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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빠, 이거 사랑 맞죠?
    지식 공유하기(기타)/돌아오라 1988(공감 텍스트) 2022. 1. 20.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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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가기 위해 골목길로 접어들던 정환, 뭔가를 보고 멈추어 선다.) 

     

     

    (덕선이와 선우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선우는 덕선이 팔에 손을 올리고 웃기까지 한다.) 

     

     

    (이 모습을 말없이, 무심하게 바라보는 정환.)

     

    그러니까, 정환이는 덕선이를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덕선이는 선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선우도 덕선이를 좋아하는 듯 싶고. 하긴... 요즈음 두 사람이 여러 가지 증상(?)을 보이고 있었던 것 같다. 안래도 불안불안했는데, 두 사람이 저렇게 희희낙낙 밝게 웃으며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을 딱 보니까, 정말인가부다. 

     

    세 사람은 같은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자란 사이. 지금이야 한국인의 주거 공간이 수직화(대단지 아파트)되었지만, 세상에 있는 집이란 집은 모두 1층 뿐이었던 시절. 아주 어릴 때부터 늘 함께 놀면서 자란 세 사람은 동네친구를 넘어서서 형제 같은 관계. 그런데 덕선과 선우가 저렇게 서로 좋아하게 되었으니... 

     

    정환이는 양가감정이 아니라 '삼가감정'이 든다. 첫 번째로, 질투심. 선우가 아무리 불알친구라도 여자친구를 두고 공유할 수는 없는 일. 덕선이를 빼앗길까봐(?) 정환이는 질투심이 든다. 두 번째로, 덕선이에 대한 순수한 애정. 밝고 명랑하며 귀여운 덕선이는 누가 봐도 사랑스럽지만, 정환이는 문자 그대로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덕선이를 무척 좋아한다. 세 번째로, 선우에 대한 우정, 따뜻한 마음. 선우는 그냥 동네 친구가 아니다. 착하고 책임감 강한 형 같은 친구. 그냥 같이 놀아서가 아니라 진짜로 좋아하고 믿는 친구. 덕선이와 선우, 두 친구 그 누구의 감정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정환. 무표정 속에 파도가 넘실댄다. 

     

    (집으로 막 들어서려던 정환,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 가려고 하는데...)

     

     

    (정환, 편지 중에서 덕선이가 유명 라디오 방송에 보낸 엽서를 발견한다. 엽서에 선명하게 찍힌 '반송 스탬프.') 

    정환: 어, 아니... (크리스마스) 씰만 붙여서 보낸 거야? 칫. 

     

     

    (덕선이 엽서 내용) 안녕하세요? 문세 오라버니! 저는 쌍문동에 사는 써니라고 합니다. (제발 이름은 밝히지 말아주세요.) 오빠 전 지금 첫사랑을 하는 중입니다. 그것도 한 동네 사는 소꿉친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밥 먹을 때도, 공부할 때도 그 친구 생각만 납니다. 오빠 이거 사랑맞죠? 제가 좋아하는 그 아이 이름은 SW입니다. 이름도 참 멋지죠? 생긴 건 이름보다 훨씬 더 멋지답니다. 마지막 SW에게 한 마디 하고 싶어요. SW~ 날 좋아해 줘서 고맙고, 나도 너 좋아해!

     

     

    (어두운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정환) 

     

    이젠 진짜 큰일이다. 덕선이가 '별이 빛나는 밤에'(7, 80년대 최고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를 보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씰(결핵 퇴치를 위해서 우표 옆에 붙이는 작은 그림 증표, 크리스마스 씰만 붙여서는 우편이 제대로 가지 않으며, 반드시 우표를 붙여야 함)만 붙여서 보내 반송되어 돌아 왔다. 예쁜 엽서 콘테스트에서 입상이라도 할 것 같이 예쁘게 장식한 엽서 한 장. 온갖 정성을 들여서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 글씨는 성덕선 그 자체다. 그런데 덕선이가 동네 친구 SW(선우)를 좋아한다고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보냈다. 이 동네 아이들은 모두 별밤을 자주 듣고, 선우도 당연히 듣는데... 덕선이가 이름을 숨겼지만, 이건 거의 전국으로 방송하는 고백이다. 

     

    정환은 전형적인 츤데레. 둘째 아들과 살갑게 지내고 싶어하는 엄마에게 늘 단답형으로 건조하게 대답하고, 친구들에게도 언제나 툭툭 던지는 말투로 대화를 나누며,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싫어하면 싫어한다고 솔직하게 말을 잘 못한다. 하지만 조용히 동네를 날아 다니며 매를 닮은 눈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곤 한다. 그리고 지금 정환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친 형제자매처럼 가깝고 절친한 두 사람, 덕선이와 선우가 서로 좋아하는 듯한 모습. 마음 속에 드는 감정은 결결이 복잡~하지만, 정환은 모든 감정을 무표정 뒤에 숨기고 고민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왜냐하면 가장 영화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영화적인 장면인가? '영화적'이라는 단어는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대사가 아니라) 화면 앵글과 편집으로 보여주는' 이라는 뜻이다. 이 장면에도 중간에 덕선이 엽서를 읽는 대목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된 인물인 정환이의 복잡한 감정을 정환이가 덕선과 선우를 바라보는 반응 샷과 클로즈업으로 표현했다. 관객은 전후 장면을 연결시키면서 정환이가 느끼고 있을 감정을 함께 느낀다. 그림만으로 감정을 실어 나르는 장면이라서, 연출이 아주 잘 된, 멋진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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