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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갯마을 차차차에서 배우는 사회사업: 자기개방
    지식 공유하기(기타)/상담의 기초기술 2021. 10. 1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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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화정: (밝은 표정으로) 선생님~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 댁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왜 거기 계셔~ 

    윤혜진: (눈물을 흘리며) 으흐흑... 

    여화정: 선생님, 지금 울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요? 

    윤혜진: (계속 울며) 으흐흑... 미쳤나봐요... 눈물이 자꾸 나요. 

    여화정: (지그시 바라보다가) 아침은? 먹었어요? 

    윤혜진: (계속 울면서 고개를 흔든다.) 

     

    여화정: (정갈하게 끓인 미역국을 내 놓으며) 선생님~ 이거.

    윤혜진: 와, 성게 미역국이네요? 

    여화정: 보라 엄마 주려고 끓였는데, 어떻게 또 이렇게 되었네? 선생님 처음 공진 왔던 날에도, 요거 잡쉈죠? 

    윤혜진: (미소를 띄며) 그때 진짜 맛있게 먹었는데. 오늘도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여화정: 감사는 무슨... 애 낳는 것도 힘들지만, 어휴~ 받는 것도 보통 일 아니었을 텐데, 얼른 한 술 뜨세요. 

    윤혜진: (미소를 띄며) 네. 

     

    윤혜진: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어요. 

    여화정: 그러고 보니까, 선생님... 오신지가 벌써 네다섯달, 되었나? 

    윤혜진: 네. 

    여화정: 시간 참 빠르고, 인연은 무서워. 선생님이 여기서 치과를 차리고 홍반장이랑 만나게 될지, 누가 알았겠어.

     

    여화정: (망설이다가) 혹시 두식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윤혜진: ... 

    여화정: 굳이 대답 안 하셔도 돼. 

    윤혜진: ...

    여화정: 근데, 혹시 내가 도와 줄 게 있나 싶어서.

     

    여화정: 두식이 요즘처럼 행복해 보였던 적이 없어요. 

    윤혜진: (반색하며) 정말요? 

    여화정: 그러엄! 근데 선생님, 누군한테는 말 하기 쉬운 게, 어떤 사람한테는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고 참는 법만 배운 애라. 자기 속, 터 놓는 법을 몰라요. 힘들다, 아프다, 이런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오래 없기도 했고. 나는 선생님이 두식이 대나무숲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해 보니까,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래요. 에이~ 조급하게 굴지 말 걸. 한 번쯤은 솔직하게, 그냥 다 말해 볼 걸.


    솔직히, 어디선가 많이 본 영화 느낌이 난다. 뉴욕 같은 거대 도시에서 여피족으로 살던 여성이 우연한 계기로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 짓는 시골 청년을 만나는데, 이 청년이 그냥 촌 사람이 아니라 굉장히 지적이고 부드러우며 여러 모로 능력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둘 사이에 티격태격 로맨스가 꽃 피어나는 구도. 거슬러 올라가면 3, 40년대 미국 헐리웃 스크루볼 코미디까지 연이 닿는, 그러므로 사실은 닳고 닳은 로맨틱 코미디 하위 장르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 영화/드라마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애초에 대도시에 사는 여피족이 시골로 내려가는 설정 자체가 판타지에 가깝다. 바람을 쐬기 위한 나들이 같은 일탈로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내려가서 정착해서 산다고? 말도 안된다. 헌데, 신기하게도 만약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우리는 약간 놀라면서도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핍진성(逼眞性) 때문이다. 

     

    핍진성이란 무엇인가? 비슷한 말로 개연성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그럴 듯함'을 가리킨다. 그런데 핍진성은 개연성보다 좀 더 강한 개념이다. 단순히 그럴 듯한 느낌을 넘어서서, 픽션이지만 삶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진실을 생생하게 보여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분명히 허구적 인물인데, 그 인물이 인간성을 너무나도 잘 보여줄 때, 그래서 진짜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진짜 같을 때 쓰는 말이다.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제 14회 에피소드에서 핍진성 돋는 명장면이 나왔다. 나도 이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지만, 어째서 이 드라마가 재미있을꼬... 생각해 오고 있는데, 이 장면을 보니 갑자기 정리가 되었다: 사랑하는 홍반장이 마음 문을 열지 않아서 속상한 주인공 윤혜진. 슬퍼하고 있는데 마을 통장인 여화정이 인사를 한다. 윤혜진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으니, 밥 먹었냐며 질문하고 집으로 데려가 미역국을 먹인다.

     

    여화정은 윤혜진이 공진시와 인연을 처음 맺었을 때 먹었던 맛있는 미역국을 내 놓으며 따뜻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사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도대체 홍 반장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울기만 하지 말고 빨리 말을좀 해 봐라' 등등 재촉하는 말을 했을 텐데, 여화정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며 느긋하게 접근한다. 윤혜진 속이 뜨끈한 미역국으로 나긋나긋해지고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자, 망설이며 묻는다: "혹시 두식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앞에서도 논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도시 여피족과 시골 순박남 연애담 구조 자체는 닳고 닳은 컨셉이라서 지루하다. (더구나 나 같이 미국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스토리도 뻔하고 캐릭터도 뻔하다. 너무 뻔해서 뻔뻔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재미가 있다. 보면 볼수록 빨려들고 계속 시청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모든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찌찔하게 보일 수 있는 캐릭터마저 사랑스럽다. 비결이 뭘까? 


    핵심적인 대화 내용을 다시 읽어 보자: 

     

    여화정: (망설이다가) 혹시 두식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윤혜진: ... 

    여화정: 굳이 대답 안 하셔도 돼. 

    윤혜진: ...

    여화정: 근데, 혹시 내가 도와 줄 게 있나 싶어서.

     

    앞에서 두 사람이 미역국을 먹으며 따뜻하게 대화를 나눈 덕분에, 분위기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 사전 작업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위 대화에서는 여화정이 사용하는 몇 가지 단어(어구)에 주목하고 싶다. '혹시', '굳이 안 해도', '있나 싶어서' 이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여화정이 울고 있던 윤혜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가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여화정이 보이는 태도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조심스러운 정중함!

     

    그렇다. 여화정은 정중한 캐릭터다. 정중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어서 함부로 다그치거나 묻지 않는다. '혹시', '굳이', '싶어서' 이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정말로 두 사람 현재 상태가 걱정되고 궁금하지만, 그 이야기를 말하느냐 말하지 않느냐는 오롯이 당신 선택이다, 라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전달된다.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상체를 상대에게 가까이 한 채 온화한 미소를 띄고 있는 신체적 자세는 또 어떠한가. 조심스러운 정중함이다. 

     

    헌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가 비슷하다. 캐릭터마다 약간 편차는 있지만, 주인공 뿐만 아니라 동네 꼬마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캐릭터가 조심스러움과 정중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말 한 마디, 몸짓 하나도 상대에게 함부로 내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런 캐릭터 특성 때문에 설정이 너무나도 뻔하고 지루한 이 드라마에 자꾸 눈길이 간다. 보편적인 가치로 우리 마음을 조용히 설득한다.


    이어서, 바로 다음 대화 장면을 읽어 보자.

     

    여화정: 두식이 요즘처럼 행복해 보였던 적이 없어요. 

    윤혜진: (반색하며) 정말요? 

    여화정: 그러엄! 근데 선생님, 누군한테는 말 하기 쉬운 게, 어떤 사람한테는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고 참는 법만 배운 애라. 자기 속, 터 놓는 법을 몰라요. 힘들다, 아프다, 이런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오래 없기도 했고. 나는 선생님이 두식이 대나무숲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해 보니까,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래요. 에이~ 조급하게 굴지 말 걸. 한 번쯤은 솔직하게, 그냥 다 말해 볼 걸.

     

    이 대목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여화정이 고급진 상담 기술을 거의 '교과서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개방(self-disclosure). 여화정은 본인이 과거에 경험한 일에 관해서 본인이 현재 통찰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대단히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화정은 홍반장이 과거를 숨기는 행동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면서 슬퍼하는 윤혜진이 다른 시각에서 폭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목적과 테크닉이 절묘하게 어울리게 구사했다. 

     

    여화정은 기본적인 라포가 형성된 바탕 위에서, 미역국이라는 매체를 가지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든 후에, 표정과 자세 등 온몸으로 조심스러운 정중함을 태도로 드러내면서, 윤혜진을 설득하기 위해서 대단히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깠다. 이혼은 누구에게나 부끄러울 수 있는 사건인데(이혼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자신이 부족했음을 드러내는 사건이기에), 홍반장와 윤혜진을 위해서 주저하지 않고 드러내 보인다. 

     

    <갯마을 차차차에서 배우는 사회사업, 좀 더 읽으시려면 아래 박스 링크 클릭!>

     

    갯마을 차차차에서 배우는 사회사업: 진정성

    "2박 3일씩 총 다섯 번, 딱 보름이에요." 서울서 유명한 예능 PD, 지성현은 의욕에 불타고 있다. 그는 동해안에 자리잡은 한적한 항구, (청호시) 공진항에서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empowering.tistory.com

    <덧붙임>

     

    극본을 쓴 이가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찾아 보았다. 신하은 작가. 낯선 이름이다. 필모그래피를 찾아 봤다. '왕이된 남자(드라마판)' 각본을 썼단다. 그리고 언론 드라마, '아르곤' 각본을 썼단다. 헐! 필모를 보니 딱 이해가 된다. 세 드라마 모두 이야기 밀도가 높다. 충격적으로 새롭지는 않지만 각 에피소드가 생생하고 술술술 넘어간다. 신하은 작가는 '뻔한 재료를 빼꼼하게 구성해서' 재미를 뽑아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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