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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곱 문장으로 서른 다섯 가지 마법을 부리다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4. 28.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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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빛 애교 어피치)

     

    1. 참 순진들 하네.

    2. 글쓰기 어렵다는 제스쳐는 다 뻥인가?

    3. 쓰란다고 다 쓴다.

    4. 많이,

    5. 그것도 아주 잘! 

    6. 이러다가 대충 묻어가려던

    7. 나만 새 되는거 아닐까...


    글을 읽다가 빵, 터졌다. 누가 쓰셨는지 궁금했다. 익명으로 읽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킬 수가 없었다. 괜찮으니까 '눈빛 애교 어퍼치 님은 빨리 커밍 아웃하시라'고 웃으면서 말하니 뒷편에 앉은 남성 분이 슬며시 손을 드신다. 우리는 모두 유쾌하게 웃으며 박수쳤다.

     

    "그러게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서 한 번 시도해 보았는데, 이렇게나 다들 잘 따라오시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네요." 

     

    2024년 4월 26일. 경기도 가평에서 열린 글쓰기 교육. 경기도장애인복지시설협회에서 주최했다. 한 시간 남짓 운전해서 한강변에 위치한 아름다운 교육 장소에 도착해 보니, 대체로 연배가 높으신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서 점잖게 앉아 계셨다.

     

    이럴 땐 분위기를 잘 파악해야 한다. 너무 어렵게 가면, '이렇게 공기 좋고 시설 좋은 곳에 와서 몇 시간 동안 앉아서 고문당했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즉석에서 교육 내용을 약간 바꾸었다. 이론적인 내용은 줄이고 최근에 내가 개발한 글쓰기 실습 방법을 집어 넣었다. 

     

    7줄로 글쓰기! 

     

    우리는 모두 학창 시절에 글 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국어를 공부했다. 그런데 또 일단 글을 쓰면,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쓰면 무조건 많이 쓴다. 특히나 사회복지사는 현장 경험이 풍부해서 글로 쓸 만한 재료가 참 많다. 

     

    글쓰기를 배운 적은 없는데, 쓸 이야기는 많고, 잘 써야 한다고 느끼니, 능력을 넘어서 욕심을 부린다. 사회복지사는 글을 길게, 많이도 쓴다. 무조건 많이 쓴다. 그런데 내용은 갈팡질팡, 자주 길을 잃고 해멘다. 이래선 안 된다. 욕심을 줄여야 한다. 짧고 쉬운 글을 자주 쓰면서 부담감을 줄여야 한다. '어? 이게 되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문장 7개로 짧게 글을 쓰는 활동을 개발했다. 아무리 글을 못 쓴다고 해도, 아무리 쓸 내용이 없다고 해도, 단 7줄을 못 쓰겠는가? 긴 이야기를 문장 7개 안에 어떻게 구겨 넣을지 실제 사례를 보여 주고 쓰라고 안내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나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으면서 이 활동을 실행했다. 그런데 20분 후에, 결과물을 받아들고 정말로 깜짝 놀랐다. 문장 7개로 글을 써 보시라고 설명하자, 다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혹은 귀찮게 왜 이딴 걸 시키느냐는 표정을 지으셨는데... 다들 너무 잘 쓰셨다. 그러니까, 눈빛 애교 어피치님 말씀이 맞았다.


    (마더)

     

    1. 시설에서 직원들과 함께, '지루할 것 같은' 교육에 참석했다.

    2. 교육장이 너무 멀어서 우리는 전날 출발했고 현장에서 숙박했다.

    3. 원래는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를 한 잔 기울이려고 했는데 식당문이 다 닫혔다.

    4. 계획을 바꾸어 가까운 편의점을 털기로 하고, 소주, 과자, 컵라면 등 8만원어치를 샀다.

    5. 직원들과 새벽까지 오붓하게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6. 다음날 교육장에 왔는데, 간식도 많고 강사님이 잘 진행해 주셔서 재미 있었다.

    7. 시작할 땐 마음이 무거웠는데 뜻밖에 즐거워서 무척 좋았다.

     

    우선, 마더님께서는 영리하게(!) 글을 쓰셨다. 교육에 참석한 경험 자체를 간단하게 글로 옮기셨다. 직원들과 함께 '지루할 것 같은' 교육에 참여했는데, 어떻게 '뜻밖에 즐거워하게 되었는지' 잘 요약하셨다. 

     

    (떨고 있는 어피치)

     

    1. 우리집엔 기묘한 생명체(?)가 네 마리 산다.

    2. 퇴근하고 오면 옷 갈아입을 시간도 주지 않고 내 방으로 모여든다.

    3. 한 마리가 자신을 만지라고 당당하게 엉덩이를 들이밀어 궁디팡팡을 해 준다.

    4. 그러면 나머지 세 마리가 아련한 눈빛을 보내며 자신도 만지라고 나에게 최면을 건다.

    5. 네 마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내 손은 현란한(!) 연주를 시작한다.

    6. 만족한 녀석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눈빛이 바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진다.

    7. 몇 년째 키우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녀석들 속을 알 수가 없다.

     

    떨고 있는 어피치님께서는 아마도 고양이를 키우시나 보다. 속을 알 수 없지만 묘하게 사랑스러운 고양이 습성을 아주 편안하게 적으셨다. 그 위에 유머 한 스푼을 살짝 얹으니, 따스한 운치까지 느껴진다. 

     

    (ㅋㅋ)

     

    1. 계획적인 나, 무계획 속 즐거움을 찾는 남편.

    2. 같은 것을 보고도 형상을 설명하는 나와 자신의 느낌만 기억하는 남편.

    3. 우리가 최근에 일본 여행을 가게 됐다.

    4. 남편은 즉흥적으로 여행을 가야 한다며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5. 무계획이 불안한 나는 폭풍 검색을 하고 모르는 척 이끌어서 여행을 마쳤다.

    6. 가이드 없이 다녀온 여행 뒷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은 여행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현지인이 남편을 일본인으로 착각한 일화만 기억한다. 하하.

    7. 아무렴 어떠랴. 어떤 여행이든 서로 만족하면 됐지, 뭐.

     

    ㅋㅋ님께서는 본인과 상당히 다른 남편과 일본으로 여행 다녀오신 이야기를 쓰셨다. 성격이 상반된 부부 일상을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재미있게 잘 쓰셨다. 

     

    (ㅇ.ㅇ)

     

    1. 나는 자기-돌봄 목적으로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헬스장에 간다.

    2. 시작한지 3년이 되었는데 욕심을 부리다 그만 허리를 다치고 말았다.

    3. 취미로 시작했지만, 다치고 나니 걷기부터 모든 일상생활이 너무 힘들고 허무했다.

    4. 하지만 열심히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꾸준히 스트레칭했다.

    5. 그래서 지금은 일상 생활이 가능 할 정도로 허리가 괜찮아졌다.

    6. 다쳤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 섞인 위로(잔소리)를 받고 조금 부끄럽고 한심했다.

    7. 아프면 골로 가니, 무엇이든 적당히 안전하게 하자.

     

    ㅇ.ㅇ님께서는 아파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 내셨다. 문장 7개 안에 이야기를 쓰려면, 형식에 맞춰서 처음부터 이야기를 작게 잘라내야 하는데, 첫 문장에서 인물과 상황을 아주 효과적으로 요약하셨다. 여유 공간 덕분에 나머지 부분에서 이야기를 충분히 전개하실 수 있었다.  

     

    (모두들 반가워요)

     

    1. 2016년 10월. 73kg이 넘는 육중한 몸무게로 둘째를 출산했다.

    2. 의지도 없었지만, 모유수유하며 다이어트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3. 육아 휴가가 끝나갈 때 난 크게 결심하고 죽을 각오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4. 땀복을 구입하고, 그 맛있는 쌀과 밀가루를 끊으며 3개월 간 20kg를 뺐다.

    5. 너무 힘들었지만 안 맞던 옷도 잘 맞았고, 복직했을 때 나를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동료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설레고 신이 난다.

    6. 2024년 현재, 나태해지고 게을러진 내 모습을 반성하며 다시 다이어트에 도전한다.

    7. 그러나 이 글을 쓰자마자, 벌써 맛있는 삼겹살 냄새와 어제 먹던 치킨+족발 냄새가 나는것만 같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그래! 아이 캔 두 잇!

     

    모두들 반가워요님께서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셨다. 아이 출산 후 '죽을 각오로' 다이어트하고 사람들 앞에 섰던 짜릿한 경험담을 뒤돌아 보셨다. 본인에게는 꽤 힘든 과정이었겠지만, 솔직하고 통쾌하게 쓰셔서 무척 흥미롭다.

     

    (옥류관)

     

    1. 남편과 정년후 하고 싶은 일을 의논했다.

    2. 장애인시설에 봉사를 다니기로 결정했다.

    3. 봉사다니는데 필요한 지식을 쌓고 싶어 공부하기로 했다.

    4.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5. 그리고 졸업후 장애인 거주 시설에 취업했다.

    6. 의욕 넘치게 일을 시작했지만 2년이 지나 익숙해진 지금은 초심을 잃은 듯하다.

    7. 오늘, 초심을 다시 생각하자고 한 번 더 다짐한다.

     

    옥류관님께서는 본인이 늦은 나이에 사회복지사가 된 사연을 적으셨다. 60대 이후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셔서 최종적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시고 취업까지 성공하셨단다. 정말로 대단하시다. 더구나 2년 동안 일해 오신 내용을 솔직하게 돌아보시면서 성찰까지 하시다니... 존경심이 절로 들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달이)

     

    1. 나는 2007년 새내기 사회복지사로서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일했다.

    2. 그 해 장애인 분들과 여행갔는데, OO씨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3. "내가 바보같아 보여도 다 알아요. 나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4. 순간 멍해진 나는 00씨에게 어떤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했다.

    5. 그리고 다짐했다. 지적장애인이라고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자.

    6. 지금도 나는 OO씨 말을 되새기며 고민한다.

    7. 내가 어떤 사회복지사가 되여야 할지.

     

    우와! 달이님께서는 문장 7개만으로 걸작을 쓰셨다. 늘 돌보던 지적장애인이 무심코 뱉은 한 마디를 듣고 깨달음을 얻으셨단다. 환경과 상황은 모두 다르겠지만 사회복지사라면 누구나 마음에 새겨도 좋을 만한 '서늘한' 문장을 기록하셨다. (이 분께는 내 돈으로 커피 쿠폰을 선물해 드렸다.) 

     

    (라면먹는 제이지)

     

    1. 얼마 전 올해 첫 여행으로 친구와 제주도에 다녀 왔다.

    2. 늘 추울 때만 제주도에 갔어서 두꺼운 옷을 안 입어도 되는 제주는 처음 만났다.

    3. 처음 맞아 보는 따스한 제주 햇살은 기대 이상이었다.

    4. 붉은 동백은 없었지만 연분홍 벚꽃이 있었다.

    5.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았지만 어디에도 사람이 있어, 그 또한 좋았다.

    6. 늦은밤 잔잔한 수면 위에 담긴 달을 보며 친구와 잔을 주고 받았다.

    7. 다음엔 여름에 제주를 보러오자고 약속했다.

     

    라면먹는 게이지님께서는 심지어! 거의 시처럼 아름다운 글을 쓰셨다. 문장마다 통찰력과 갬성이 잘 녹아 있다. 특히, 다섯 번째 문장이 좋았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았지만 어디에도 사람이 있어, 그 또한 좋았다."

     

    (박명수) 

     

    1. 스마트폰 앨범을 여니 사진들이 나를 본다.

    2. 한때는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사진만 찍었는데,

    3. 어느 순간부터 사진 속에 여인이 등장했다.

    4. 또 어느 순간엔 사랑하는 아들이,

    5. 또 어느 순간엔 공허한 하늘과 바다가 나타났다가,

    6. 지금은 예쁜 꽃으로 앨범이 가득 찼다.

    7. 이 모든 세월에, 앨범에, 내가 있겠지.

     

    박명수님께서도 시처럼 고운 글을 쓰셨다. 글감을 찾기 위해서 휴대전화 사진첩을 둘러 보시면서 자신의 역사를 느끼셨나 보다. 단 7문장을 읽는데, 마치 대서사시를 읽은 듯 삶이 스친다. 

     

    (우우)

     

    1. 함께 한 강아지가

    2. 4년 전 봄 노환으로 떠났다.

    3. 셋이 함께 다니던 산책길을

    4. 이제는 둘이 걷는다.

    5. 언제나 그길을 산책한다.

    6. 올해도 봄이 다가오니

    7. 둘다 말이 없어진다.

     

    우우님께서는 강아지가 떠난 길을 배우자와 함께 걸으면서 느끼는 슬픔과 그리움을 적으셨다. '말 한 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글을 읽으니 '문장 일곱 개로 천년을 기억한다'는 문장이 절로 떠오른다.


    이날, 우리는 한 시간 반 동안 일곱 줄로 쓴 짧은 글 35편을 한 편씩 모두 음미하면서 글 쓰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나 자신이 글을 쓰면서 혹은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면서, 글은 언제든 우리 마음에 마법을 부린다고 느꼈는데, 이날 교육에서도 글이 부리는 신비한 마법을 다시 한 번 더 절절하게 체험했다. 

     

    여기에서는 35편 중에서 대표작만 모아서 소개했지만, 사실 어느 글 하나도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모두 훌륭했다. 아마도 평생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을, 평범한 사회복지사 35명이, 무척 부담스러운 표졍을 지으면서도 집단적으로 마법을 부렸다고 써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니, 눈빛 애교 어피치님 말씀이 딱 맞았다. 

     

    (눈빛 애교 어피치)

     

    1. 참 순진들 하네.

    2. 글쓰기 어렵다는 제스쳐는 다 뻥인가?

    3. 쓰란다고 다 쓴다.

    4. 많이,

    5. 그것도 아주 잘! 

    6. 이러다가 대충 묻어가려던

    7. 나만 새 되는거 아닐까...


    <사회복지사 자기-돌봄 글쓰기 모임 - 글로위로, 2023년 작품집>

     

    글로위로, 2023년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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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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