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이 이야기
오미영 사회복지사, 세 줄 일기
2025년 6월 8일 일요일(날씨: 햇살이 살을 따끔하게 꼬집는다.)
1. 오늘도 나는 땅콩이와 산책 후 25층까지 걸어서 올라왔다.
2. '비만' 강아지 땅콩이 살을 빼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3. 우리집 대화를 이어주는 아이, 보고 있으면 웃겨서 미소를 짓는다.
<확장 글>
제목: 땅콩이 이야기
글쓴이: 오미영(영종장애인주간보호센터, 2025)
첨삭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5)
나는 강아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물릴까봐 무서웠고, 만지면 내 손에 뭐가 묻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4년째 강아지와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고, 직접 건강 간식을 만든다. 요즘은 강아지가 살이 너무 쪄서 다이어트하려고 계단 25층까지 함께 걸어서 올라온다. 내가 강아지와 함께 살다니, 스스로 놀랍다.
나는 대학 졸업 후 남편을 만나 1년 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다. 당시 나는 어린이집에서 일했는데, 우리 아이들도 소중했지만, 일도 소홀히 하지 않다 보니, 결과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나는 고지식하고 건조한 엄마였다. 아이들이 도덕적으로 어긋나게말하거나 행동하면 이해하지 못했고, 비속어를 쓰면 뜻을 설명해 주면서 왜 쓰지 말아야 하는지 설명했다. 언젠가는 학교에서 아이에게 열이 난다고 연락이 왔는데, 열만 난다길래 아이에게 보건실에 누워있다가 집에 가라고 말했다. 조금 아파도 참는 법을 배우고, 강하게 크길 바랐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참 무심했다.
그래서였을까? 큰 아이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질풍노도처럼 반항하고 방황했다. 하루 걸러서 학교에 가지 않았고, 건물 옥상에서 술을 마신다고, 사람들이 신고해서 경찰서에 세 번이나 방문했다. 어느 날은 큰아이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가 보니, 술이 너무 취해 화장실 바닥에서 세상 편하게 자고 있었다. 남편은 올 수 없고 아이를 안고 갈 힘도 없었어서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한 시간을 기다렸다. 한 번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는데, 받아 보니 다른 지역 경찰이었다. 큰아이가 SNS에 누군가를 심하게 욕해서 고소당했다고 들었다. 이 일로 우리 부부와 큰아이는 법원에 가서 판사님 앞에 서야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 속에 갇힌 듯했다. 터널 밖은 평화롭고 밝은데 나에게만 어두운 것 같았고, 나에게서 작은 빛마저도 앗아간 현실이 야속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원인을 나에게 찾지 않고, 세상을 탓했다.
하지만 시간은 어느새 흘러갔고, 큰 아이가 함께 놀던 친구들과 멀어지면서 우리 집은 고요를 되찾아갔다. 그런데 큰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 되던 봄에 나에게 ‘강아지 키우고 싶어, 강아지강아지강아지...’라며 강아지를 100번 정도 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강아지가 싫었지만 아이 마음에 난 구멍을 채워줄 수 있을까 싶어 생후 2개월 된 강아지를 입양했다. 큰아이는 강아지에게 ‘땅콩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자기를 위해, 강아지를 키워주고 예뻐하자, 큰 아이는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땅콩이가 공을 입으로 받으면 함께 박수치며 칭찬해주고, 우스꽝스럽게 자는 모습을 보며 낄낄 웃고, 수술해서 아파하면 땅콩이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함께 아파했다.
땅콩이는 자기가 놀고 싶으면 인형을 가져오고, 물이 마시고 싶으면 물그릇 앞에 앉은 후 빤히 쳐다본다. 자기가 필요한 순간에는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평상시엔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다. 땅콩이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지만, 우리 가족 사랑을 독차지한다. 땅콩이는 우리 가족이 입은 상처가 아물도록 도와 주었고, 우리 가족이 하나로 뭉치도록 자연스럽게 도와 주었다. 나는 땅콩이와 함께 살면서 소중한 생명이 나와 함께 지낸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그 생명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오늘은 땅콩이가 계단을 걸어올라온 후 힘들었는지 거실에서 등을 대고 누웠는데, 이런 모습마저 기특해 보여 슬며시 미소 짓는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아주 잘 쓰셨습니다. 세 줄 일기 속 땅콩이 이야기도 흥미로운데, 세 줄 일기 밖에 숨겨진 아름다운 이야기와 부드럽게 잘 연결하셨어요. 오미영 선생님께서는 대학을 졸업하신 후에 곧바로 결혼하시고 또 거의 곧바로 아이들을 낳아 키우셨는데, 그 와중에 직장까지 다니셨다니... 여러 모로 쉽지 않으셨겠네요. 행간에서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시는 감정이 느껴져서 독자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온 가족이 땅콩이를 만나면서 어두컴컴한 터널을 한 걸음씩 걸어 나오신 성장 이야기를 진솔하게 잘 쓰셨습니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오미영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오미영 선생님께서는 인천사협 '성숙을 담는 글쓰기' 클래스(제 3기)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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