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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의 것이 좋아 보여도 다 허탕인 것이여
    지식 공유하기(기타)/돌아오라 1988(공감 텍스트) 2022. 1. 1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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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선 부: 아, 임자, 꼬막... 다 먹었당가?
    덕선 모: 어, 없다.
    덕선 부: 아, 그러면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딱딱 사다 놓으면 좋제. 난 유일허게 꼬막 딱 하나만 가지고 밥 먹는 거 알잖애.
    덕선 모: 고만 묵으라, 좀! 꼬막 그거 하기가 얼매나 귀찮은지 아나? 씻는데도 한참 걸리고, 삶아 갖고, 그거 하나씩 뚜껑 따고 일일이 양념 올려야 되고. 뭐 말만 하면 뚝딱 하고 나오는 줄 아나?
    덕선 부: 아, 이 사람아~ 내가 무슨 갈비짝을 삶아 달라고 하는가, 굴비를 구워 달라고 하는가. 유일하게 딱 좋아하는 그 꼬막 하난디, 그걸 못해 줘? 그리고 뭐 그 이야기 했다고 사람을 죽일 듯이 쳐다본대? 나나 되니깨 당신 모시고 사는 거야 이 사람아. 알어?
    덕선 모: 개똥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다. 내니까 당신 같은 인간이랑 같이 사는 줄 알아라. 남자가 무드가 있나, 매너가 있나. 아이고, 아이고~
    덕선 부: 아, 무드가 있을께 애 셋을 낳았제!
    노을: (부모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TV를 켠다.)
    덕선 모: (갑자기 노을에게 버럭 화를 내며) 테레비 안 끄나? 니가 지금 토토즐 볼 때가? 내년에 고2다. 공부하고는 담 쌓았나? 누구 닮아갖고 이 모양이고?
    덕선 부: (기가 찬다는 투로) 옴마? 그게 또 왜 내 탓이대? 어? 그게 왜 내 탓이여? 아, 나 닮았어 봐. 전국 1등이제. 다 자네 닮아서 그러는 거 아녀!
    덕선 모: 내 머리가 뭐 어떤데? 내 머리가 뭐 어때서?
    덕선 부: 자네 고등학교 졸업도 못했잖애.
    덕선 모: 아들 앞에서 그 이야기 안하기로 했다 아이가?

    덕선이네 아빠, 성동일은 한일은행에서 일하는 만년 대리. 생각 없이 친구 빚보증을 섰다가 큰 일이 나는 바람에 가족까지 반지하방으로 끌고 들어온 후, 빚에 허덕이며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아내에게 허구한날 바가지를 긁히며 산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그는, 매일 같이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에 대칭적으로, 아내인 이일화는 버는 족족 월급을 차압당하고 있는 남편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돈 쓸 곳은 점점 늘어만 가는데, 엄청난 빚 때문에 마음 속 여유가 어디론가 도망간 상태. 그래서 이 장면에서도 남편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꼬막을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쓰러운 감정보다는, 한심하게 느끼는 감정과 원망하는 감정이 전면에 나타난다. 게다가 성동일은 사실은 깊고도 따뜻한 속마음을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살갑게 혹은 세련되게 표현하지는 못하는 사람. 그래서 이일화는 투박하게 반찬 투정(?)하는 남편, 성동일에게 '남자가 무드가 있나, 매너가 있나'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덕선 모: (식당에서 미소를 띄운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 커플.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 중에서 남자가 다정하게 웃으면서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 준다. 두 사람, 굉장히 다정하게 대화를 나눈다.
    덕선 모: (다정한 커플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남편을 바라본다.)
    덕선 부: 후루룩... (칼국수 국물을 시끄럽게 마신다.) 꺼억~ (트림을 한다.) 씁씁씁...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을 빼 내려 한다.) 아따~ 이빨에 또 끼어 버렸네. (나무 젓가락을 부러뜨려서 이 사이를 후빈다. 빠져 나오지 않자, 온갖 큰 소리를 낸다.) 아따~ 드런 거.
    덕선 모: (남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한숨을 쉰다.) 어휴~

     

    그렇다. 성동일은 (아내 앞에서) 무드도 없고, 매너도 없는 남자가 맞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저 커플, 그 중에서도 저 남자는 어쩌면 저렇게 여자에게 다정할꼬. 우선 여자를 바라보는 표정과 눈빛에서 꿀이 떨어진다. 반찬도 집어서 숟가락에 얹어주고, 칼국수 먹는데 머리카락이 방해가 되는 듯 싶으니 귀 뒤로 넘겨주고, 물까지 따라준다. (눈길을 돌려) 반면에,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한심한 인간은? 온갖 소리로 민망함을 찢는다. (1) 후루룩:  칼국수 국물을 어쩌면 이렇게 지저분하게 마실까. 비오는 날, 칼국수 집이 떠내려갈 듯 시끄럽다. (2) 꺼억: 아이구? 아니나 다를까, 국물을 마시고 나니 바로 트림을 한다. 지저분한 사람. (3) 씁씁씁: 이쑤시개가 없으니 나무 젓가락을 부러뜨려서 사용한다. 으이그~ 보기에도 안좋지만, 소리까지 내니 점입가경이다. 이런 장면만 보고 있노라면, 시청자라도 나서서 이일화에게 남편을 바꿔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 별 다른 대사도 없는데, 두 사람 행동만으로, 특히 이일화가 짓는 표정만으로 아내가 느끼는 감정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덕선 모: (식사가 끝난 후, 집에 가려는데 우산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고... 남편은 못 바꿔도, 우산은 한 번 바꿔 볼까?
    덕선 모: 아이 추워라. (식당 밖에서 바꾼 우산을 펼쳐보지만, 구멍이 나 있다. 황망한 표정을 짓는다.)
    덕선 부: (이 모습을 바라보다가) 암만 남의 것이 좋아 보여도, 다 허탕인 것이여, 이 사람아. 아~ 뭣해? 팔짱 안 끼고? 따라와! (덕선 모, 원망스러운 표정이 웃는 표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두 사람, 다정하게 걸어간다.) 

     

    참 시적으로 아름답고 우아한 장면이다. 이 칼국수집 장면 앞에는, 두 사람이 덕선이 성적 문제로 학교 선생님에게 불려간 장면이 나온다. 이는 비유하자면, 두 사람에게는 추적추적 우울하게 내리는 비와 같은 사건. 학교에 다녀오는 길에 들린 칼국수집에서, 덕선 모(이일화)는 촌스럽고 매너도 없어서 한심해 보이는 남편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서 우산꽂이 앞에 선 이일화. 가게에 올 때 쓰고 온 우산이 안 보인다. 어디로 갔을까? 누가 가져갔겠지. 그렇다면 이 참에 우산을 바꿔? (어차피 그 누군가도 일화의 우산을 가져갔으므로 잠시 잠깐이라도 도덕심을 벗어날 공간이 슬쩍 열렸다.) 일화는 남편을 바꾸고 싶은 마음을 우산에 투사하고 예뻐 보이는 꽃무늬 우산을 집어 드는데... 

     

    아뿔싸, 겉모양이 좋았던 이 우산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 구멍으로 비가 줄줄 샌다. 일화의 마음에 뚫린 구멍으로도 빗물이 새어든다. 구멍난 우산을 들고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일화를 보고 동일이 다가서서 말한다: "암만 남의 것이 좋아 보여도, 다 허탕인 것이여, 이 사람아." 동일은 칼국수집에서 아내가 느낀 세세한 감정을 알지 못한다. 아내가 최소한 마음으로는 이미 다른 남자로 자신을 대체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대사가 주는 정서적 효과가 더욱 크다. 우산이 무엇인가? 추적추적 우울하게 내리는 비를 막아주는 존재 아니던가. 그렇다면 남편이란 무엇인가? 우울하게 내리는 비처럼 삶 속에서 직면하는 여러 가지 우울한 사건을 막아주는 존재. 정확한 1:1 대응. 동일은 자신이 들고 있는 검고 투박하지만 튼튼한 우산처럼, 가족을, 아내를 정서적으로 든든하게 보호해주는 가장. (오해 마시라,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는 관계여서, 일화도 동일에게 우산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일화에게 남편이 하는 말은, 순간적으로 일탈한 마음(남편을 바꾸고 싶다는 충동)을 버리고, 다시 투박하지만 믿음직한 남편에게 돌아올 수 있는 정서적 근거가 된다. 


    공감(empathy)은 상대방 감정을 어떤 지점에서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공감하는 사람은, 내 시각에서 상대가 '슬플 것 같다', '괴롭고 힘들 것 같다'고 느끼지 않는다. 마치 유체이탈을 하듯이, 그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감정을 느낀다. 여기에서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사람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인간의 생명 현상이 품고 있는 본질은 목적을 향해서 나아간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원하고 추구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상대방 몸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려면, 그가 무엇을 원하고 추구하는지를, 최대한 깊이 파고들어서 이해해야 한다. 이일화는 남편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일화는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그가 한 말을 힌트로 삼는다면) 겉으로는 '매너있는 남편', '예의 있는 남편'이다. 이일화가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신뢰하고 따르는 이유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땅바닥에 버려진 꽃무늬 우산을 뒤로 한 채, 두 사람이 함께 만든 투박하지만 든든한 사랑의 우산을 쓰고 가는 모습은, 일차적으로는 든든한 남편을, 그리고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이일화가 마음 속으로 진정으로 원하는, 깊고 단단한 애정과 신뢰 관계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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