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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세 좀 지면 어떻노?
    지식 공유하기(기타)/돌아오라 1988(공감 텍스트) 2022. 2. 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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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이 아빠 무성은, 고향에 친한 친구 문상을 다녀 왔다가 컨디션이 갑자기 악화되어서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진다. 다행스럽게도, '딱 한 잔만 하기 위해서' 봉황당을 찾은 덕선 아빠, 동일이 쓰러져 있는 무성을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긴다. 택이 외에는 가족이 없(어보이)는 무성. 실제로 없다. 사실, 무성은 선영이와 동네 친구 사이. 무성은 부인이 사망한 이후 폐인처럼 생활하다가 보다 못한 선영이 강력하게 권유해서 서울로 올라왔던 것. 선영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입원한 무성을 찾아오며 살뜰하게 간호를 해 준다. 

     

    그런데 남편을 잃고 혼자서 어렵게 살아가던 선영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사망한 남편 시동생이 선영이 살고 있던 집을 합의금 담보로 답혀서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한 것. 지금이야 돈 천만원이 그리 크지 않은 돈일 수 있겠지만, 쌍팔년도라면 엄청나게 큰 액수. 안그래도 근근이 살아가고 있던 선영에게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커다란 재난이 닥친 셈이었다. 그런데 선영이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뒤늦게 알게 된 무성은, 그동안 저축해 두었던 돈을 선영에게 주려고 한다. 물론, 자존심 센 선영이는 쉽게 받지 않을 터. 무성은 진정성을 가지고 선영을 설득한다. 

     

     

    무성: 선영이 니가 그때 오빠 서울로 안 불렀으면, 내 아직도 택이 엄마 못 잊어가, 하루 종일 술만 먹고 살았을끼다. 

     

    선영: (말없이 듣고 있다)

     

     

    무성: 고맙다. 오빠 불러 줘서. 

     

     

    선영: 칫, 별 게 다 고맙다. 

     

    무성과 선영 간에 있었던 역사가 소개된다. 무성은 택이 엄마가 사망한 후에, 실의에 빠져서 자신과 집안을 돌보지 못하고 허우적 대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선영이 무성을 서울로 불러올린다. 

     

     

    (자막: 1977년 가을, 경남 김해시 봉황동 / 전화벨이 울린다)

     

     

    무성: 어, 선영이가? 서울이 어디라고 올라가노? 나는 고마 여 있을게. 

    선영: 올라온나, 오빠야. 거 계속 있으면, 오빠야는 죽은 민정 언니한테서는 못 빠져 나온다. 택이도 서울서 크는 게 훨씬 낫고. 고마 우리 동네로 이사 온나. 

    무성: 서울이 어디 사람 살 데가? 내는 그런 데서 몬산다. 

    선영: 오빠야, 여는 김해보다 더 촌이다. 사람도 다 순하다. 내 믿고 올라 온나. 

     

     

    선영: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거 아이가? 언제까지 죽은 민정 언니 붙들고 살래?

    무성: (한숨을 깊게 쉰다) 휴~

     

     

    무성: 내는, 살면서 가장 잘한 기, 서울로 이사온 기다. 이번에도 동네 사람들 아니었으면, 오빠 벌써 죽었을 기다. 응? 신세는 많이 지고, 폐도 끼치고, 미안한데... 

     

     

    무성: 고마 신경 안 쓸라고. 내도 살면서 그 사람들한테 뭐, 신세 갚을 날 안 있겠나? 니도, 혼자서 다 할라고 하지 마라. 신세 좀 지면 어떻노? 

     

    결국, 선영을 돕기 위해서 돈을 주려는 무성. 도와 주려는 취지를, 그답게, 무심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말한다. 관계란 주고 받는 것.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 함께 살다 보면, 지금은 도움을 받지만, 언젠가는 도움을 줄 날도 올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너무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말 것. 신세 져야 할 때는 신세를 질 것. 

     

     

    (무성, 침상 옆 서랍에서 통장과 도장을 꺼낸다)

     

     

    무성: (통장을 건네면서) 아나, 천만원이다. 받아라. 팔 아프다. 

     

     

    선영: 아니다, 오빠야. 내 이거 안 받을끼다. 

     

     

    가시나야 지금까지 뭔 소리 들었노? 어? 퍼뜩 받아라. 

     

     

     

    무성: 주는 기 아니고, 빌려 주는 기다. 응? 나중에 갚으면 될 거 아이가? 퍼뜩! 

     

     

    선영: (마지못해 통장을 받는다) 

     

     


    이 장면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필연적으로) 내가 겪어내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폐인(癈人)'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폐인(癈人)은 '일반적으로 병이나 사고로 몸이 망가져서 재기불능이 된 상태'를 뜻한다고 나와 있다. '요즘은 술, 약물 등에 의존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트라우마 등으로 인한 정신붕괴로 사회생활이 어렵거나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몸이나 마음이 망가진 사람'을 뜻하기도 하며, '요즘엔 히키코모리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단다. 뜻풀이를 읽어 보니, 멀리 볼 것도 없다. 내가 바로 폐인이었다. 그것도 몇 년 동안이나. 

     

    당시에 내가 살던 하루: 일단, 10시가 넘어서 일어난다.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지만 커튼 사이로 침투한 햇빛 덕분인지 저절로 눈이 떠진다. 하지만 잠을 깬 후에도 그냥 멍~하게 누워 있다. 숨만 쉬는 거다. 배가 고파서 오후 3, 4시가 되어서야 일어난다. 겨우 라면 하나 끓여서 아무렇게나 밥을 먹는다(하루에 한 끼). 다시 눕는다. 멍~한 상태로 5시가 되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오늘은 잘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한 분노, 나에 대한 분노, 상황에 대한 분노... 영혼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온갖 분노 감정 때문에 잘 수가 없다. 그러면 다시 뜬 눈으로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룬다. 그리고 다시 10시. 

     

    먹고, 자고, 싸는 일 외에 내가 유일하게 했던 일이 해결중심모델을 공부하는 일이었다. 돈 한 푼을 못 버는 위인이 그렇게 영어책을 많이 사서 읽어댔다. 그나마 해결중심모델 공부를 할 때는 분노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 (당시에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한 덕분에, 바로 그 공부에 힘 입어서 지금 돈도 벌고 가족도 부양한다.) 그리고 당시에 내가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가장 강력한 이유: 어머니. 오랫동안 미워했던 어머니인데, 나도 나를 버린 상태였는데, 어머니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매번 한숨을 쉬시면서도 매주 김치통을 들고 허름한 쪽방에 찾아오셨다. 어쩌면 어머니 김치 맛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 있는 듯 하다. 

     

    "고마 신경 안 쓸라고. 내도 살면서 그 사람들한테 뭐, 신세 갚을 날 안 있겠나?"

     

    무성이가 선영에게 도움을 주고 선영이가 무성에게 도움을 주는 이 장면을 뜯어 보면서, 인간의 삶이란 역시 사람들 속에 있어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사회적인 그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일을 만나서 스스로 유배지로 숨었던 나였지만,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준 친구들(상경, 현애), 그리고 결국 선물처럼 나에게 다가온 아내까지. 삶에서 가장 큰 상처도 사람에게 받는 법이지만, 그렇게 찢겨진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도 결국은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눈 앞만 보면 누가 누굴 도와 주는 듯 싶지만, 멀리 본다면 결국 도움은 돌고 도는 돌맹이 같은 것. 

     

    (무성)고맙다. 오빠 불러 줘서. 

    (선영) 칫, 별 게 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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