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치-01 2025. 6. 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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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영 사회복지사, 세 줄 일기

 

2025년 5월 23일, 금요일. (날씨: 명상하는 수도승처럼 회색 하늘이 잔잔하다. )

1. 날씨가 더워 에어컨을 켰다. 새로 바꾼 제품이라 버튼을 살짝만 눌렀는데도 금방 켜진다.
2. 이전 에어컨은 몸무게를 실어 버튼을 세게 눌러야 했고, 여러 번 시도해야 겨우 켜졌다. 
3. 바꾸니 많이 편리하다.


<확장판>

 

제목: 바꾸니, 편리하다

 

글쓴이: 김제영(인천 현대유비스 병원, 2025) 

첨삭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5)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 에어컨을 켰다. 새 제품으로 바꾸고 나서 처음 켜 보았다. 먼저 쓰던 제품은 10년이 넘어서 누런색으로 변해서 지저분해 보이고 가끔 비릿한 냄새가 났다. 에어컨을 켤 때 시작 버튼도 몸무게를 실어 세게 눌러야 했고 여러 번 시도해야 겨우 켜졌다. 이번에 설치한 제품은 하얀 색이라 깔끔해 보이고 디자인이 간결하다. 게다가 버튼을 살짝만 눌러도 금방 켜진다. 손가락을 갖다 대기만 해도 켜지니 편리한데, 더 나아가서 신기하다.

 

나는 한 가지가 익숙해지면 잘 바꾸지 않는다. 에어컨은 10년 넘게 사용했다. 미용실도 15년 이상 한 곳을 꾸준히 다니고 있고, 자동차도 폐차될 때까지 10년을 탔고, 한 번 옷을 사면 잘 버리지 않아서 대학교 졸업을 기념하여 산 옷도 아직 있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아서 이기도 하겠지만 오래된 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20년 동안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다. 엄마와 아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함께 가게를 운영하시느라 가게와 붙어있는 방에서 사셨고 나와 형제들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무리 헤진 물건이라도 버리지 않으셨다. 양말이나 옷은 당연히 기워 입으셨고, 주전자나 냄비 손잡이가 떨어져도 행주로 손잡이를 대신해서 사용하셨다. 알루미늄 밥상은 다리가 구부러져서 기울어졌는데 나머지 다리를 구부려서 평평하게 한 후 사용하셨다. 남은 음식도 어떻게든 다른 요리로 바꿔서 상에 놓아 주셨다. 나는 찌그러진 냄비나 알루미늄 밥상을 보면서 '나중에 내가 살림하게 되면 낡은 것은 바로 버리고, 항상 새 것으로, 예쁜 것만 사용해야지 ' 라고 종종 생각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나는 낡고 오래된 물건과 함께 산다. 할머니 습관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 집안을 둘러보면 구석구석 잘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물건이 많이 있다. 계절별로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하지만 결국 버리지 못하고 다시 쌓아둔다. 쓰지도 않았으면서 두고만 보던 물건에 애착이 생겨서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가끔씩은 오래된 물건을 사용하면서 적극적으로 옛날을 추억한다. 차를 탈 때 가끔 10년 전 처음 차를 가지고 와서 와이퍼를 움직이지 못해 당황했던 날이 떠오르고, 30년 전 샀던 정장을 입을 때는 백화점에서 옷을 고를 때 설레었던 마음이 떠오른다.

 

에어컨을 바꾸고 편리하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론 못내 아쉬웠다. 새 제품이 편리한데도 공을 들여(?) 사용하던 이전 제품이 생각났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제품이라 애착이 생겼나 보다. 하지만 어쨌든 바꾸었으니, 이제 새 제품에 익숙해져야겠다. 10년이 지나면 오늘 느꼈던 편리함이 떠오르겠지. 오래 오래 함께 지내보자.


<이재원 선생 피드백>

 

우와! 걸작을 쓰셨습니다. 

 

벽에 걸린 에어컨 컨트롤 박스를 문으로 삼아서, 할머님과 함께 사셨던 시절까지 쭉 밀고 들어가셨어요. 너무 부드럽게 움직이셔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물건 이야기를 주로 펼치셨는데, 다 읽고 나면 인간 김제영을 만나서 친근하게 대화했다고 느낍니다. 

 

김제영 선생님 글솜씨에 제대로 물이 올랐네요. 비가 온 날 제비처럼, 낮고 빠르고 신나게 날아 다니시길.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김제영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김제영 선생님께서는 인천사협 '성숙을 담는 글쓰기' 클래스(제 3기)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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