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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 일기 (D+608)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3. 10. 2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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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딸: (꽈당, 하고 넘어진다.)
    나: 봄아~ 괜찮아, 일어나.
    아내: 어휴, 오빠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나는 어린 딸아이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자주 올린다. 웃는 사진, 우는 사진, 어디 놀러가서 찍은 사진 등, 많이도 올린다. 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나를 무슨 대단한 '딸 바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나는 많이 다정하고 세심한 아빠는 아니다.

    물론, 40대 후반에 기적처럼 얻은 딸이 무척 소중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쏙 빼닮은 아이를 만들고 함께 키우는 일상이 선물 같다. 그러나 나는 원래부터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순발력도 상당히 부족해서 아이가 넘어지면 우선은 멀뚱히 쳐다본달까.

    한편, 내 아내는 발달장애인을 20년 이상 도운 베테랑 사회복지사다. 그래서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다. 정신없이 아이에게 밥을 먹이다가도 내가 잠시 숟가락질을 멈추면, '오빠, 뭐가 필요해요?' 라고 말할 정도.

    그러니 아이가 넘어지기라도 했을 때, 내가 다소 무심하게 '괜찮다'고 말하면 답답해 한다. 재빨리 움직여서,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달래 줘야 하는데, 멀뚱히 쳐다 보니까. 그레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인데, 이럴 때 보면 영 아니야."

    부인하지 못하겠다. 확실히, 나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아주 훌륭한 아빠상'은 아니다. 적어도, 딸 아이가 보이는 작은 몸짓마다 민감하게 알아채고 반응하며 우쭈쭈 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내에게는 혀 짧은 소리도 곧잘 내는데, 이상하게 딸에게는 안 된다.

    그냥 깔끔하게, '그리 좋은 아빠는 못 된다'고 인정하련다. 맞다. 나는 '딸 바보'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정적이며 순발력마저 좋은 엄마(아내) 옆에 서 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나를 잘 아니까 스스로 속일 수는 없다.

    하지만 딸아이가 넘어질 때마다 내가 습관적으로 내뱉는 '괜찮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변호를 해야겠다. 이 '괜찮아'는 어디에서 왔을까. 당연히, 내 어린 시절에서 왔겠지. 가난한 집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자란, 어린 시절을 조용히 떠올려 본다.

    나는 다 크고 나서 4, 5년 정도 개인 상담을 받았다. 내가 상담을 공부했기 때문에 내담자가 되어보는 경험도 필요했지만, 그 목적으로 상담을 받지는 않았다. 삶이 공중에서 산산조각나는 어떤 일을 겪고, 가만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상담을 받았다.

    참 신기했다. 사실 언제나 눈 앞에 보이던 문을 그냥 슬며시 열고 나오면 되었을 텐데, 바보처럼 지나치게 멀리 돌아왔다고 느껴졌으니까. 그래도 대단히 긴 시간 동안 어린 시절을 복습하면서, 내가 너무나 듣고 싶었던 어떤 단어를 찾고 인정하게 됐다.

    "괜찮아."

    바로 이 단어였다. 동네 공터에서 형, 누나들과 함께 놀다가 넘어질 때마다 듣고 싶었던 말. 일하러 나가셨다가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에게 듣고 싶었던 말. 외롭다고 느끼고 마음이 공허할 때마다 누군가에게는 듣고 싶었던 말. 그러나 거의 듣지 못한 말.

    처음엔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까맣게 몰랐다. 수십 년 동안 내 마음은 어떤 말을 듣고 싶었다고, 정말 미치도록 듣고 싶었다고 울부짖는데,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목은 탸 들어 가는데 물을 마셔야 할지 술을 마셔야 할지 모르는 상황.

    나는 아주 어릴 떄부터 내가 고아 같다고 느끼곤 했는데, 아마도 이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짧은 한 단어인데, 진짜 별 말이 아닌데, 매일같이 듣고 싶지도 않았는데, 정말 듣고 싶을 때 한 번씩만 들었어도 이렇게 허기를 느끼진 않았을 텐데...

    "봄아, 너는 아빠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니?"

    그렇다면, 우리 딸은 아빠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할까. 쩝...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이구, 잘 했어요"일 수도 있겠고, "우리 딸이 제일 예뻐"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나처럼 고정된 어떤 단어가 아니라 상황마다 매번 달라질 수도 있겠다. 으이그~ 어렵다!

    특정한 말이 중요하진 않으리라. 태도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리라. 매번 알아차리진 못해도, 딸 아이 관점을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리라. 말하자면, 딸 아이 관점에서 느끼고 딸 아이 시각에서 생각해야 하리라.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면 좋아지겠지.

    나는 나 자신을 희망적으로 바라본다. 아주 늦게 돌아왔지만(거의 50년이 걸렸지만), 마침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원망만 하면서 주저 앉아 있지 않고, 좁은 시야를 찢으면서 스스로 마음을 넓혀 왔기 때문에. 삶은 방향이 중요하기 때문에.

    2023년 10월 10일 새벽에, 이재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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