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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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일기장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4. 4. 2. 06:48
글을 쓸 시간은 없는데 일단 쓴다면 잘 쓰고 싶어서 괴로워하는(?) 학생들 모습을 지켜 보면서, 문득 어머니 일기장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40대에 접어들고 나서야 제대로 한글을 배우셨다. 정확하게 시점을 말한다면, 1994년 봄. 내가 큰 학교(大學校)에 입학했을 때였다. 당시 어머니는 매일 새벽 여의도 증권가 건물로 출근하셔서 뼈가 빠지도록 청소해서 생활비를 버셨다. 그 피같은 돈으로 아들 먹일 우유도 사시고 학비도 대셨다. 그리고 당신은 한글을 공짜로 가르쳐 주는 교회 야학에 다니셨다. 한글 선생님을 참 잘 만나셨다. 당시 야학에서는 30년 넘게 중학교에서 국어 과목을 담당하신 선생님께서 한글을 가르치셨다. 이 선생님께서는 아주머니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신 후에, 일기 쓰기 과제를 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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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777)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4. 3. 19. 16:28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777) (어린이집에서) 이혜진 선생님: "아버님, 며칠 안 봤다고 봄이가 내외하더라고요." 나: "아, 봄이가 저를 닮았나 봐요. 낯을 조금 가려요." 이혜진 선생님: "아, 그렇군요. 그래도 봄이가 좋아하는 노래 불러주면 또 다가와서 안기더라구요." 나: "맞아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또 괜찮아지더라고요." (할아버지 집에서) 봄이 고모: "봄아~ 안녕? 잘 지냈니?" 봄이: (아빠 바지를 붙잡고 말 없이 고개를 돌린다) "...." 봄이 고모: "봄이 고모가 낯설어서 그렇구나?" 봄이 엄마: "호호호...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져요." (미용실에서) 민 부원장님: "어머, 얘~ 너 너무 예쁘다. 만화 캐릭터 같이 생겼네?" 봄이: (엄마 바지를 붙잡고 말 없이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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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745)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4. 2. 24. 07:33
"봄이가 놀이하다가 바닥에 붙여진 사진을 보더니 선생님에게 얼른 달려와서 가족사진을 찾아 알려 준답니다! "엄마, 아빠"하고 말하기도 하고 사진을 뚫어져라 들여다 보기도 하네요. 친구들이 사진 위에 올라가 폴짝 뛰어보기도 했는데, 뛰다가 봄이 가족사진 위에 올라가자 봄이가 울며 선생님에게 왔답니다. 엄마, 아빠를 소중히 생각해서, 친구들이 올라가자 눈물을 보이는 봄이가 너무너무 귀여웠습니다." 일단, 나는 살면서 아이가 생기리라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다. 아내와 너무 늦게 만나서(75년생 아빠 + 76년생 엄마), 임신이 어렵겠다고 느꼈다. 혹시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로 낳아서 키우려면 너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갔다가 (역시나 연령 때문에) 하이패스로 난임 클리닉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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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716)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4. 1. 26. 16:46
'아뚜'가 뭐길래? 먼저 '아뚜'가 뭔지부터 설명해야겠다. '아뚜'는 상어가족 캐릭터 노래 가사 중 첫 대목 '아기상어 뚜루루뚜루'를 줄인 말이다. 상어가족 캐릭터 노래는, 2015년 이후에 아이를 낳아 기른 부모라면, 모를 수가 없다. 유튜브 누적 조회수 130억회가 넘어서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전세계 아이들이 모두 좋아하는 캐릭터 노래니까. 이 노래를 들으면, 곤히 자는 아이도 벌떡 일어나고, 펑펑 우는 아이도 미소를 띄우니까. 당연히, 내 딸 봄이도 상어가족 노래를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이 노래는 가사도 간단하고 멜로디가 흥겨워서, 분위기 전환용 음악으로 딱 적당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아이가 울거나 짜증낼 때처럼, 갑자기 주의를 끌어야 할 때 우리는 대단히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열어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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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695)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4. 1. 5. 15:44
첫 번째 장면. "(밝게 웃으며) 아이고, 얘는요~ 동요도 취향이 있더라고요. 다른 아이들은 제가 동료 불러 주면 아무 거나 다 좋아하는데, 얘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아니야!'라고 외쳐요." 보통 5시에 어린이집에 봄이를 데리러 간다.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데, 오후 통합반 돌봄 선생님께서 흐뭇하게 웃으시면서 저렇게 말씀하신다. 문득, 내가 선생님이면 어떨까 싶다. 당연히! 선생님으로선 잘 따라오는 아이가 좀 더 편하고 예뻐 보이리라. 아이가 어딘가 까탈스럽다면, 아무래도 대하기가 어려울 테고. 하지만 전혀 나쁘게 듣진 않았다. 오히려 무척 좋게 들렸다. 선생님께서 봄이 취향을 세세하게 챙겨서 맞춰 주신다는 뜻이니까. 그만큼 품 넓게 우리 딸을 돌봐 주신다는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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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663)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3. 12. 4. 09:56
나: "우리 예쁜 봄아, 자~ 딸기 먹어." 봄: (내가 준 딸기를 받아서 맛있게 먹다가 또 다른 딸기를 손에 쥔다.) 나: "옳지, 또 먹고 싶지? 자~ 딸기 또 먹어." 봄: (손에 쥔 딸기를 나에게 내밀며) "아빠!" 나: "응? 아빠 먹으라고? 이 딸기, 아빠 먹으라고?" 봄: "응! 아빠! 응응(딸기)!" 나: "아이고~ 우리 딸, 기특하네. 이제 겨우 22개월 된 아이가 아빠 생각을 다 하고." 아내가 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최근까지, 줄곧 겁이 났다. 아빠 나이와 자폐스펙트럼 장애(ASD)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의학적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40대 아버지는 20대 아버지에 비해서 자폐 아동을 얻을 가능성이 약 30% 높다.) 물론! 어쨌든 내가 만든 아이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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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638)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3. 11. 10. 14:53
"봄아, 귀여운 우리 아가~ 엄마, 갈게. 어린이집 잘 다녀오고, 이따 밤에 만나자?" 엄마가 미워요. 아침마다 그렇게 어딜 가는지. 내가 아침밥을 다 먹을 때쯤, 그러니까 아빠가 '여덟시' 라고 부르는 시간이 되면, 엄마는 가 버려요. 보통은 엄마가 사라진 후에 조금 지나면 아빠가 '봄아, 우리 이제 어린이집 가자'라고 말하는데요, 오늘은 그 전에 '병원'에 가야 한대요. 병원? 파란 옷 입은 아저씨가 제 등에다가 차가운 뭉치를 대는 곳? 아, 맞다! 거기 가면 가끔씩 팔에 뾰족한 걸 찌르는데? 아픈데?! 신나게 뽀로로 그림책을 보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화장실로 저를 데리고 갔어요. 빨리 씻고 '병원'에 가야 한대요. 빨리 안 가면, 다른 아이들이 많이 와서 '1빠'로 가야 한대요. 그래야 빨리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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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 일기 (D+608)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3. 10. 20. 13:27
괜찮아 딸: (꽈당, 하고 넘어진다.) 나: 봄아~ 괜찮아, 일어나. 아내: 어휴, 오빠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나는 어린 딸아이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자주 올린다. 웃는 사진, 우는 사진, 어디 놀러가서 찍은 사진 등, 많이도 올린다. 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나를 무슨 대단한 '딸 바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나는 많이 다정하고 세심한 아빠는 아니다. 물론, 40대 후반에 기적처럼 얻은 딸이 무척 소중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쏙 빼닮은 아이를 만들고 함께 키우는 일상이 선물 같다. 그러나 나는 원래부터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순발력도 상당히 부족해서 아이가 넘어지면 우선은 멀뚱히 쳐다본달까. 한편, 내 아내는 발달장애인을 20년 이상 도운 베테랑 사회복지사다. 그래서 나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