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가족)체계이론 공부 - 003
    지식 공유하기(기타)/가족 체계이론 공부(페이스북) 2020. 2. 15. 07:41
    728x90
    반응형

    동료들과 토론하면서 번역하기: SYSTEMS THEORY IN ACTION - 003

    원문: Shelly Smith-Acuña(2010)
    번역: 이재원(2015)

     

    =====

    <서문> 

    https://empowering.tistory.com/30

    <제 1장> 체계론적인 사고에 대한 소개

    https://empowering.tistory.com/59

    =====

     

    <안내 말씀> 

    내용이 조금 길고 살짝 어렵기도 하지만, 한 호흡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냥 통으로 게시합니다. 

     

    제 2장. 맥락(context)

     

    여러분이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복할 가치가 있다. 이 이야기는 이슬람 신비주의, 불교, 자이나교, 그리고 힌두교 전통에서 유래했다. 비록 출처는 다양하지만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한결같다. 여러 명의 맹인이 교양 있고 신실한 스승 밑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스승은 이들에게 가서 코끼리를 관찰하고 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7명의 맹인이 코끼리를 관찰하고 오자 스승은 코끼리에 대해서 각자 관찰한 내용을 말해 보라고 했다. 맹인 중에 한 사람이 말했다. “저는 코끼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압니다. 코끼리는 나무의 몸통 같아요; 지름이 40인치에 달하고; 단단하고 강력하지요.” 다음 사람이 말했다. “아뇨, 아니에요. 틀렸어요. 코끼리는 넓은 벽 같아요. 기둥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단단한 건 맞지만, 형태는 당신이 말한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완전히 엉뚱한 이야기를 하시지요? 코끼리는 밧줄 같아요. 섬유질로 되어 있고 털이 많습니다.” 그러자 당연히, 이들은 코끼리의 본질에 대해서 논쟁을 시작했다. 스승은 한 동안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조용히 하게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한다. “여러분은 모두 맞고, 모두 틀립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의 코끼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어요. 하지만 여러분 중 누구도 코끼리의 본질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해요. 코끼리는 여러분이 말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각각의 특징이 곧 코끼리는 아니랍니다.”

     

    (1) 복수의 관점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이야기는, 다양한 방식을 포괄하는 체계적 맥락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이야기는 어떤 형태의 현상이든 우리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려고 할 때 부딪힐 수 있는 오류를 보여 준다. 우리의 인식 능력은 항상 일정하게 제한되며, 그래서 좀 더 좁은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문제가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좁지 않은 관점을 가질 수 있겠는가? 충분히 넓은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종종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 중 하나는, 현실을 이해하려는 어떤 시도도 항상 그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개인적 맥락에 의해서 제한되며, 따라서 우리의 이해는 우리가 눈앞에 맞닥뜨리고 있는 코끼리의 부분이 어느 부위인지에 좌우된다. 심리치료를 할 때 나는 이 이야기를 항상 떠올리게 되는데, 왜냐하면 너무나 자주, 상담을 받으러 온 커플과 가족은 코끼리를 연구하는 맹인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내담자들은 대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당신은 우리 아이들을 좀 더 엄격하게 훈육할 필요가 있어. 아이들이 당신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잖아! 당신이 모든 걸 다 챙겨주는데 아이들이 언제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겠어? 이젠 ‘안돼’라고 말도 해야 하고, 자기 일은 자기가 하게 해야 해. 아이들이 그런 걸 배우고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건 분명히 우리 책임이라구.”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소리만 지르고 아이들이 틀렸다고 지적질만 하잖아요. 가족은 좀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야지, 군대 같아서는 안된다구요. 당신은 아이들한테 늘 명령조잖아요!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고 자신을 잘 돌보길 바란다구요.”

     

    이런 논쟁 속에 존재하는 아이러니는, 두 사람의 말이 모두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각자의 관점에서 코끼리를 더듬었던 맹인들처럼,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아이들이 책임감을 길러야 하는지 아니면 자존감을 채워야 하는지 논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가 않으며, 사실 아이들은 두 가지 가치를 모두 배워야 한다는 것이 아마도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체계 이론을 활용하면, 우리들 각자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든지 우리가 직접 경험한 바에 기초해서 이해하고, 우리의 경험은 여러 가지 맥락적 요인들에 지배를 받으므로, 사물에 대해서 당연히 사물을 복합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체계론적으로 관점을 변화시키면, 우리가 ’이것 아니면 저것, 둘 중의 하나’라는 흑백논리와 ‘이것이면서 저것, 둘 다일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검증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이것이면서 저것, 둘 다 일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따르면, 내담자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해서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둘 중에 어느 관점이 옳은가?’ 라고 묻는 대신에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대상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가? 각 사람은 어떤 맥락에서 자신의 관점을 끌어오는가? 두 관점 사이에서 무엇이 공통점이고, 두 관점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이 관점이 가장 잘 들어맞을 때는 언제이고, 가장 잘 들어맞지 않을 때는 언제인가?’ 그러므로, 위에 인용한 서로 논쟁하는 부모와 관련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 ‘가족 안에서 규율(structure)이 잘 작동할 때는 언제인가? 그리고 지지(support)가 잘 작동할 때는 언제인가? 어떻게 하면 두 가치가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겠는가?’ 다시 코끼리를 만진 맹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여러 관찰자들이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면, 코끼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을 제시해 준다: 어떤 문제를 맥락 안에서 이해하고 싶다면, 반드시 그 문제와 관련된 각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경청해야 한다. 

     

    복합적 관점이라는 관념은 심리치료를 할 때에도 기본적인 것이다. “제 생각에,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라고 내담자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치료자로서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다. 종종, 내담자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문제의 수렁에 빠지게 되고, 한 발 떨어져서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내담자들이 해당 문제를 자신의 삶 안에서 좀 더 넓은 맥락에, 심리학자로서 우리가 가진 전문성의 맥락에, 그리고 우리가 다른 내담자들과 만나서 쌓은 경험의 맥락에 놓고 검토해 보도록 은밀하게 초대한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현명한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권한과, 내담자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점을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는다. 물론, 일단 내담자가 우리에게 현명한 사람의 역할을 맡아 달라고 요청할 때에는, 우리가 때로는 정말로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비결이다. 즉, 우리는 내담자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다른 관점에서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의 노력을 관찰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상의 방법이 존재한답니다; 그러니 또 다른 관점을 한 번 봅시다.” 그런데 여기에서부터는, 우리가 내담자보다 그들의 현실을 더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일이 놀랄만큼 쉬워질 수 있다. 나는 체계 이론 안에 내재되어 있는, 현실을 큰 틀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을 긍정하지만,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관점은 각자가 처해 있는 맥락에 따라 제한된다는 사실도 체계이론에서는 동일하게 본질적이다. 제 8장에서 문화적 접근법과 포스트모던 접근법을 다룰 때 좀 더 깊게 생각해 보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적 전문성을 활용하는 방법과, 내담자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개발하도록 격려하는 방법(특히, 내담자들이 코끼리의 특정 부분을 좀 더 잘 알고 있는 경우)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복잡한 선택 과정이 존재한다. 

     

    <재원 생각>

    우리가 흑백 논리에 빠지는 이유는? 코끼리를 만지는 맹인들 이야기처럼, 시야가 좁기 때문이다. 각자 코끼리의 "부분"만 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한 발 떨어져서 "전체"를 보면, 둘 중 하나만 맞는 게 아니라((A가 맞으면 B가 틀리고 A가 틀리면 B가 맞다), 둘 다 맞다(C라는 상위 맥락에서 보면 A와 B는 C의 부분으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으려면, 부분(A, B)이 아니라 전체(C)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볼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어떤 관점을 은밀하게 전제하고 있다: 우리가 C라는 전체 맥락에서 대상을 볼 수 있다는 믿음. 상위 차원에 올라서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 대상이 간단한 체계라면 가능하다. 예컨대, 두 아이가 싸웠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들의 논리는 단순하고 간단하기 때문에(그리고 성인인 부모가 이미 경험해 본 일이기 때문에) 부모처럼 아이들을 내려다 보면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상이 복잡한 체계라면? 상위 차원에 올라설 수 없다면? 

     

    (2) 의미 있는 전체

     

    체계이론에서는 복수의 관점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맥락이라는 두 번째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울러, 각 요소를 합쳐 놓으면 전체보다 더 커지는 현상을 묘사하는 ‘비합산성(nonsummativity)’이라는 개념도 있다(Watzlawick, Bavelas, & Jackson, 1967). 이것은 새로운 관념이 아니어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서 자주 발견된다(Hanson, 1995). 한 편으로, 비합산성은 여러 가지 현상을 의미 있는 하나의 전체로서 조직하려는 인간적 경향성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20세기 초의 게슈탈트 심리학을 생각해 보면, 인간의 인식에 대한 막스 베르트하이머가 떠오른다(King & Wertheimer, (2005); Wertheimer, 1959).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서, 우리의 두뇌가 모호한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채워 넣는 방식을 그려냈다. 인간의 두뇌가 전체의 모습을 지각하는 사례를 보여주기 위한 연습문제를 소개한다. 그림 2.1을 관찰하고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 보라. 이 그림은 1915년에 Punk humor 잡지에 실린 W.E. Hill의 그림이다(Weisstein, 2010). 일반적으로 피실험 대상자들은 (단단한 턱을 관찰자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으며, 목걸이를 걸고 있는) 젊은 아가씨를 보거나, 혹은 아래 쪽을 바라보고 있는 커다란 코를 가진 노파의 모습을 본다. 

     

    그림 2.1: 젊은 여성과 노파 사이를 반복해서 보게 되는 지각 경험

     

    이런 유형의 연습문제는 매우 흥미로운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무의식적인 과정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느 한 쪽의 이미지를 인식하고, 이는 우리가 이 그림을 즉각적으로 일관된 어떤 것으로 조직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사실은, 어째서 우리가 코끼리의 한 부분으로 전체를 인식했다고 생각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그림을 다른 버전으로 바라보는 일은 그림 안에 주어진 다양한 정보를 해석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연습문제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지각이 전환될 수 있고, 때때로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이 전환될 때는 지각의 전환이 갑자기 일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학생 중에서 그림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 버전의 그림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림 안에서 한 부분을 주목하게 한다. 그러면 그 부분을 둘러싼 맥락이 전환되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으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만약 학생들이 그림 속에서 노파를 보고 있다면, 나는 학생들이 노파의 코를 젊은 여성의 턱으로 보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의 핵심은, 새로운 사물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대상 안에 존재하는 핵심 부분에서 시작해서 새로운 전체라는 그림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하나의 전체에 존재하는 다른 여러 가지 부분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우리가 전경(foreground)으로 보았던 인식 내용을 수정할 수 있고, 배경(background)으로 보았던 인식 내용도 수정할 수 있다. 나는 전경과 배경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전환이 심리치료에서 일어나는 일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담자들도 자신에게 가장 의미가 있고 중요한 일에 관심을 쏟지 않는가. 여러 지점의 유리한 위치에서 대상을 관찰하면, 인간의 인식이 새로운 전체로 조직되는 과정처럼, 의미 있는 관점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일단 그러한 전환이 일어나면, 원래의 인식으로 돌아가는 일이 현저하게 어려워질 수 있다. 

     

    비합산성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법은, 물체의 집단이 총체적인 전체가 되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다. Laszlo(1972)는, 땅콩이 담겨 있는 그릇은 무더기이지만 땅콩 나무는 하나의 전체라는 사실을 보려하면서,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무더기와 총체성을 가지고 있는 전체를 구분한다. 체계에 대한 우리의 정의로 돌아가서, 우리는, 땅콩이 담긴 그릇은, 하위 부분들 사이에 교환되는 상호작용에 의해서 유지되는, 하나로 조직되는 전체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땅콩 나무는 분명히 그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인 어떤 집단이 체계에 대한 정의에 부합할지 안할지를 결정하는 일은 좀 더 까다롭다. 비합산성 개념을 검증할 때, 해당 집단을 하나의 전체로 전환시켜주는 여러 가지 상호작용과 관계를 들여다 보는 것이 좀 더 쉽다. 우리 모두는, 몇몇 집단에서 일어나는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 알고 있는데, 이런 집단에서는 특정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섞여서, 단지 개별 구성원들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느낌 혹은 분위기가 형성된다. 조직과 팀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선수들 간에 적절한 관계 역동을 끌어내면 성공을 최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은 개별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집단 안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좀 더 큰 어떤 존재의 한 부분으로 소속되는 느낌이라는 의미이다. 마이클 조단이 시카고 불스 농구팀을 지배하고 있던 기간에 시카고에서 살면서, 나는 선수들이 개별 플레이와 협력 플레이를 오고가는 모습을 매혹적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마이클 조단 같은 세계적 수준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로운 부분이지만, 처음부터 마이클 조단의 기술이 성공하기에 충분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Phil Jackson 감독의 지도를 받기 시작하면서, 팀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지도력, 시간, 그리고 훈련을 통해서, 개별 선수들은 하나의 팀이 되어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농구 팬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듯이, Jackson 감독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 팀은 여섯 번이나 압도적으로 챔피언을 거머쥐었다. 이 사례에서도 전체는 여러 가지 하위 부분을 합쳐 놓은 것 이상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의 체계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개념은 표면적으로는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많은 서양 학문은 정확히 반대 개념에 기초해 있다. 체계론적 사고를 기초했던 사람 중의 하나인, Ludwig von Bertalanffy에게로 돌아가서 본다면, 가변성(variability)을 줄이기 위해서 채택하고 있는 실험 절차의 많은 부분이 현상을 환경에서 분리시키는 사고에 기초해 있음이 명확하다. Bertalanffy 세계관의 맥락을 살펴 보면, 그가 교육을 받을 당시에는 생물학 실험이 두 가지의 상반된 힘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었다(Bertalanffy, 1968; Davidson, 1983). 첫 번째 관점인 물질주의(materialism)에서는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핵심 물질 혹은 구성 요소가 존재한다고 전제했다. 물질주의적 전통에서는, 과학자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떠한 생물체도 핵심 구성 요소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생기론자들(Vitalists)은 생물학적인 과정을 이끄는 중요한 생명력(significant life force)이 존재하며, 생물학의 기계론적인 관점에서는 1차적인 동력(the primary force)을 간과한다고 느꼈다. 이러한 관점은 진화적 적응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들여다 봄으로써 기술할 수 있다. 기계론적 관점에서 보면 환경에 유리할 수도 있고 유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유전적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생기론적 관점에서 보면 목적론적이고 최종적인 원인이 있는 기본 계획이 존재한다. 

     

    Bertalanffy가 채택한 접근법이 대단한 이유는 생물학을 바라보는 제 3의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궁극적으로 연결했기 때문이었다. Bertalanffy는 기계론적인 접근법과 생기론적인 접근법 중에서 어느 편이 실제적인 진리인지 논증하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서 이러한 개념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검토하고, 무엇을 다루고 있지 않은지를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계론적인 관점이 가지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은 개방체계에서보다는 폐쇄체계에 좀 더 잘 적용되는 것이라고 적었다. 폐쇄 체계에서는, 여러 가지 현상이 체계 외부의 환경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구성 요소로 환원된다. 반대로, 개방체계에서는, 각 기관이 환경과 정보를 끊임없이 교환하고, 체계와 환경이 서로 적응하고 서로 움직임의 근거가 된다. 개방 체계를 보면, 생명체는 언제나 더 큰 체계의 부분이고, 그와 동시에 더 작은 구성 요소의 상위체계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과학자로서 우리가 가진 바람은,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어떤 대상이라도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으로 잘개 쪼개어서 그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며, 물론, 이러한 방법론은 우리에게 대단한 과학적 진보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Bertalanffy이 개방 체계를 관찰한 방식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전체적인 맥락 밖에서 부분을 바라보는 한계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재원 생각>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 우리가 학교에서 체계이론을 배우면 대단히 딱딱하게 느껴지고 피상적으로 느껴진다. 우리 삶과 별로 관련이 없는 것 같고, 개념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왜 그럴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체계이론은, 철저한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자라나고 살아가고 있으므로 총체적 관점(체계적 사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양 사람들이,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대단히 어렵게 머리를 쥐어 짜서 만들어 놓은 내용을, 여러 번의 번역을 거치면서 복잡하게 꼬여서 전달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컨대 한국인은 어떤가? 어떤 한 사람을 피사체로 사진을 찍을 때도 늘 뒷배경을 고려하고, 모든 사람들을 한 프레임에 넣으려고 노력한다. 한국인이 겸손을 커다란 미덕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집단이라는 상위 차원의 배경/맥락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쩌면 한국인을 상위 맥락만 중요시하는 집단주의자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위 차원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고 고려할 수 있으니 적어도 서양인보다는 맥락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 단선적 관점이 가지는 한계

     

    오늘날 과학자들은 이러한 단선적 접근법이 가지는 한계점과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사례 중 하나는, 영양에 대한 연구가 증가하니 실제로는 다이어트와 관련된 질병이 증가한 과정에 대해서 쓴 Michael Pollan(2006, 2008)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난 수 십년간 표면적으로 나타난 다이어트 권고의 역효과에 대해서 익숙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Pollan은 이러한 오류를 야기하는 근본적인 과학적 결함을 드러냈다. 과학자들은, 환원주의적인 전제를 활용해서 음식을 화학적 기본 요소로 쪼갠 후에 화학적 기본 요소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특정 질병을 다룬다. 이러한 논리는 비만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활용되어왔고, 몇 가지 놀라운 결과를 낳기도 했다. 만약 우리가 지방이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보다 단위 그램당 칼로리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음식에 포함된 지방을 줄여서 칼로리 함유량을 줄이는 방법이 논리적이다. 이렇게 되면, 대중의 건강과 저지방 식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식품 산업의 이익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접근법이 가져온 의도치 않은 결과는 국가적 수준의 비만 정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Pollan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어째서 이런 접근법이 효과를 내지 못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이어트와 영양에 대해서 단선적이고 환원주의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충분한 사례가 존재한다. 

     

    개방 체계 접근법은 비만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것이다. 개방 체계 접근법에서는, 미국적인 다이어트의 고-칼로리 구성 요소를 떼어내서 좀 더 칼로리가 낮은 대체물로 교체하려고 하지 않고, 음식의 구성 요소가 함께 조합되는 방식을 점검하면서, 비만 문제를 좀 더 총체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사람들이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적용하는 다이어트 방법과 운동 요법은 단일한 원인(고-지방 다이어트)을 찾을 뿐만 아니라 변화의 패턴을 찾는 방법과 비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방 체계 접근에서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양과 종류, 운동의 양과 시기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작용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체중을 유지하고 늘어나는 과정에서 가족이 보이는 패턴을 관찰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초점을 확대하면 질문이 많아져서 압도될 수 있다. 유전적 요인, 섭취한 칼로리의 숫자, 음식의 신선도, 문화적 가치관, 운동의 주기, 운동의 강도가 모두 상호작용하여 한 사람의 몸무게를 결정짓는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이지만, 이 그림은 우리가 어떤 변수를 배제하고 있는지를 말해주지도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말해주지도 않는다. 부모의 DNA를 수정하고, 걷기 운동을 시키거나,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가공식품을 먹지 말도록 해야 할까? 

     

    <재원 생각>

    환원주의란 무엇인가? 예컨대, 코끼리는 복합적인 대상인데, "코끼리의 두뇌가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바라보면서 코끼리의 머리만 강조하는 사고방식이다.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로지 음식의 칼로리에만 신경쓰면 각 음식에 함유된 칼로리만 줄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개별 음식의 칼로리는 낮더라도 섭취하는 음식의 전체적인 절대량은 늘어난다면 결국 다이어트에 실패할 것이다. 

     

    (4) 맥락적 연결성

     

    체계론적인 관점을 다양한 문제에 적용하는 것과 관련된 희소식은 문제를 맥락 속에서 바라보는 방법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Google Earth에서 원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새로운 능력을 연상시킨다: Google Earth는 전체 지구를 나타내는 화면으로 시작되고, 좀 더 작은 구역으로 확대하면서 들어가서 특정한 지점에 도착한다. Google Earth를 사용하면, 우리는 체계이론에 담긴 부분/전체 사고에 관한 시각적이고, 거의 본능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동이 도시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골목이 동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골목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생태학적 체계 이론이라고 알려진 이론을 개발한 발달 심리학자인 Uri Bronfenbrenner(1979)의 저작을 연상시킨다. 

     

     

     

     

    <그림2.2> Bronfenbrenner의 생태학 모델을 가족체계에 적용한 그림. Bronfenbrenner, (1979). 

     

    그림 2.2에 나타난 모델은, 개별 아동이 언제나 다양한 환경 안에 포함되며, 이러한 맥락적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을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모델을 활용하면, 각 맥락이 다양한 수준으로 이 가족이 겪고 있는 특정 문제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치료에서 모든 변수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수준을 고려한다면 문제를 유지시키는 요인에 대한 좀 더 풍부하고 현실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맥락적 모델을 활용하면, 필자를 만나기 위해서 치료실에 방문했던 16세, Ryan의 사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Ryan은 최근에 학습 장애로 진단 받았으며, Ryan을 진단한 심리학자가 그의 부모를 나에게 부부치료 사례로 의뢰했다. Ryan의 학교 성적은 평균보다 살짝 낮은 수준이었지만, 사교성이 좋았고, 스포츠를 잘 했으며, 학생회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학교 성적이 뛰어나며 방과후 활동을 아주 잘하는 13세의 여동생, Erin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최근에 Ryan이 받은 진단 내용을 감안하면, 부모와 오랫 동안 갈등을 일으켜 온 낮은 학교 성적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Ryan의 부모는 커다란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던 44세의 Lisa와, 작은 회사에서 부동산 법을 다루고 있던 43세의 Bill이었다. Lisa는 동부 출신으로 노동 계급에 속했던 아이리쉬 카톨릭 대가족에서 자라났다. Lisa는 학업 기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면서 사립학교를 다녔다. 그녀는 성인이 된 후에 우울과 불안감 때문에 여러 번 치료를 받았다. Bill은 와이오밍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지역 은행의 사장이었고, 어머니는 가족이 다니던 장로교회와 관련된 다양한 자선기관에서 활동했다. Bill은 학교를 다니면서 몇 번의 가정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Ryan이 학습 장애로 진단받은 후에, Bill은 자신이 학창 시절 받았던 성적이 Ryan의 성적과 비슷하기 때문에 자신도 진단받지 않았지만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Lisa는 자신이 주도적이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자녀들에게도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라고 강조한다. Bill은 자신이 성공한 이유는 대인관계 기술이라고 느끼고,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에 가치를 두고 있다. Lisa는 Bill이 Ryan에게 충분한 규율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Ryan이 아들의 학업에 좀 더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느낀다. 반면, Bill은 Lisa가 Ryan에게 좀 더 격려를 해 주고 지지적인 태도를 취하기를 바란다. 

     

    추가적인 정보의 각 부분을 탐색하면서, 우리는 각각의 맥락적 변수가 치료의 초점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Bill과 Lisa가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Bill이 규율을 세우는 일을 힘들어 하는 반면, Lisa는 좀 더 엄격하고 빈틈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혹은, 서로 다른 업무 환경에서 일하는 경험 때문에 두 사람이 가정의 규율과 분위기를 서로 다르게 보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혹은, 서로 다른 종교적 배경 때문에 두 사람이 양육적 역할에 대해서 서로 다른 부분을 강조해 왔거나,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전체적인 문제에 원인이 될 만한 다양한 맥락적 부분을 점검하다 보면, 이 외에도 계속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맥락의 문제를 고려하면, 치료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개입 방법은 늘어나지만, 혼란스러움과 불명확함도 늘어날 수 있다. 이 책 전체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체계론적인 개념들을 함께 고려하면 최고의 효과가 나타나며, 우리가 가장 중요한 맥락적 요소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특정한 이론과 연결된 다양한 치료적 전략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양한 맥락적 요소에 초점을 둘 뿐만 아니라 내담자 체계를 개방 체계로 생각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야기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심리치료 그 자체가 맥락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Michael Karson(2008)은 자신이 보유한 공연 이론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치료자가 효과성을 극대화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치료자의 역할을 활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탐색했다. Karson은, 체계론적인 렌즈를 적용해서, (역주: 두 사람이 상담에 참석하는 치료 형태) dyadic therapy가 본질적으로 커플 치료 경험이라고 말한다. 양측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서 상호작용의 맥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개방 체계 관정에서는 내담자와 치료자는 함께 만나는 과정을 통해서 변화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재원 생각>

    위 사례에서 학습 장애로 진단받은 사람은 아들인 라이언이다. 그런데, 라이언이 아니라 부모인 빌과 리사가 소환되었고 부부치료를 받는다. 왜? 빌과 리사를 부부치료 장면에 불러들인 사람(라이언의 심리치료자)은 라이언의 문제를 체계론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다. 즉, 라이언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라이언을 포함하는 더 큰 단위, 즉 가족, 특히 부모와 상호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부모의 학습능력이 유전된 것일 수도 있고, 좀 더 복잡하게 보면 부모의 교육관이 다르기 때문에 라이언이 혼란스러움을 느껴서 학습부진 현상이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훨씬 더 많은 맥락적 이유가 가능하다!) 

     

    (5) 문제를 맥락 속에서 바라보기

     

    Murray Bowen의 치료 모델은 사실상 맥락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Bowen, (1985); Nichols & Schwartz, 2001). 보웬의 접근법은 확실히 가족 역동에 대한 이해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개인 상담을 할 때 가장 자주 적용하는 가족치료 접근법이기도 하다. 아울러 보웬은 자신의 가족 경험을 솔직하게 기술한 문헌을 통해서 개방체계 관점을 모델화하였다. 보웬은 개인 간의 상호작용과 집단 간의 상호작용을 들여다 보는 일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방법이라고 보았다. 그는 각 개인이 자율과 친밀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식에 집중하면서, 부분과 전체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보웬에 따르면, 체계는 집단과 개별 구성원 욕구를 모두 명시적으로 가치있게 수용할 때, 그리고 체계 안에서 이러한 욕구에 대해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규칙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잘 기능한다고 한다. 보웬은 여러 가지 관점을 활용하라고 강조하고, 기능적인 가족은 개방체계임을 보여준다. 

     

    1913년 태어난 보웬은, 정신분석 훈련을 받은 정신과 의사로서, 가족 역동이 개인의 병리에 영향을 주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앞 장에서 언급했듯이, 보웬은 1954년부터 1959년 사이에 국립 정신건강 연구소에서 조현병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Nichols, 2010) 환자들이 가족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조현병에 대한 당대의 지배적인 관념은 아이가 초기에 어머니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조현병의 원인이라는 것이었던 반면에, 보웬은 현재 가족원들이 서로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문제 행동을 유발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아울러 보웬은 어머니에게만 쏠려 있던 초점을 가족 전체로 확대시켰고, 아동의 초기 경험만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라도 가족원 사이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무의식적 과정에도 관심을 쏟았다. 

     

      보웬은 가계도를 개발한 가족치료자로 유명하다(Bowen, (1985); Kerr & Bowen, 1988). 가계도는 여러 개의 도형과 선으로 가족 구성원과 관계망을 나타내는 도구이다. Ryan의 가족을 가계도로 나타낸 것이 그림 2.3이다. 

     

     

    <그림 2.3> Bill과 Lisa의 3세대 가계도

     

    가족 맥락을 시각화한 이 그림을 통해서, Bowen은 한 사람의 갈등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최소한 3세대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Bowen은 정신분석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을 서로 결속시키는 무의식적인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가계도를 탐색하면서 가족원이 공유하는 신념과 불안의 패턴을 강조했다. 

     

    <재원 생각>

    머레이 보웬은 보수적인 미국에서 대가족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군대에서 가족 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은 많이 만났고, 이를 계기로 전역후 정신과 전문의가 되어 정신분석학을 배웠다. 보웬은 조현병 환자 치료를 하다가 (1) 환자들이 감정과 생각, 자신과 가족을 구분하지 못해서 자신을 통제할 수 없고 (2)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가족과 삼각관계라는 역기능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쉽게 말해서, 아버지에게 혼자서는 맞설 수 없으니 엄마를 끌어들이는 것). 

     

    (6) 소속감과 정체성, 사고와 감정

     

    Bowen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분화(differentiation)’인데, 그는 이 용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한다. Bowen은 분화된 개인은 친밀함과 독립성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으며, 생각과 정서를 동시에 활용해서 경험을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 생각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관계의 맥락 안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흥미로운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Bowen은, 분화 개념을 통해서 인간이 자율성에 대한 욕구와 친밀함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느끼게 되는 역동적 긴장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Bowen은 어떤 개인이 타인과 분리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분화된 사람이라고 기술했다. 분화라는 용어가 분리라는 개념과 약간 혼동될 수도 있지만, Bowen은 이 두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특히, Bowen 이론에 대한 좀 더 최근의 옹호자들은, 분화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개별화되어 있는 서구의 심리학에 일종의 해독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분화 개념은 개인의 욕구와 집단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웬은, 건강한 체계는 친밀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각 구성원의 독특한 정체성에도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분화를 촉진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이러한 가치들이 동시에 표현되지만 때로는 연이어서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두 가지 가치가 서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재원 생각>

    분화는 단절적인 분리가 아니다. (1) 감정과 생각을 구분하되 서로 관련지어서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고, (2) 원가족에서 자신을 구분해서 독립적인 사람으로서 존재하고 살아가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여러 학파에서는 자율성과 친밀감 사이에 존재하는 내재적 긴장을 강조한다. 하지만 Bowen의 분화 개념을 통해서 보면, 이러한 긴장에 대한 큰 그림을 매우 성공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 Bowen은 어떤 관계에서는 개인적 욕구를 만족시킬 공간이 없기 때문에 지나치게 가까워지거나 융합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반대편 극단에는 소원하거나 단절된 관계도 존재하지만, Bowen은 두 가지 패턴 모두 분화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필자는 분화의 개념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치료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말을 듣기 때문이다: 

     

      “가족 문제를 해결했어요. 마침내 가족에게 말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가족 문제가 없어요. 우리는 항상 대화를 하고, 생각도 늘 같거든요.”

     

    Bowen의 분화 개념은 두 가지 말이 각각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전략이 동일한 근본적 역동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체계이론에 기초해서 비-이분법적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자율성과 친밀성은 상호보완적 개념일 때 가장 잘 작동한다. 인간은 현실에 지지를 받고 안전한 관계 안에서 수용받는 느낌을 받을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뚜렷하고 적절한 정체성을 발전시킬수록 진실한 친밀성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재원 생각>

    분화가 잘 된 사람은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가족/친구에게 도움을 받지만, 그들에게 매이거나 종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독립적으로 잘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낸다. 

     

    아울러 Bowen은 분화라는 용어를 사고와 감정을 분리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사용하고, 구성주의적 방식으로 사고와 감정을 함께 사용했다. 때때로, Bowen의 접근법은 민감한 정서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강조하고, 지나치게 인지적인 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Bowen의 이론은 감정에 대한 욕구와 인지에 대한 욕구 양쪽 모두를 강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Bowen은, 개인이 타인과 구별되지만 친밀감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는 것과 유사하게, 각 개인이 사고와 감정을 구분할 수 없을 때 문제가 악화된다고 믿었다. 사고와 감정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감정 상태에 기초해서 충동적으로 반응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문제를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지나치게 이성적인 태도를 보인다. 우리가 좀 더 분화되면, 문제를 심사숙고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감정에 집중하고 우리의 정서적 반응을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다. 

     

    Bowen은 체계 안에서 분화를 촉진하기 위해서 의사소통을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하자고 주장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삼각화를 통해서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다양한 체계론적 접근법에서 삼각화에 대해서 논했지만, Bowen은 문제가 있는 삼각 관계가 발전되고 유지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특별히 도움이 되었다. Bowen에 따르면, 두 사람이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관련된 본질적인 불안을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은, 세 번째 사람을 삼각관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타인과 친밀해지는 신뢰할 만한 방법 중 하나가 또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사학 문헌 일반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심리학 문헌에서도, 한 집단 안에서 일체감을 만드는 방법 중의 하나는 이 집단을 다른 집단과 경쟁시키는 방법 - 공동의 적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존재한다. 하지만 Bowen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동의 적 현상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이런 형태의 역동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Bowen에 따르면, 두 사람 사이에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면, 자연스럽게 불안이 형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적절히 분화된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불안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불안을 서로 견딜 수 있다. 아울러, 두 사람은 각 개인의 욕구와 관계적 욕구를 존중하기 때문에, 갈등을 직접적으로 다룬다고 해도 결국은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적절하게 분화되지 않았다면, 자아를 위협하거나 관계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갈등이 좀 더 위협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러므로 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갈등에 제 3자를 끌여들여서 유사 친밀감을 찾는 편이 좀 더 쉬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 일체감을 느끼고 갈등하고 있는 사람과는 분리된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원래의 갈등이 야기하는 불안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체계는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간다. Bowen에 따르면, 설상가상으로,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서 삼각화를 활용하는 체계는 다양한 수준에서 삼각관계를 전환시킨다고 한다. 이런 체계 안에서, 우리는 연합이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불안이 일시적으로 축소되지만 근본적인 불안이나 갈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재원 생각>

    보웬에 따르면, 적절하게 분화가 된 사람은 (가족 안에서) 참지 않고 말을 하되, 지나치지 않게 말한다. 그런데 "의사소통"에 관해서는 보웬의 이론과 동양적인 가치가 상충하는 것 같다. 보웬 모델에서 보면 동양인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생각해서 말을 삼가하는 모습은 분화가 안되어 있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결국, 보웬 모델은 체계론적인 관점에는 서 있지만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적인 미국 문화에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일단은 개인이 집단에서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7) 유산을 되살리기

     

    그러면 Bill과 Lisa의 갈등을 이해하고 개입하기 위해서 Bowen 방식으로 어떻게 맥락적 요소를 활용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 가계도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Bill과 Lisa는 18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해 왔고, 16세인 Ryan과 13세인 Erin을 자녀로 두고 있다. Bill은 3형제 중 막내이고,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고향인 와이오밍을 떠나 타지로 이주했다. 그의 증조부모는 서부로 이주해서 목장을 경영했고, Bill의 가족은 그 지역에서 잘 알려졌고 존경을 받았다. 그의 형들은 모두 전문적인 목장 운영자가 되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가족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Bill이 십대일 때, 조부가 사망했을 때 수년 동안 정부와 밀회를 즐겼다는 스캔들이 드러났다. 이 여성은 Bill의 조부가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가족은 그녀를 설득해서 가지고 있던 자산을 팔고 그 지역을 떠나게 했다. Bill의 가족은 그 이후로 이 사건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의 가족은 대개 예의 바르고, 다정하며, 과묵했다. 

     

    Lisa는 다섯 형제 중에서 첫째였다. 그녀의 조부모는 모두 1920년대에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내 버스를 운전했고, 어머니는 파트 타임 미용사로 일했다. 그녀의 형제들은 현재 미국 전역에 퍼져서 살고 있고, 다양한 수준으로 직업적 성공을 이어오고 있다. 자매 중 한 명과 남자 형제 중 한 명은 법학 전문대학원을 졸업했고 둘 다 기업에서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의 막내 여동생은 사회복지사이다. 막내 남동생은 심각한 물질 중독을 겪어 왔고 현재는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Lisa의 부모는 남동생 일로 법적인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그녀에게 자주 연락을 한다. 남동생은 지금까지 치료 프로그램을 들락날락해 왔는데, 약물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다양한 법적 문제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의 물건을 훔친 일과 음주운전 때문에 기소를 당했다. 이런 일 때문에 가족들이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정서적인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가족들은 남동생이 어떤 문제를 저지르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고, 정서적인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Lisa에게 전화를 해 온다. 그래서, Lisa는 자신의 도움이 없으면 가족이 이런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Bill과 Lisa의 가계도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가족의 탄력성(resilience)과 가족의 어려움(challenge)이 만들어 내는 대조(counterpoint)를 보게 된다. 가족 안에 존재하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편이 쉬울 수 있다. 하지만 Bowen의 접근 방식을 채택하면, 가족의 관계망을 되살려서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사례에서, Bill과 Lisa는 상이한 양육 스타일에 관해서 만성적인 갈등에 빠져 있고, 이러한 양육 스타일은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양극화되어왔다. 가족적인 맥락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두 사람의 원가족이 가지고 있는 의식적, 무의식적 신념과 가치를 통해서, 최소한 이들의 상반된 양육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다. Lisa는, 질서, 규율, 생산성을 원할 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고 성공을 할 수 있게 도와 주는 가치를 말한다. 반면에, Bill은 다정한 관계와 평화를 유지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그는 화합하고 서로 지지하는 관계를 원한다. 

     

    비-이분법적 접근법으로 시작하기 위해서, 우리는 Lisa와 Bill이 취하고 있는 관점이 어째서 그들에게는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Bowen의 접근법은 Lisa와 Bill이 자신과 상대방의 관점을 함께 활용하는 것이 어째서 어려운지를 우리가 포착하려고 할 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기초가 된다. 개념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Lisa와 Bill의 분화를 어렵게 만드는 양가의 미해결된 문제를 지켜본다. 두 가족은,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가족의 문제나 변화 때문에 생기는 초기의 불안을 다루지 못하고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Bill의 가족은 조부의 비밀스러운 외도 문제를 정서적으로 외면하는 방식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Bill의 가족은 조화로움을 추구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긍정적인 겉모습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반응 패턴은 조부의 비밀스러운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학습 장애에 대한 부모의 반응 안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학교에서 대단한 좌절감을 경험했고, 부모가 자신의 낮은 성적 때문에 실망했다는 사실을 느꼈지만, 한 번도 이런 감정에 대해서는 이야기 해 본 적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법은 Bill에게 가정교사를 구해주는 것이었고, 이와 관련된 화제가 떠오를 때마다 다른 화제로 돌리는 방법이었다. 

     

    Lisa의 가족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가족 문제가 떠오르면 소란스럽고 강렬한 정서적 싸움을 벌인다. 즉, 가족 간에 대화와 접촉이 많아진다. 하지만 Bill의 가족처럼, Lisa의 가족원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패턴도 시간의 흘러도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좀 더 실제적으로 말하자면, 양 가족 안에서 여러 삼각관계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분화가 안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아들의 들쑥날쑥한 학교 성적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면, Lisa는 Bill의 좀 더 부드러운 방식에 화를 낸다. 그리고 둘 사이의 갈등은 심해진다. 이럴 때, Lisa는 어머니와 더불어서 아이들을 키울 때 남성들이 얼마나 쓸모가 없는지에 대해서 위로를 나누곤 한다. 어머니는 Lisa에게 Bill에게 너무 많이 반응하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왜냐하면 Bill의 가족이 그가 실패자이며 그동안 일구어 온 성공적인 경력이 가족 사업 때문이었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대개 그녀의 어머니는, Ryan을 Lisa의 동생인 John처럼 키우지는 말라고 경고하면서 대화를 마무리짓는데, 이는 또 다른 삼각화 행위를 완성시킨다. Bill은 이러한 갈등의 시기에 가족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그 대신, 확대 가족이 모두 모이게 되면, 원가족의 욕구를 현재의 가족에 투영한다. 그러면 Lisa는 분노하고 감정적인 방식으로 반응을 하고, Bill의 가족은 당혹스럽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예의바름으로 반응을 한다. 

     

    이상의 모든 상호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준 일이 최근에 일어났다. Lisa와 Bill은 Bill의 가족을 만나서 아버지의 70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일정을 세우다 보니, Ryan이 가족의 첫 번째 저녁 식사에 시간 맞춰서 도착하려면 SAT 준비반 수업 중에서 한 시간을 빼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Lisa는 Ryan이 대학을 가기 위해서 그 수업에 참여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면서, Bill이 자기 가족에게 금요일 저녁 식사에 가지 못할 것 같고, 토요일에는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기를 원했다. Bill이 Ryan은 이미 해야 할 준비를 다 했다고 말하자, Lisa는 화가 났고 Ryan의 성적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녀는 Bill이 아이들 일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강화시켜주는 친정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에, Ryan은 어머니가 자신을 너무 비난하고 지지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집에서 튀어 나갔다. 결국, Lisa는 의견을 굽혔고, 이 가족은 금요일 가족 모임에 참석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Bill은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면서, 가족에게 다정하고 긍정적으로 대했다. 반면에, Lisa는 흥분해서 살짝 무례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오고간 반응으로 이 가족의 패턴이 다시 확인되었다: Lisa는 흥분하고 화를 내며 자기 의견을 직선적으로 표현했지만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Bill은 Lisa의 분노를 흡수했지만 그녀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었고, 이 사안을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재원 생각>

    빌과 리사가 현재 겪고 있는 의사소통 문제는, 과거 원가족이라는 맥락을 고려하면서 이해해야 한다. 빌이 회피하는 이유와 리사가 덤벼드는 이유는, 원가족이라는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이것을 하늘 위에서 날고 있는 새의 눈으로 지면을 바라는 장면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하늘"이라는 맥락에서 내려다 보면, "지상의 갈등"이 다르게 보이고, 특히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사람들의 행위도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Bowen이라면 이 부부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우리가 체계론적인 관점을 가지면, 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전체 체계에 영향을 줄 것이고, 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 개인에게 영향을 줄 거라는 점을 생각할 것이다. 가족 중에서 부부만 치료실에 계속 나왔기 때문에 치료과정의 중점은 Bill과 Lisa 부부가 각자 좀 더 분화되도록 도움으로써 부부 관계를 개선하는 것에 맞춰질 예정이었다. 첫 번째 단계는 부부와 가계도를 나누고 그들의 반응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 단계는 예비적인 단계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로 강력한 개입 기술이 된다. 가계도를 그리는 목적 중 하나는, 문제를 좀 더 폭넓은 맥락 속에서 바라 보는 것이다. 이 커플을 사례로 활용한다면, Bill은 Lisa의 부정적인 시각과 엄격함이라고 믿고 있고, 반면에 Lisa는 회피와 무책임성이 문제라고 믿고 있다. 이 부부는 문제를 특정 행동으로 정의하기보다는, 서로 상대방을 문제로 규정하면서 상담을 시작한다. 하지만 가계도 작업을 하면서 부부는 가족 역동의 맥락 안에서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문제를 다시 정의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아이들을 위해서 두 사람이 어떻게 협력할지 모르고, 비생산적인 갈등과 회피의 유산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몇 가지 가족 패턴 때문에 서로 협력하기가 힘들어지지만 이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계도를 그리는 방법이 가족을 단지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계도를 완성시키려면 반성적 사고과 호기심이 필요하며 통찰도 필요하다. 

     

    (8) 친밀감을 좀 더 분명하게 만들기

     

    치료자는, 가계도의 설명을 좇아가면서, 커플이 분화를 좀 더 잘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논의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만약 우리가 분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를 기억한다면, 이 커플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원가족에 대해서도 좀 더 분화될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갖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들인 Ryan의 성적이 걱정될 때, Lisa는 불안감을 느끼는 방법을 배우고 Bill에게 분노 뿐만 아니라 두려움도 이야기 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아울러, 정보와 정동을 함께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좀 더 잘 종합할 수 있다. 단순히 Bill이 Ryan의 SAT 공부를 방해하려고 한다고 가정하기보다는, Bill에게 Ryan이 금요일 오후 SAT 준비반 공부를 빼 먹으면 정확하게 어떤 부분을 따로 보충해야 할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고, 만회할 방법이 있을지 함께 알아볼 수도 있다. 

     

    아마도 당신은 Bill이 Lisa와 다른 이유로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Bill은 수동적으로 Lisa가 원하는 것을 수용하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모든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향후 일정을 살펴 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Lisa에게 직접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만약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원가족과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좀 더 쉬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Lisa가 Bill에게 불평하기보다는 친정 어머니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Bill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만약 삼각화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고에서 감정을 분화시키고, 사고와 감정을 대비시키기보다는 함께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훨씬 쉽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Lisa가 친정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Bill에 대해서 불평할 때, 이 행동이 암시하는 바는 그녀가 Bill에게 분노와 거부감을 느낀다는 뜻이고 이 분노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Bill의 역할은 Lisa의 거울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Bill이 원가족에서 좀 더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조용히 평화를 유지하고 표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갈등을 감수할 수 있다. 이 경우에, Bill은 금요일 가족 모임을 계획한 여동생에게 전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 모임을 건너 뛸 가능성도 고려한다. 그리고 Bill은 가족 안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인 불안을 들여다 보면서, 이런 대화가 자신의 가족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는 자신의 핵가족이 가진 욕구와 확대 가족의 바람이 서로 배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 암묵적인 가족 규칙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Bowen의 테크닉이 가지는 특징은 분화를 촉진하기 위해서 편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Bowen은 편지는 반감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Bowen은 분화를 촉진하기 위해서 내담자로 하여금 가족 상담 회기에 다양한 가족원을 초청하게 하면서 개별 가족원들과 만나는 방식으로 유명했다. Bowen은, 이 특정 테크닉과 상관없이, 사고와 감정을 사용하는 능력 뿐만 아니라 개인의 욕구와 집단의 욕구 사이에서 협상하는 방법을 항상 옹호했다. Bowen은 전반적으로 다양한 관점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Lisa 및 Bill과 함께 만나면서, 그들이 원가족을 대하는 방식과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에게 맞추는 방식을 들여다 보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목표를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Bill과 Ryan의 강점에 주목하면서 혼란과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게 되자, Lisa는 Bill에게 좀 덜 공격적으로 반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걱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친정 어머니와 여동생들에게 전화해서 다른 가족원(주로 John이나 Bill)에게 책임을 돌리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그녀는 그동안 얼마나 자신의 성공과 John 및 Bill의 한계를 대비시켜서 자존감을 올려 왔는지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통찰에 도달하자 우리는 그녀의 진실한 강점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녀는 자신이 가족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그들과 친밀감을 느끼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가 가족원들에게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게 되자, 자신이 원하는 친밀감과 인정받는 느낌을 Bill과 좀 더 편하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Bill은 Lisa와 확대 가족에게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해야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Lisa의 비판적인 태도가 상처를 주는 방식을 확인하고 그녀에게 말할 수 있게 되자, Bill은 가족이 거리를 유지해서 느끼던 실망감과 외로움을 곧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식구들은 그에게 공공연히 비판적이지는 않았지만 정서적으로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Bill은 이제 그들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는 대신에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Bill은 아버지는 당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셨지만 자신은 아들인 Ryan에게 감정을 표현하기가 좀 더 쉽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Ryan이 바라는 게 있을 때 자신의 감정을 쉽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갈등했던 일과 아버지에게 바랐던 일을 Ryan에게 말하게 되자,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의 일부를 표현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록 Ryan은 단 한 번도 부모와 함께 상담에 오지는 않았지만, 이 사례는 이번 장의 처음에 언급했던 바,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양육에 대해서 논쟁할 때, Bill과 Lisa는 원가족과 직접 연결된 문제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결혼 관계에 남아 있는 과거의 문제까지 다시 보여주었다. Ryan은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 발달에 좀 더 큰 영향을 줄 삼각관계의 일부가 되었다. Bill과 Lisa가 원가족에 연결된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자, 삼각관계 안에서 Ryan을 좀 더 잘 떼어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Ryan이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거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가족에게는 Ryan이 SAT 준비반 수업을 빼먹었던 것과 비슷한 경우가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전통적인 심리학적 관점을 따랐다면, 부모를 교묘하게 조종하고, 가능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청소년에게만 집중할 수도 있고; 우울하고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어머니에게만 집중할 수도 있으며; 수동-공격적이고, 정서적으로 표현능력이 부족한 아버지에게만 집중할 수도 있었다.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문제를 좀 더 폭넓은 맥락 안에 위치지으면 전통적인 설명에 포함된 사실과 제한점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제를 맥락 안에서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문제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병리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울러, 원가족 문제에 보웬 접근법으로 접근하면 두 사람이 각각 자신의 관점이 타당하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고, 동시에 전체에 들어맞는 방식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즉, Bill과 Lisa는, 마치 코끼리를 만지는 맹인들처럼, 자신들이 만진 코끼리의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되면서 이와 동시에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서도 좀 더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 체계 이론으로 돌아가서 본다면, 맥락이라는 관념은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것이다. 어떤 문제를 맥락 속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그 문제가 내포되어 있는 모든 체계와 하위체계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복수의 관점을 활용한다면,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우리가 포함되어 있고 맥락의 전환에 따라 우리도 전환될 수 있는 체계 안에 제한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복수의 관점을 활용하면, 어떤 문제를 다루기 위한 다양한 조망점을 가질 수 있다. 아울러, 비환원성이라는 관념을 견지하면, 부분을 조합한다고 전체가 형성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부분과 전체로 돌릴 수 있다. 그 대신, 우리는, 개방체계라는 관념을 활용하고 상호작용을 관찰함으로써, 총체성과 부분 및 전체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Bowen의 이론과 같은 관점을 가지면, 우리가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진 개체임과 동시에 더 큰 체계의 부분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부분과 전체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역동적인 긴장은, 체계란 언제나 움직이는 목표물이며, 인과성과 변화에 대해서 다룰 때 다시 생각하게 될 현상임을 의미한다. 

     

     

    <재원 생각>

    보웬 모델을 사진으로 비유하자면, "드론" 사진이 적절할 것 같다. 이는 흑백 논리를 벗어나는 방법이다. 

     

    =====

     

    방명록 링크(아직도 안 적으셨다면? 클릭!) 

    https://empowering.tistory.com/guestbook 

    연락처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 
    _ 휴대전화: 010-8773-3989 
    _ 이메일: jaewonrhie@gmail.com 
    _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dc9427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