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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은, 소통이 문제였어요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해결중심 부부-가족치료 이야기 2020. 9. 2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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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내가 아는 부부치료자가 이렇게 말했다:

        하루는 젊은 신혼부부를 만났지요. 남편은 외동 아들에 대기업 재무팀에서 일하는 모범생, 부인은 삼남매 중 첫째에 공대를 나와서 직장일을 하는 커리어 우먼. 두 사람이 문제라고 주장한 이슈는 성평등 이슈였어요. 부인은 결혼후 가사 노동에 대해서 불평등하게 분담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시작해서 본격적인(?) 페미니즘 공부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지요. 그야말로 “김지영 세대”에 속하는 여성이었던 거죠. 


        그런데 대화를 좀 더 나누다 보니, 여러 가지 다른 이슈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부족한 스킨십 이라든지,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라든지, 결국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이슈가 선명하게 떠오르더라고요. 저명한 부부-가족치료자인 존 가트맨 박사는 이렇게 말했지요: “부부가 갈등하는 문제 중에서 약 60%는 결국 고칠 수 없는 문제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서로 끝내 고칠 수 없는 문제를 고쳐 보겠다고 평생토록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갈등하고 있는 주제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주제를 말하는 방식이 문제이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말을 하는 방식이 상대를 비난하거나 경멸하는 방식이라면 그 누구도 그 옳은 말을 수용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이 부부의 문제도 성평등 이슈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제 막 결혼해서 함께 살게된 배우자의 가치와 세계관을 부드럽게 이해하면서 공통점을 찾아가야 하는 신혼부부들이 종종 부딪히는 바로 그 문제, 소통 문제였던 거죠.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 부인도 고치지 못한 남편의 생각을 제가 어떻게 고치겠어요? 그리고 저는 상담자이지 토론자나 토론회 사회자가 아니란 말이죠. 물론, 성평등 이슈는 개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상식으로 수용해야 할 가치에요. 하지만 아직 그 세계관에 익숙치 않은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심지어 공격적인 언어로 접근한다면, 그 가치로운 사상을 제대로 전달하거나 이해받지는 못할 거에요.


        예전에 한 번은 정말로 가부장적인 가족에서 자라면서 직접적으로 성차별을 경험한 젊은 부인과 그 남편을 도운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부인께서 제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 하나를 문제 삼으면서 가부장적이라고 단언하고 공격(?)하시더라구요. 알아요. 약자, 혹은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상황을 개선시킬 수단이 별로 없다는 걸요. 그래서 때로는 공격도 필요하고 적나라한 폭로나 직면도 필요하다는 걸요. 하지만 상담자의 말 하나 하나를 모조리 문제 삼으면서 무슨 상담을 하겠어요. (사실, 이게 저에게는 약간의 트라우마(?) 경험이에요.) 


        다시 처음 그 신혼부부 이야기로 돌아오면요, 다행히, 이 젊은 부인은 두 사람의 문제가 성평등 이슈 그 자체라기보다는 신혼부부로서 두 사람이 서로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익혀야 하는 “소통의 문제”라는 사실을 수용했어요. 그리고 본인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사상은 옳지만 이것을 남편에게 전달하고 가르쳐 주는 과정은 그리 세련되지 못했고, 아군으로 설득하고 포섭(?)해야 할 남편을 너무 적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사실도 인정했어요.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사실, 가족치료자로서. 성평등 이슈, 특히나 페미니스트 진영의 이야기는 고전적인 논쟁의 주제였다. 1970년대 가족치료의 본 고장인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가족치료 모델을 따르는 주류 가족치료자들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엄청나게 뜨거운 논쟁이 붙었다. 간단히 말해서, 가족치료는 가족의 문제는 어느 한 구성원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적/순환적으로 작동하는 가족 체계의 문제라는 전통적인 가족치료의 테제에 대해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그러면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맞을 짓이라도 했단 말이냐?” 라고 외치면서 논리적 허점을 폭로하는 논쟁의 역사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결국 가적치료자들도 페미니즘 진영의 논리적 정당성을 일부 수용했고, 심지어는 “이야기치료”를 포함해서 68혁명 세대가 개발한 포스트모던 모델까지 개발되었다(이야기치료는 소외된 목소리의 시민권을 복원시킨다는 논리를 깔고 있어서, 맥락적으로 페미니즘과 궤를 함께한다).

        (여성들을 포함해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 (아니, 단순히 객체로서 보호받는 수준을 넘어서서 주체로 당당하게 서야 한다.) 저 신혼부부의 남편도, 성평등이슈라는 당대의 이슈를 전향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점차 당대의 상식이 되어가는 사상을 외면해서는, 가족 안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이나 기타 일반적인 사회생활까지 전반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소통의 문제를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면서 옳고 그름의 문제로 치환하는 부인의 방식도 그다지 적절하지는 않다.

        그리하여 다시금 부부-가족치료자로서 소통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부드러움이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한다”는 유도의 원리도 떠올려 보게 된다. 결국, 가족의 구조도 소통을 통해서 구성된다. 소통은 물의 흐름과 같아야 한다. 물은 그저 부드럽게 흐르는 것 같지만, 그 부드러움으로 흙과 돌을 운반하고 끝내는 지도까지 바꾸고 만다. 저 신혼부부가 이런 소통의 원리를 스스로 깨닫고 짐으로써 이기고,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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