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만한 이유
제목: 그럴 만한 이유
글쓴이: 오미영(영종장애인주간보호센터, 2025)
첨삭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5)
내가 사회복지분야에서 일한지 1년이 이제 막 지났다. 나이는 벌써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사회복지 경력으로 따지자면 우리 센터에서 내가 제일 적게 일했다. 내가 입사한 후 두 달쯤 지나 고OO님을 담당 이용자로 처음 맞이했다.
2024년 4월 말 금요일, 나는 시어머님과 강원도를 여행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고OO님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황금 같은 휴일인데도 전화를 받아야하나 망설여졌다. 하지만, ‘작은 불씨가 커지기 전에 꺼야 한다’고 생각해서 3초쯤 망설이고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OO이 이번 생일상에 음식이 별로 없던데요. 미리 말씀을 해 주시면 제가 치킨이든 뭐든 준비를 좀 할 텐데요...올해 처음 맞는 생일인데, 예전이랑 좀 다르더라구요.” 어머님은 서운한 감정을 단어 하나하나에 실어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우리 센터는 이용자 생일에 맞춰 정해진 금액 내에서 케이크와 치킨, 피자, 과자 등을 준비해서 조촐하게 생일잔치를 연다. 생일은 최대한 당일에 진행하지만 프로그램 사정에 따라 하루 이틀 당기거나 늦춘다. 이번 OO님 생일에는 매번 주문하던 치킨집이 모두 문을 닫아서 생일 케이크와 피자, 과자로 준비했는데, 이를 보시고 ‘음식이 없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문득, 과거에 겪은 비슷한 일이 떠올랐다.
나는 20대 중반 이동통신사에서 중간관리자로 일했다. 그날도 바쁘게 오후를 보냈다. 팀장님께서 지시하셔서 PC로 열심히 문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멀리서 느리지만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성인 명의자가 ‘일시정지된 폰을 해제해달라’고 요청하여 상담원이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 그런데 명의자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와서 “내가 돈을 내는데 왜 내 허락 없이 풀어주는데!”라고 말씀하시며 강하게 항의하셨다. 상담원이 잘못한 부분은 없었기에 나는 관련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드렸지만, 고객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셨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날 때까지 수화기를 들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고객의 마음이 느껴졌다. “고객님께서도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 정지 상태를 유지하시려고 하셨겠죠...”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고객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박 한 통 사 먹고 싶어도 수십 번 생각해야 해요. 유학까지 갔다 왔는데 30살이 넘도록 한 직장에 1년 이상 다니지도 못하면서 돈을 흥청망청 쓰고....” 통화를 마칠 무렵 고객은 “답답해서 그쪽에게 화를 냈네요. 늦게까지 들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시고 조용히 전화를 끊으셨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나는 그때 그 고객 어머니가 떠올라,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렸다. “이번에 처음이라 더 크게 기대하셨을 텐데... 제가 어머님 입장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자, 어머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 먼저 생일 전에 여쭤봤어야는데, 막상 생일상 사진을 보니 서운하더라구요.” 나는 이렇게 간단히 설명드렸다. “생일 일정을 미리 말씀드리면 부담스러워하시는 보호자분들도 계셔서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프로그램 시간이 아니라 간식시간을 활용해 생일잔치를 진행하고 있어요.” 어머님은 내 말을 흔쾌히 이해해 주셨고, 다음 주 간식시간에 희승님을 위해 치킨을 보내주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는 ‘규정, 원칙, 원래 그렇다’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거부’나 ‘외면’으로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그분들은 눈앞에 보이는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받고 이해받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역시, 논리적인 설득보다 공감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오미영 선생님께서는 센터에서 '막내'를 맡고 계시지만, 사실 거쳐오신 인생 경험을 생각하면 '진짜 막내'는 아니시죠. 이 글에서 잘 드러납니다. 외관상, 이동통신사는 사회사업과 전혀 상관없어 보입니다. 철저한 자본주의 비즈니스 세계이고, 어떻게 해서든 고객들 돈만 빼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떤 관점으로, 어떤 태도로 일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비즈니스도 인간이 하고, 인간이 한다면 관계가 반드시 존재하고, 이 관계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사회사업과 직접 연결됩니다.
이동통신사와 유아교육 업계에서 오래 일하시면서 쌓으신 경험을, 앞으로 우리 영종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충분히 풀어내시면 좋겠습니다. 이용인 분들을 더욱 더 살뜰하게 도우시고, 관계 속에서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시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오미영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오미영 선생님께서는 인천사협 '성숙을 담는 글쓰기' 클래스(제 3기)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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