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치-01 2025. 5. 23.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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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결혼, 반대합니다?

 

글쓴이: 강명진(남동장애인종합복지관 지역연계팀장, 2025) 

첨삭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5)


나는 장애인복지관 직업지원팀에서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돕는 직업재활사로 근무했다. 어느 날 연이씨(가명) 어머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연이씨는 우리 기관을 통해 취업한 자폐성장애인인데, 어머님은 우리복지관을 이용하는 지적장애인 준이씨(가명)와 ‘연이를 결혼시키고 싶다’고 말씀하시며 준이씨 어머님과 연결해 달라고 하셨다. 당시 우리팀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열어 취업한 발달장애인들이 교류하면서 회사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도왔다. 준이씨와 연이씨는 모임에 제일 오래 참여했는데, 단순히 회사생활에만 도움받지 않고 이렇게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져서 무척 신기했다.

 

나는 수년 동안 꾸준히 모임에 나오는 이용인들을 보면서, 발달장애가 있어도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성인으로서 취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며 행복했는데 이용인들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연이씨 어머님 말씀이 정말 반가웠고, ‘역시 연이씨 어머님이네!’ 싶었다. 그만큼 연이씨 어머님은 모범적으로 장애자녀를 지원해 오셨다. 나는 준이씨 어머님께 연이씨 어머님 뜻을 전했고, 두 분은 이 역사적 프로젝트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결혼준비를 시작하셨다. 결혼식 날짜가 정해진 후에 직원들은 축가를 연습해 선물했고, 나는 축사를 부탁받아 우리복지관 1호 이용인 부부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누구에게나 어려울 수밖에 없다.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양가 어머님은 두 사람 생활을 부지런히 들여다보고 부족한 것을 챙기셨는데, 특히 연이씨 어머님이 더 열심히 움직이셨다. 하지만 이내 양가 어머님은 연이씨, 준이씨를 대신해 서로 부딪히기 시작하셨다. 빨래를 돌릴 때 세제를 얼마나 쓸지, 집안에 필요한 물건을 살 때 누구 돈을 쓸지, 밥을 먹고 누가 설거지하며 음식물 쓰레기는 누가 처리할지 의견이 맞지 않아 속상하실 때마다 연이씨 어머님은 안사돈과 준이씨에게 서운하다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대신 말 좀 잘 전해달라’고 종종 부탁하셨다. 하지만 나는 중립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대응하려고 애썼다. 나는 발달장애인 부부에 관한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부부상담 전문가를 찾아 연결해 주며 어머님들도 상대방을 이해하실 수 있게 도왔다.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연이씨와 준이씨가 아니라 어머님들이 결혼생활을 시작하신 듯 맞춰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이렇게 힘들다면 이혼해야겠다고 양가에서 번갈아가며 하소연하셨는데, 어느 날, 급기야 연이씨 어머님은 내가 준이씨 편만 든다며 폭발하셨다. “선생님 내가 누구한테 이런 얘기 하겠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준이 편만 드네요? 준이를 더 예뻐하네요? 이제 선생님한테 상의 안 할래요!” 나야말로 서운했다. 나에게도 두 사람은 각별했고, 함께 잘 살 수 있게 돕고 싶어 최선을 다했는데, 너무 억울했다.

 

그후로 연이씨 어머님과 나 사이는 자연스레 어색해졌고 데면데면 거리를 두던 중 내가 다른 팀으로 인사이동을 하게 됐다. 안타까웠지만, 연이씨 어머님과 관계도 풀지 못했고, 더 이상 연이씨, 준이씨 부부 문제를 직접 보고 듣지 못한다. 가끔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쓸데없는 상상해 보았다. 이런 난관에 놓이게 될 줄 미리 알았다면, '이 결혼, 반대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숨에 그렇다고 대답 못하겠다. 그저 설레는 희망을 품었던 연이씨 어머님과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우리 모두 너무나 힘들어서 실망하고 절망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흔히들 결혼은 두 집안이 만나는 이벤트라고 말한다. 연이씨와 준이씨도 발달장애가 있을 뿐, 결혼했으니 두 사람이 아니라 두 집안이 만났다고 봐야 한다. 어머님들께는 딸이 곧 나였고, 아들이 곧 나였다. 모든 부모 마음이 그렇겠지만 장애를 가진 자식을 키워낸 엄마 마음은 더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딸의 로망을 이뤄주고 싶었던 연이씨 어머님과 취업한 발달장애인이 멋지게 결혼하길 바랐던 나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지는 장면만 봤던 게 아닐까.


<이재원 선생 피드백>

 

강명진 선생님 개성과 강점이 매우 잘 드러나도록 쓰셨네요. 강명진 선생님, 침착하고 섬세하시죠. 사실, 대단히 논쟁적일 수 있는 소재(발달장애인 결혼)를 다루셨어요. 그런데 굉장히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글로 요리하셨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말씀 나누었지만, 미국 CBS 방송국에서 80년대 중반과 90년대 후반에 어떤 발달장애인 커플이 결혼해서 사는 이야기를 방송했습니다. 동일한 커플을 15년 간격으로 다시 만나서 취재했지요. 저는, 언젠가 이 프로그램을 접하고 꽤나 놀랐습니다. 두 사람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아이 학습 영역에서만 약간 어려움이 있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정상적'으로 살았습니다. 어떻게? 개인이나 가족이 모든 책임을 지지 않고, 지역사회가 나서서 이 부부/가족를 도왔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아, 우리 동네에 이런 커플이 있구나'라고 존재를 인식하고, 이 부부/가족이 동네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지원했습니다. 

 

여전히, 발달장애인 결혼 이슈가 개인 문제나 가족 문제로 환원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결혼은 고사하고 길거리에서 '장애를 가졌다고 보이는 사람을 못 만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등록장애인만 250만명이 넘는데, 이들 목소리가 완전히 잊혀지고,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느끼는 이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의미있는 소재를 발굴해서 깊이 있게 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강명진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강명진 선생님께서는 인천사협 '성숙을 담는 글쓰기' 클래스(제 3기)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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