
가만 생각해 본다. 딸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내가 60대 중반이 된다. 아무리 한국이 초고령 사회가 되었다지만, 60대 중반에 중학생 학부모라니. 역시, 쉽지는 않을 듯하다. 우리도 우리지만, 딸 아이가 놀림이라도 받으면 어쩌나.
자고로, 아이는 아이 답게 커야 한다. 어른이 해야 할 고민을 아이가 해선 안 된다. 엄마 아빠가 나이가 조금 많다는 사실 때문에 딸 아이가 고민하도록 놔 두고 싶지 않다. 늙은 아빠, 엄마 덕분에 놀림 받도록 놔 두고 싶지 않다.
어쩌겠나, 방법은 우리가 젊게 사는 방법, 하나 뿐이다. 적어도, 할아버지로 오해받으면 안 되겠다. 매일 가는 어린이집에 옷을 갖춰 입고 다닐 필요는 없겠지만, 너무 후줄근하게 하고 다니면 안 되겠다. 아울러, 염색도 꼭 해야겠다.
어쩌면, 씨앗반 주임 선생님께서 나에게 (긍정적인 의미로) 자극을 주신 것도 같다. 하기 싫어도 운동 좀 하라고. 참기 어려워도 밥 좀 줄이라고. 무리하지 말고 잠 좀 자라고. 사랑하는 딸 아이를 위해서라도 제발 좀, 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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