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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663)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3. 12. 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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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우리 예쁜 봄아, 자~ 딸기 먹어."

    봄: (내가 준 딸기를 받아서 맛있게 먹다가 또 다른 딸기를 손에 쥔다.)

    나: "옳지, 또 먹고 싶지? 자~ 딸기 또 먹어."

    봄: (손에 쥔 딸기를 나에게 내밀며) "아빠!" 

    나: "응? 아빠 먹으라고? 이 딸기, 아빠 먹으라고?"

    봄: "응! 아빠! 응응(딸기)!"

    나: "아이고~ 우리 딸, 기특하네. 이제 겨우 22개월 된 아이가 아빠 생각을 다 하고."


    아내가 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최근까지, 줄곧 겁이 났다. 아빠 나이와 자폐스펙트럼 장애(ASD)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의학적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40대 아버지는 20대 아버지에 비해서 자폐 아동을 얻을 가능성이 약 30% 높다.) 물론! 어쨌든 내가 만든 아이다. 자폐가 아니라 그 어떤 심각한 장애가 있다고 해도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책임진다. 다만, 나 때문에 ASD를 얻게 된다면, 그보다 더 미안하고 죄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후에도, 겁이 나서 자꾸 확인했다. 결국, ASD로 진단받은 아이는 사회적인 상호작용 수준이 낮다. 기본적으로 눈맞춤이 잘 안 되고, 언어 사용을 포함해서 서로 마음을 나누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우리 딸이 나와 눈을 맞추면서 소통할 수 있는지 점검(?)했다. 함께 즐겁게 놀다가도, 불시에 여러 신체 부위(예컨대, 눈, 코, 입, 엉덩이 등)를 짚어 보라고 말로 시킨다든가, 문득 이름을 불러서 눈맞춤이 되는지 확인하고 테스트했다. 

     

    소아정신과 의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등 동영상을 찾아 보고, 각종 전문 서적도 읽어 보니, 아이가 생후 18개월까지 잘 크다가 갑자기 퇴행해서 ASD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봄이가 태어난 지 18개월이 지났을 때부터는, 거의 매일 혹시나 아이가 퇴행하는 신호를 보내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면서 밤낮으로 확인했다. 나는 원래 대단한 염세주의자라서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고 살면서 불안해 하는데, 이 성격이 딸 앞에서 튀어 나왔달까. 아무튼, 나는 계속 걱정했다. 

     

    그러나 무척 다행스럽게도! 생후 663일째 되는 오늘까지, 봄이는 엄마 아빠와 대단히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잘 큰다. 표현 언어가 조금 늦은 듯하지만, 하루에 한 두 단어씩 아빠 말을 새롭게 배워서 따라한다. 그리고 말로만 동화책에 나오는 특정 대상(뽀로로, 패티, 에디 등 만화 캐릭터)을 짚어 보라고 시켜 보면,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정확하게 짚어낸다. 수용 언어가 마음 속에 층층이 쌓이고 있다는 증거. 언젠간 봇물 터지듯, 청산유수로 말하리라 기대한다. 

     

    특히, 봄이는 엄마와 아빠를 사회적으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챙기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봄이가 매우매우 좋아하는 파란색 아빠 상어 의자에 앉으라고 말하면, 편안하게 앉은 후에 옆에 보이는 초록색 좌식 의자에 아빠도 앉으라고 가리킨다. "아빠도 앉으라고? 아빠가 여기에 꼭 앉아야 해?" 라고 물으면 "응! 아빠!" 라고 정확하게 의사를 표현한다. 그렇게 봄이 옆에 나란히 앉으면, 아빠 손을 잡아다가 본인이 좋아하는 동화책을 쥐게 만든다. 책을 읽어달라는 요구. 

     

    그런데, 오늘 봄이 사회성과 관련해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아침에 봄이가 좋아하는 딸기를 반씩 쪼개서 줬는데, 맛있게 딸기 한 조각을 먹은 후에 또 다른 딸기 조각을 들기에, "봄이, 또 딸기 먹을 거야?" 라고 물었다. 봄이는 아빠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에 쥔 딸기 조각을 아빠에게 주고 싶다고 표현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식욕은 본능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어른도 배가 고프면 이기적인 동물로 변하는데... 22개월 아기가?

     

    맞다. 세상 모든 아기가 이 정도 시기가 되면 이렇게 행동할 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먹던 과일이나 과자를 엄마 아빠 먹으라고 줄 지도 모르겠다. 내가 괜히 호들갑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딸 행동에 대해서 감동을 먹을 수밖에 없다. 봄이가 태어난 뒤로 22개월 내내 혹시라도 사회성이 떨어질까봐 걱정했으니까, 혹시라도 나 때문에 장애가 생길까봐 노심초사했으니까. 그런데 봄이는 보란듯이 아빠에게 딸기를 들어서 줬으니까.

     

    나는 대단히 강력한 개인주의자다. (다행히, 이기적인 성격까지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 평생 혼자서 움직이던 내 세계에, 어떤 여성이 들어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배려심을 뿜어내는 그녀. 아주 작은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을 줄 아는 그녀. 주변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늘 느끼고 반응하는 그녀. 봄이는 그녀를 쏙 빼 닮았다. 엄마를 복사하듯 닮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식욕을 이기는 배려심'이랄까? 그래서 생각한다. '봄아, 넌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거야.' 

     

    그리고 나는 생후 663일째 되는 날, 봄이가 아빠에게 들려준 말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리라. 

     

    "응! 아빠! 응응(딸기)!"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성숙을 담는 글쓰기(PDF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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