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똥파티
<이재원 세 줄 일기>
2025년 4월 8일, 화요일. 날씨: 푸른 봄날 하늘인데, 온통 '누렇게' 보인다
(누구/무엇) 1. 봄볕 따라 올림픽공원에 왔는데, 봄이가 똥을 무쟈게 쌌다.
(내용/의미) 2. 우리 딸은 공중 화장실을 무서워해서, 겨우겨우(?) 뒷처리를 마쳤다.
(생각/감정) 3. 사상 최대 똥파티. 팬티는 살리지 못하고 똥과 함께 안녕. 나는, 아빠다.
<확장판>
제목: 사상 최대 똥파티
글쓴이: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5)
"봄아, 어여 가자! 올림픽공원, 벚꽃 다 지거따." 봄이를 어린이집에서 일찍 데려온 날 오후, 벚꽃 구경 가려고 세 발 자전거를 신나게 끌었다. 딸이 배가 고파서 아빠에게 '뭐 줘' 라고 말할 듯해서, 짜요짜요(짜 먹는 요거트) 딸기맛 두 개랑, 딸기과자 다섯 개, 우유 팩을 챙겨 나왔다. 봄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마는 회사에서 일하느라 없지만, 우리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렀다. 과연! 평일 오후인데도 사람들이 무쟈게 많다. 주말에 비가 온다니, 다들 올해 마지막 벚꽃 자태를 구경 나왔나 보다.
만개한 벚꽃 길을 사뿐히 지나서, 올림픽공원 피크닉장으로 접어 들었다. 평소 주말에는 가족 단위로 뛰어 노는 사람들 천진데, 오늘은 푸른 잔디밭이 모두 우리 차지다. 봄이도 신이 나서 빨리 놀자고 아빠를 재촉한다. "아빠~ 나 잡아 봐라!" 아직 짧은 다리로 콩콩콩, 달려 나가는데, 이 시간을 만끽하려고 아빠는 잡지 않고 계속 딸을 쫓는다. 품 안에 꼭 안아도 더 안아 주고 싶은, 외동딸. 아빠는 이제 막 50줄에 접어들지만, 딸이 안아 달라고 말하면, 가볍게 들어 올린다. (사실, 허리가 아프다.)
그런데 봄이가 공원 벤치를 잡고 선다. 그리고 얼굴이 빨개진다. "봄아, 그거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아빠가 다그쳐도 봄이는 들은 척도 안 한다. '그 분이 오셨구나.' 아빠는 직감했다. 아내 왈, "봄이가 이틀 정도 똥을 안 쌌어." 맞다. 한참 놀다가 똥을 푸지게(!) 싸기 시작했다. "봄아, 다 쌌어?" 이 말을 열 번 정도 물었는데, "아, 아니... 봄이 똥 싸." 아직이란다. 우리 공주님께서는 이렇게 5분이나 벤치를 잡고 서서 시원하게 똥을 싸셨다. 이윽고, 거사를 다 치루셨을 때, 냄새가, 냄새가, 냄새가!
손으로 살짝 만져 봤는데, 단연 역대급 크기였다. 정신이 혼미해지려던 찰나,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휘유, 한숨. 그래도 출발할 때 뭔가 기분이 싸, 해서 준비헀잖아? 물티슈와 기저귀 등등. 마침 화장실이 가까워서 봄이를 번쩍 안고 달려갔다. 가족이 쓸 수 있는 칸으로 얼른 들어가서, 바지부터 내렸는데... 팬티까지 건드려서 38개월 아이가 쌌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똥 덩어리가 바닥에 툭, 하고 쏟아져 버렸다. 그리고 봄이 다리와 내 신발에 뭍어버리고 말았다.
큰. 일. 났. 다. 봄이는 소리에 민감하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를 특히 무서워하는데, 이 소리가 두려워서 기저귀를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뗐다. 그런데 아직 공중화장실을 무서워해서 똥은 꼭 집에서 싼다. 그러니까, 공중화장실에는 절대 안 가려고 한다. 역시나 오늘도 공중화장실에 들어오면서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빠, 나 무서워!" 이렇게 말하더니 아직 옷도 안 입은 상태에서 여러 걸음 움직여서 지가 싼 똥도 밟고, 여기 저기 뭍히고 다닌다. 아빠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딸은 크게 운다.
결국, 똥으로 범벅이 된 팬티는 살리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 어쩔 수 없이 대충 버려야 했으나, 청소하시는 분에게 무척 죄송했다. 한 손으로는 아이를 달래고, 한 손으로는 겨우 물티슈를 한 장씩 꺼내서 바닥을 훔쳤다. 그야말로, 사상 최대 똥파티를 열었달까. 포도시, 상황을 정리하고 화장실 문을 여는데, 감개가 무량했다. 아빠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상쾌하게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씽긋, 웃어 주었다. "아빠, 이제 우리 또 놀자! 저기까지 달려가 보자!"
다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사상 두 번째로 성대하게 열렸던 똥파티 생각이 났다. 그래, 그날도 애 엄마가 없었지. 나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했는데, 봄이가 똥을 많이 싸서 수습하느라 힘들었지. 그런데 기분이 참 묘했지. 나는 그냥 아내 보조요, 대타였는데, 지명타자가 된 느낌이랄까? 왠지 '드디어 아빠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오늘은? 우리 관계가 훠얼씨인, 더 깊어졌다고 느꼈다. 맞아, 우리는 똥으로 얽힌 사이지. 그만큼 가까운 사이지. 사람 힘으로는 끊을 수 없는 천륜 관계지!
집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푸른 봄날 하늘인데도 온통 '누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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