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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갯마을 차차차에서 배우는 사회사업: 진정성
    지식 공유하기(기타)/상담의 기초기술 2021. 9. 2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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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박 3일씩 총 다섯 번, 딱 보름이에요."

     

    서울서 유명한 예능 PD, 지성현은 의욕에 불타고 있다. 그는 동해안에 자리잡은 한적한 항구, (청호시) 공진항에서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팀원들을 이끌고 공진항을 구석구석 답사하면서 동네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가 알게 된 김감리 어르신 댁을 빌려서 촬영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게라니, 응."

     

    공진항 터줏대감, 김감리 할머니는 외롭다.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 아버지에, 아들은 서울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고, 손녀는 미국에서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본인은 의외로(?) 알부자에 지역 유지이지만, 애타게 그리워하는 가족을 보기 힘들어서 남 몰래 눈물 짓는다.

     

    김감리 할머니는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다. '집을 (완전히) 비워 달라는 게 아니라 보름만 빌려 달라는 말'이라고 간청하는 지성현 PD에게 일언지하 'NO'를 외친 이유는? 할머니에게 이 집은 그냥 집이 아니라, 가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래서 가족 같은, 아니 가족 그 자체인, 대단히 '사적인 공간'이다. 남들에게는 그냥 먹고 자고 싸는, 생활 공간에 불과하겠지만, 할머니에게는 보름만이라도 내어 줄 수 없는 자식 같은 공간이다. 

     

    지성현은 김감리 할머니에게 이 집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이 동네에 함께 살면서, 할머니와 할머니 가족이 살아온 모든 역사를 다 알게 된다고 해도, 아마 모를 거다. 영영, 알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지성현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집을 빌려서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멋지게 찍고 싶다. 그렇다고 할머니를 속이거나 이런 저런 술수를 쓰고 싶진 않다. 정직하게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설득하고 싶다.


    <김감리 노인 집> 

     

    김감리(동네 어르신): 싫소. 괜한 헛고생 하러 왔싸. 내거 여 평생 산 집인데 이 집을 우째 비아 주나? 

    지성현(방송국 예능 PD): 저, 어르신, 비워 달라는 게 아니라, 빌려주십사 부탁드리는 거예요. 2박 3일씩 총 다섯 번, 딱 보름이에요. 

    김감리: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게라니, 응. 

    지성현: 네, 알겠습니다. 할머니께서 이렇게 싫어하시는데, 제가 억지로 설득하고 강요하면 안 되죠. 죄송해요, 할머니. 실례 많았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제일 먼저, 지성현은 진심으로 할머니에게 사과한다. 솔직히, 나라면 그 자리에서 더 물어볼 것 같았다. 비워 달라는 게 아니라 그저 빌려 달라는 것 뿐인데, 그리고 당연히 그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할 텐데, 이상한 술수로 속이려고 하는 게 아닌데, 어째서 그리도 완강하게 거절하시냐고. (사람 민망하게 왜 그러시냐고.) 그런데 지성현은 더 이상 캐묻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물러선다. 그리고 정중하게 사과한다.

     

    답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어쨌든 할머니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내가 지금 당장 이해할 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지금 내가 여기에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을 솔직하게 말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하지만 지성현은 여기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할머니 집을 빌리겠다는 목표를 꺾지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설득할 생각도 없다. 그리고 약속대로 다시 찾아가서 할머니와 관계를 튼다.


    <김감리 노인 집> 

     

    지성현: 할머니, 요거는 강냉이. 그리고 요거는 한과. 하, 이 색들 너무 이쁘죠? 

    이맏이: 아이, 윤기가 반질반질하이 참 마숩겠다야. 

    김감리: 내거 이런 거에 혹할 사람으로 보이나? 쳐내꾼져 버리기 전에 저 치아요! 

    박숙자: 에이, 형님. 뭘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셔. 

    김감리: 자꾸 이래 갈구치지 말라니! 내 어제 분명히 안 된다 했싸! 

    지성현: 알아요, 이것들은 그냥 저번에 맛있는 밥 먹여 주신 보답이에요. 

    김감리: 솔갈이치지 마오. 아이, 이딴 거 다 뇌물인 거 누가 모를 줄 아오? 

    지성현: 아이, 진짜 아닌데. 할머니가 싫다고 하셔서, 저 여기서 절대로 촬영 안 할 건데. 할머니. 저 오늘은 그냥 진짜 놀러 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 다 편하게 드셔도 돼요, 네? 

    이맏이: 행님! 그, 사람 성의를 너무 그렇게 무시해도 안 돼요. 

    박숙자: 그럼. 

    김감리: 딱 이거 뿐이오. 내 피디 선생, 체면을 생각해서 받는 거라니. 

    지성현: 네, 많이 드세요. 자, 드세요. 드세요. 네. 

     

    '할머니께서 싫다고 하신다면 절대로 촬영하지 않겠다'는 말, 진심이다. 속에 있는 마음과 겉으로 나가는 말이 일치한다. 아직은 감리 할머니께서 마음을 트지 않았지만, 지성현은 진정성을 가지고 감리 할머니를 대하고 있다. 더구나 일단은 성공이다! 동네 할머니들께서 도와 주셔서(?) 받긴 하셨지만, 어쨌든 받으셨다.


    <김감리 노인 집> 

     

    지성현: 어, 할머니! 할머니, (항아리를) 거기 놔두세요. 놔두세요. 제가 할게, 놔두세요. 

    김감리: 아니야, 아유... 

    지성현: 놔두세요, 놔두세요. 제가 옮길게요. 제가 이거, 제가 옮길게요. 자, 자, 아이고. 

    김감리: 아유, 괜찮은데. 여기 닦을라고 갖고 왔지. 

    지성현: 아 제가 닦을게요. 앉아 계세요. 쉬세요. 쉬세요. 제가 씻을게요. 이거 엄청 지저분하네. 

     

    이젠, 본격적으로 관계맺기 단계! 지성현은 생각날 때마다 김감리 할머니 댁에 들른다. 그리고 할아리 청소 같은 잡일을 돕는다. 지성현은 할머니에게 얻어내려는 게 있는가? 있다. 그렇다면, 지성현은 진정성이 있는가? 있다. 이 양자가 어떻게 양립 가능할까?


    <김감리 노인 집> 

     

    지성현: (모자를 건네며) 제가 시장 지나가다가 너무 이뻐서 산 건데, 한 번만 써 보세요. 

    김감리: 아니야, 내가 그런 걸 왜... 

    지성현: 아이,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써 보세요. 

    김감리: 모자 있어요. 

    지성현: 이거 모자 제가 두고 갈 테니까 나중에 꼭 한 번 써 보세요. 

    김감리: 아, 어울리나? 

     

    지성현은 시장 지나가다가 너무 이뻐서 모자를 샀다고 말한다. 이 말은 진심인가? 진심이다. 그렇다면, 지성현은 할머니를 설득할 생각이 없어졌는가? 아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 지성현은 할머니에게 진정성이 있는가? 있다.


    <김감리 노인 집> 

     

    지성현: (전구를 전등갓에 돌려 맞추면서) 여기 맞춰서, 됐다, 오!

    김감리: 아, 됐다! 

    지성현: 됐다! 

    김감리: 목 축이, 응, 애썼어. 

    지성현: 아, 예, 감사합니다. 

    김감리: 아휴, 잘했다, 잘했어. 아이고, 잘 먹어, 응. 

    지성현: 아, 너무 맛있는데요? 이제 잘 들어올 거에요. 

    김감리: 어, 그래그래, 고마우이. 

     

    삼세판! 또 한 번 더 감리 할머니 댁에 들른 지성현은 전구를 갈아 끼워 드린다. 물 한 잔 건네는 할머니 호의를 그대로 수용한다. 그리고 물맛이 좋다고 말한다. 이 말은 진심인가? 진심이다. 그렇다면, 지성현은 할머니를 설득할 생각이 없어졌는가? 아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 지성현은 할머니에게 진정성이 있는가? 있다.


    <김감리 노인 집> 

     

    김감리: 장제이가 근성이 없다니. 

     

    이제는 김감리 할머니와 지성현 사이에 알 수 없는 관계가 맺어졌다. 이미 김감리 할머니는 아들, 손자 같은 지성현을 기다린다. (아마도 뭔가 일을 하느라 못 온) 지성현을 기다린다. 대문 근처에서 서성인다. 


    <김감리 노인 집> 

     

    김감리: 아이고, 우리 집 그릇이 마카 다 나와 있네. 아이고, 설거짓거리가 개락이라 이래 고생을 마이 시켜 우태 하나? 

    지성현: 아유, 아니에요. 금방 해요. 저 설겆이 되게 잘 해요, 할머니. 

    김감리: 그라믄 다행이고. 

    지성현: 군식구까지 데려왔는데, 오늘도 맛있는 거 먹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 

    김감리: 됐쓰요. 매 먹는 찬에 수꾸락 몇 개 더 놓은 거래요. 

    지성현: 그러기엔 좀 많은데요, 응? 

    김감리: 우리 집에 이래 수꾸락이 마이 쓰여 본 게 을매 만인지 모르겠싸. 

    지성현: 숟가락들도 오랜만에 제 구실해 가지고 아주 즐거웠겠어요. 저도 즐거웠어요, 할머니. 저는요, 그냥 뭐, 사람들끼리 모여서 북적북적 노는 게 좋더라구요. 다 같이 밥 해 먹고 웃고 떠들고. 그게 인생의 다인 거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 한 방. 이제 지성현은 감리 할머니 댁에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인다. 그리고 더불어 함께 밥을 먹는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함께 밥을 먹는 행위보다 한국적인 행위는 없다. 정, 믿음, 가족... 이 모든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한국적인 정서가 통한 사이가 되었다는 뜻.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는 뜻. 웬만해서는 오해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


    <김감리 노인 집> 

     

    김감리: 니 오늘, 그 피디 장제이 좀 데꼬 오라니. 

    홍반장: 어? 

    김감리: 집 비워 준다 해! 

    홍반장: 정말? 아, 진짜 빌려주게?

    김감리: 내거 여서 50년을 살았싸. 여서 햇아를 낳고, 가들이 뭐, 낭그 자라듯 쑥쑥 자라 갖고 출가를 하고, 이제 이래 텅 비어 내 혼자 있으니. 뭐, 사람들이 시끌시끌 놀다 가믄 이 집도 덜 외롭지 않겠나? 으이? 

    홍반장: 할머니, 어제는 안 외로웠구나? 

    김감리: 에이그, 또! 늙은이 놀쿼 먹는다! 

    홍반장: 오늘 말할게. 아, 나 할머니가 좋다면 나도 좋아.

     

    위에서 필자가 반복해서 던졌던 질문을 상기해 보자: 지성현은 할머니에게 얻어내려는 게 있는가? 있다. 그렇다면, 지성현은 진정성이 있는가? 있다. 이 양자가 어떻게 양립 가능할까?

     

    가장 먼저, 저 양자가 양립 불가능하다고 바라보는 시선에 이의를 제기해야겠다. 만약에 상대에게 원하는 바가 없어야만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관계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가족 빼고는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관계는 없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예컨대 상품을 유통시키는 상인에게는 진정성이 애초부터 없다고 말해야 한다. 그 어떤 형태로든 정당한 댓가 없이 교환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문제일 뿐, 인간 관계에서 절대로 교환을 원해서는 안된다고 단정지을 순 없다. 아주 쉽게 말해서, 관계 속에서 나만 좋은 상황 자체나 나만 좋은 상황을 만들려는 사람이 문제이지, 함께 좋은 상황을 만드는 노력은 문제가 없다. 

     

    지성현은 감리 할머니에게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늘 정중했고, 솔직했고, 따뜻하다. 할머니에게 원하는 바가 분명히 있었지만, 이를 앞세우지 않았다. 자신이 내 놓은 제안을 할머니가 거절할 때도, 그 이유에 대해서 시시콜콜 파헤치면서 알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할머니께서 이렇게 싫어하시는데, 제가 억지로 설득하고 강요하면 안 되죠. 죄송해요, 할머니. 실례 많았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지성현이 일관성 있게 진정성 있는 태도를 진솔하게 밀고 나가자, 감리 할머니도 끝내 마음을 연다. 한 마디로 딱 잘라서 거절하던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 나이도 차이 나고, 사는 곳도 차이 나고, 학력도 차이 나지만, 늘 관계를 그리워하는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저는요, 그냥 뭐, 사람들끼리 모여서 북적북적 노는 게 좋더라구요. 다 같이 밥 해 먹고 웃고 떠들고. 그게 인생의 다인 거 같아요." 

     

    답은 간단하다. 두터운 외투를 입고 걸어가는 행인 옷을 벗기려면? 비를 뿌려도 안되고, 바람을 불어도 안된다. 물론, 눈보라를 친다면 더욱 안된다. 오로지 정직하게, 따스하게, 햇빛을 내리쬐는 방법만이 통한다. 거짓없이 진정성 있는 햇빛은 관계에서도 유일하게 통하는 방법일 터. 우리는 상대에게 뭔가 원하는 바가 있다고 해도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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