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두나 학생, 이제 그만 일어나, 응?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8. 5. 12:52
    728x90
    반응형

    <율제 병원 응급실> 

     

    봉광현(응급의학과 교수): 수술은 시작하고, 보호자 오시는대로 동의서 받아. 

    최성형(신경외과 전공의): 근데, 남자친구는요? 

    봉광형: 퇴원했어. 

    최성형: 네? 

    봉광현: 남자친구는 이마만 살짝 긁혀서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갔어. 핼멧을 자기만 썼어. 자기만 쓰고 뒤에 탄 여자친구는 안 썼어. 그리고 과속에 신호위반으로 방지턱에 그대로... 으이그... 

     

    <중환자실> 

     

    채송화(신경외과 교수): 대학생? 

    용석민(신경외과 펠로우): 네, 신입생이요. 집은 춘천. 

    채송화: 성형이가 같은 고향이라 신경이 더 쓰이나 보네. 나도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다. 

     

    <중환자실> 

     

    최성영: 두나 학생, 벌써 2주가 다 돼 가는데... 이제 그만 일어나. 응? 친구들은 개강파티도 하고, 엠티도 가고. 모두 정신없이 바쁘단 말야. 3월에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어떡해? (어깨를 두드린다.) 

    환자: (고개를 슬며시 끄덕인다.)

    최성형: 환자분, 왼손 들어 보세요! 

    환자: (왼손을 슬며시 든다.) 

    최성형: 헉... (깜짝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는다.) 교, 교수니임! (문을 박차고 나간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에피소드 06 중에서> 


    이혼은 대략 정서적 이혼, 경제/사회적 이혼, 법적 이혼 이 세 단계로 진행된다. 정서적 이혼은 마음이 떠난 단계요, 경제/사회적 이혼은 별거를 하거나 함께 산다고 해도 경제/사회적으로 남남처럼 사는 단계이고, 법적 이혼은 두 사람이 최종적으로 완전히 갈라섰다는 사실을 공인받는 단계이다. 그런데 법적 이혼만 안했을 뿐이지, 정서적 이혼과 경제/사회적 이혼 단계를 이미 지나버린 부부가 상담자를 찾아와서 뭔가 노력해 볼 수 있겠느냐고 물을 때가 있다: '당신이 나름대로 전문가이니, 우리가 잘 될지 안 될지 알려 다오.' 이런 경우가 참말로 거시기한(곤란한) 상황이다. 

     

    이미 게임이 끝났는데, 도장만 찍으면 완전히 남남이 되는 건데, 이제 와서 나 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거시기한 상황이 또 있다: '나는 정말 이혼을 하고 싶은데, 도무지 상대 배우자가 내 말은 전혀 듣지 않는다. 그래도 당신은 전문가이니 당신 말은 들을 것 같아서 데리고 왔다. 제발, 내 진심을 전해 달라.' 이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속절없이 답답해진다: '그대는 어린 아이인가? 그대 인생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엄청난 말을 어째서 나에게 대신 해 달라고 하는 것인가? 그대가 저 사람 배우자다. 당신도 설득하지 못한 걸 내가 어떻게 설득하는가?'

     

    이 경우도 마찬가지. 내가 아무리 전문가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가져와서 어떻게든 해 달라는 상황. 

     

    그러니까, 부부상담을 하다 보면 위와 같은 거시기~ 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오해 마시라. 나는 이 분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전문가랍시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오해하지 않는다. 이 분들 마음 속에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좋은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나도 힘든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있어서 이 분들 상황이 남일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답답한 면도 일부 있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이런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의 숨통이 끊어질 것 같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한 상담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에피소드 06을 보다가, 최성영 전공의가 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어떤 젊은 대학 신입생을 들여다 보면서 독백하는 장면을 접했다. 남자친구 오토바이 뒤에 탔다가 사고가 났는데, 혼자만 핼멧을 쓰고 있던 남자친구는 살았지만, 뒤에 매달려 있던 여자친구(환자)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중상을 입었다. (아이구야...) 이 환자, 긴급 수술은 받았지만 혼수상태에 빠져서 회복은 물론이고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는 중태다. 동향(춘천) 출신으로서 환자에게 마음이 쓰인 전공의, 최성영은 틈날 때마다 환자에게 찾아와서 (듣지 못하겠지만)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 

     

    "두나 학생, 벌써 2주가 다 돼 가는데... 이제 그만 일어나. 응? 친구들은 개강파티도 하고, 엠티도 가고.

    모두 정신없이 바쁘단 말야. 3월에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어떡해? (어깨를 두드린다.)"

     

    헌데... 환자가 갑자기 반응을 보인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인사나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는) 낯선 의사가 넋두리처럼 내뱉은 독백에 슬며시 반응을 보인다. 아마 의사도 별 다른 기대를 걸지는 못했을 터.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의식을 잃은 채 겨우 숨만 붙어 있고 내일 당장 숨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는 환자가 살아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는 게 그다지 합리적이지는 않은 기대다. 하지만 거의 기대를 걸 수 없는 환자가 갑자기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표현해 버린 거다.


    이미 사실상 끝나버린 관계를 가져와서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내담자 부부에게는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자면, 두 분 관계는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서로 상처를 입히시느니, 차라리 헤어지세요.' 하지만 부부상담자의 직업 윤리상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내게는 가망 없어 보이는 사례일 수 있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전체 인생이 걸려 있는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내 삶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한 조각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피하지 않고 희망을 걸어봐야 한다. 

     

    사실로만 이야기 하자면 대부분은 이혼으로 귀결될 인연일 것이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회생할 수도 있다. 오토바이 사고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이두나 환자처럼 말이다. 어디까지나 드라마 속에서지만, 그러므로 판타지에 가까울 수도 있겠지만, 이두나 환자는 의식 회복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 돌아 왔다. 그녀가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돌아온 까닭이 아직 사망할 때는 아니기 때문이든, 동향 출신이라서 마음이 더 쓰인 최상영 전공의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경을 썼기 때문이든, 신적인 섭리 때문이든,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살아 돌아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희망이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도와야 한다. 변화는 우리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 가능성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해외 고급 강점관점실천 자료

    이메일 뉴스레터로 편하게 받아보고 싶으시다면? 

     

    https://vo.la/gN9Du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jaewonrhie@gmail.com)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