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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4. 1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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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글쓴이: 민경재(안산시초지종합사회복지관 분관 둔배미복지센터 센터장, 2024)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비교 / 원문]

    퇴근 후 부지런히 부동산으로 향했다. 집 주인아주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머리 스타일 바뀌었네요. 잘 어울려요.” 주인아주머니는 여전히 따듯하고 은은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아주머니는 오늘도 오래된 긴 가디건을 걸친 수수한 모습이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전세 재계약 서류를 작성했다.

     

    [비교 / 첨삭문]

    퇴근 후 부지런히 부동산으로 향했다. 집주인 아주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여전히 따듯하고 은은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 주셨다. "머리 스타일 바뀌었네요. 잘 어울려요." 자연스럽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오늘처럼 집주인 아주머니는 오래된 긴 가디건을 수수하게 걸치고 부동산에 오셨다. 우리는 서로 미소를 교환하며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전세 재계약 서류를 작성하고 도장을 찍었다.

     

    우리 가족은 작은 집에 살다가 이 년 전에 두 배 넓은 현재 집으로 이사했다. 당시 집값은 천정부지로 높았다. 코로나 이후 집값이 멈출 줄 모르고 미친 듯이 오르기만 하는데 시쳇말로 ‘어이가 없었다.’ 우리 부부가 두 아이를 키우며 십년 넘게 허리가 휘도록 고생해서 모은 돈보다 집값이 올라 얻는 돈이 더 컸다. 아무리 노력해도 집을 가질 수 없는 빌어먹을 세상! 나는 화가 잔뜩 났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치이다 퇴근하면 또다시 집안을 가득 채운 짐에 치이고 집안일에 치였다. 벽이 사라진 집구석을 보노라면 숨이 막혔다.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알아보니 집값이 너무 높아서 욕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그냥 살자고 생각했다가 벽이 사라진 집구석을 보고 ‘아냐, 이건 아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번엔 움직여야 해.’ 이사가야겠다고 고민하고, 를 반복했다. 주변을 샅샅이 찾아 보니 아이들 학교 생활권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공간을 넓혀 갈 수 있는 선택지는 한 단지뿐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평 이상 되는 너무 큰 평수이고 가격도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인터넷으로 해당 지역 부동산 전세 매물을 살펴보다가 시세보다 몇 천만원이나 싸게 나온 집을 발견했다. 그냥 구경이라도 해 보고 싶어 부담없이 집을 보러 갔다. 그런데 딱 내 취향이었다. 집안이 화이트 톤으로 깔끔했고 방마다 붙박이장이 있어 큰 가구를 살 필요도 없었다. 집을 보고 나오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이사가고 싶은 집을 봤는데 대출을 얼마 받아야 이사할 수 있을까?” 그날 우리는 대출을 받기로 하고 이사가기로 결정했다.

     

    숨 막히는 집을 벗어나려고 이사를 결정했지만, 대출 이자에 숨이 막힐까 두려웠다. 전화로 집주인에게 사정 또 사정해서 천만 원을 더 깎았다. 그래도 둘이 버니까, 정 안되면 이년만 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부동산에서 집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작은 체구로 원피스에 오래된 긴 가디건을 수수하게 걸치고 마실가듯 부동산에 오셨다.

     

    집이 다 마음에 들었는데 싱크대가 너무 낮았다. 조심스럽게 아래쪽 싱크대라도 바꾸어 줄 수 있는지 여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흔쾌히 승낙했다. 이사를 확정 짓고 나니 가전이며 침대며 사야 할 물건이 많았다. 집안 삼대 이모라 불리는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에 욕심이 났다. 그런데 세탁실에 건조기를 놓으려면 설치된 수납장을 떼어내야 했고, 식기세척기는 배관 누수가 잘 발생한다며 주인아저씨가 싫은 내색을 비추셨다. 나는 세살이를 실감하며 가전을 포기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주인 아주머니는 아저씨와 상의를 끝냈다며 세탁실에 붙박이장도 떼고 식기세척기도 설치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집이 춥다며 창호를 이중으로 해 주신다고 했다. 이사 일주일 전에는 아저씨에게 비밀이라며 오십만 원이 넘는 이사 청소도 기꺼이 해 주셨다. “일하는 엄마가 편해야 애들을 잘 키울 수 있어요. 이 년 동안은 애기 엄마 집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그리고 좋은 집 사서 가세요.” 나는 통화할 때마다 좋은 마음을 듬뿍 받으며 고마워서 눈시울을 적셨다.

     

    열심히 사는 우리 가족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올라만 가는 집값. 그리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우리 가족과 같은 눈높이에서 충분히 배려해 주신 집주인 아주머니. 위에서 내려다 보지 않고 옆에서 손을 잡아 주신 어른 덕분에 나는 충분히 위로받았다. 어느새 두려움과 걱정은 내려앉고 희망이 싹 텄다. 아주머니처럼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세상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또 다른 나에게 ‘숨 쉴 구멍’이 되어주고 싶어졌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민경재 센터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민경재 센터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걸작을 쓰셨습니다. 민경재 선생님께서 글을 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죠? "긴 듯한데 줄일 곳을 찾지 못하고 제출합니다." 괜찮습니다. 이 글은 이 정도 길이로 써야 적당합니다. 술술술 읽히고 막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대단히 잘 포화된 글'입니다. 

     

    2. 이 글을 읽으며 민경재 선생님 스타일이 완성되어간다고 느꼈습니다. '솔직하고 온화한' 민경재스러운 강점/개성은 보존하셨어요. 그러면서 군더더기가 훨씬 더 줄어들고 이야기 흐름이 많이 단단해졌습니다. 글을 많이 써 본 사람은 딱 압니다. 민경재 선생님께서 얼마나 고민하고 쓰셨는지.  

     

    3. 첫 번째 단락에 ' 자연스럽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이 문장을 삽입했습니다. 현재에서 시작해서 과거로 넘어가는 이야기라서 초점을 현재보다는 과거로 옮기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4. 무엇보다도, 저 개인적으로 글 내용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뒤늦게 결혼해서 작은 집에 살게 되었고 사방 벽을 온갖 짐으로 채우고 있는 중이라서요. 우리 가족도 이사를 계획하고 있어서인지, 민경재 선생님 마음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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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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