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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그러셨을 거야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8. 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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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실(산부인과)> 

     

    추민하(산부인과 전공의): 히스테릭토미(자궁적출술) 준비할까요? 

    양석형(산부인과 교수): (한숨을 깊게 내쉰다) 하...

     

    <수술실 복도>

     

    추민하: 교수님, 진짜 너무 다행이에요. 

    양석형: 뭐가? 

    추민하: 만약에 자궁 적출했으면, 남편 분 어떻게 봐요? 어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을 해도, 이해 잘 못하시고 난리치셨을 텐데... 정말 다행입니다. 

    양석형: 안그러셨을 거야. 남편 분도 아시지 않을까? 자궁을 살리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산모의 목숨을 살리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걸. 

    추민하: 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다.)

     

    <수술실 밖 로비> 

     

    산모 남편: 어, 선생님, 수, 수술 잘 끝난 거죠? 저희 와이프 괜찮은 거죠? 

    양석형: 네, 수술, 잘 끝났습니다. 

    산모 남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양석형: 더 이상 피 안나는 거 확인했고, 혈압, 맥박도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거 확인하고 나왔습니다. 수술 중간에 피가 많이 났고 혈압이 많이 떨어져서 자궁 적출까지 고려하고 준비를 했는데, 다행히 출혈이 잡혀서 자궁은 살리고 나왔습니다. 

    산모 남편: 아닙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데, 사람 목숨이 중요하지, 전 자궁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우리 와이프만 건강하다면, 저한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교수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제 8화 중에서>


    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빠돌이로서, 이 특별한 캐릭터 쇼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사랑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최애하는 캐릭터는 양석형과 추민하. 추민하는 밝고, 명랑하고, 순수하면서 책임감이 강해서 좋다. 솔직히, 내 이상형에 가깝다(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밝히자면, 내 아내가 밝고, 명랑하고, 순수하면서 책임감이 강하신 분). 양석형은 다소 소심하고 사회성이 부족하지만, 진지하고, 솔직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좋다. 특히, 양석형은 무척 좋은 선생이라고 생각해서, 진심으로 닮고 싶다. 자기 분야 실력이 뛰어나고, 공감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슬의생 시즌 1부터 이 두 사람이 나오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두 사람이 나오는 장면을 가슴을 졸이면서 보고 있다. 손으로 눈을 가릴 때가 많아진다. 왜냐하면 내 아내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양석형과 추민하가 나오는 장면은 주로 산모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아이가 뱃속에서 하늘나라로 가 버렸는데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외래 진료에서 양석형 교수에게 전해 듣고 오열하는 산모 이야기, 습관성으로 아이를 유산해서 엄청난 상실감과 슬픔을 느끼고 큰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산모 이야기... 돌이켜 보면 (아내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슬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담담하게 보았을 장면을 이제는 마음을 졸이면서 보고 있다. 심장이 쫄깃하다는 표현 그대로. 


    오늘 장면에서 추민하는 고개를 여러 번 숙이면서 말한다: "죄송합니다." 이전에도 추민하는 양석형에게 여러 번 이 단어를 말했다. 그녀는 주로 환자와 관련된 상황을 한 쪽 면만 보고 말을 했다가 양석형에게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으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이 말은 다소 이상하다. 굳이 따지자면, 위 장면에서 추민하가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 대상은 양석형이 아니라 환자(산모)의 남편이다. 추민하가 남편이 부인의 생명이 아니라 부인의 임신 능력 상실을 먼저 걱정했을 거라고 부정적으로 단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석형 교수에게 추민하가 해야 할 말은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추민하는 왜 죄송하다고 말했을까. 아마도 병원밥깨나 먹은 전공의(레지던트)라면 그 정도는 헤아릴 수 있어야 했는데 까맣게 몰랐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에게 선한 기대를 걸고 있는 교수에게 실망을 안겼다고 생각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짐작한다. 이를테면, 그 연차에, 왜 그걸 모르냐, 는 자책이고 사과일 터다. 물론, 제 3자 관점으로 보면 이는 다소 과한 자책이요, 과한 사과다.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에서 타인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떠올릴지 어떻게 다 미리 헤아리고 알 수 있단 말인가. 임신이나 출산 뿐만 아니라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부모나 남편의 감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공감(empathy)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삶 속에서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어원으로 따져 봐도, 공감이란 타인 마음 속에 들어가서(em: 속으로) 그의 시각으로 세상을 느끼고 바라보는(path: 감정) 적극적인 활동이다. 어떤 저명한 학자는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입니다' 라고 말했다. 우리말 속담에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안다'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내가 직접 경험을 쌓으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이 떠오르는지 느끼고 맛 본다면,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 마음을 (굳이 그에게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충분히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모든 상황을 다 직접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판타지 영화에서처럼 도술 혹은 마법을 부리거나, SF 영화에서처럼 타임머신 같은 기계를 이용해서 뿅, 하고 가고 싶은 장소나 시간대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타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그가 느끼는 감정을 느껴보는 공감하는 작업이 그래서 어렵다. 한편, 만약에 우리가 타인의 마음 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해도 문제다. 인간 삶은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으로 가득 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기 위해서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워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결국 간접 경험이 중요해진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면,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하는 게 좋다. 제일 좋은 방법은 독서다. 책은 인간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서 기록해 놓은 역사 그 자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고급 정보를 효율적으로 습득하고 다채로운 상황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책이란 그 어떤 분야, 그 어떤 종류라도 다 좋지만, 공감 능력을 키우는 과업과 관련해서 굳이 말을 하자면, 고전 소설이 좋겠다. 인류가 오랫 동안 읽어온 고전 소설에는 작가가 인간이 느끼는 온갖 감정을 따져보고 고민한 결과물이 담겨 있다. 뛰어난 작가가 치밀하게 탐구해 놓은 인간 감정을 함께 느껴보면서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는 동료 제위께,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시라고 권하겠다. 이미 보고 계시다고? 평소처럼 그냥 넋놓고 보시라는 게 아니다. 조금 더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보시라는 제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처한 상황을 따져보고, 그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거나 실패했을 때 그가 느끼는 감정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가 느끼는 감정을 쉽고 편안한 말로 표현해 보라. 이렇게도 표현해 보고, 저렇게도 표현해 보라. 가급적 다양한 감정 단어를 구사해서 표현해 보라.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아 보라. 이는 대단히 훌륭한 공감 훈련법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는 원조전문가의 태도(목차)>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는 원조전문가의 태도(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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