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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고문'이라고 말한 그대에게
    상담 공부방/해결중심상담 교육 후기 2022. 9. 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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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돕고 있는 어르신들께 '근데,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라고 꼭 물어보고 싶어요."

    최근에 참여한 해결중심상담 관련 교육이 끝나고 어떤 학생 분(사회복지사)께서 소감으로 말씀해 주신 문장. 간단하게 한 마디만 해 달라고 부탁 드렸는데, 백 마디, 천 마디가 포함된 깊은 말씀을 해 주셨다.

    "음... 뭐랄까, 좋긴 한데... 제가 돕고 있는 어르신들에게는 희망고문일 것 같아요."

    역시, 같은 클래스에서 함께 공부하신 어떤 학생 분(사회복지사)께서 소감으로 말씀해 주신 문장. 위에 소개한 첫 번째 문장과 비교해 보면, 결이 많이 다른 문장이지만 배경이 두터운 말씀이라고 본다. 

    먼저, 두 번째 문장부터 분석해 본다. 솔직히, 저 분께 배경 설명을 자세히 듣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 문장을 말씀해 주신 분께서 어떤 맥락으로 말씀하셨는지 다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짐작해 볼 수는 있겠다: "제가 돕는 어르신들께서는 연세도 너무 많이 드셨고요, 건강 면으로나, 경제적인 면으로나 너무 취약하셔서, 하루 하루 연명하시고 살아가시는 일 자체가 힘드세요. 그런데 이분들에게 '어르신,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라고 여쭈면, 물론 억지로 답은 하실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 허황된 이야기일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은 현실적이다. 하긴... 역사적으로만 봐도, 그럴 수밖에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중 일부는 소수이긴 하지만 일제시대를 경험한 사람도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 아니, '끔찍한 비극'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예컨대, 40년대에 출생하신 내 아버지는 7살 때 전쟁이 나서 수백리 길을 피난다니시면서 시체를 숱하게 밟고 걸으셨다고 한다. 보통 충격적인 경험이 아니다.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트라우마 경험이다. 내가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직감이 드는 충격적인 경험이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시대를 거친 후에는? 독재와 국가폭력 시대를 거쳤다. '우리도 한 번 (경제적으로) 잘 살아 보자'는 일념으로 온갖 제도적인 폭력을 묵인하고 견뎠다. 한 마디로, 병영국가, 상시 동원체제였다. 지금은 무슨 구석기 시대 이야기 하듯 멀게 느껴지지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90년대 초)만 해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 따귀를 때리고 나무 빗자루 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학생을) 때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고딩 시절, 밤새 술 마신 선생이 수업 시간에 별 일 아닌 일로 열받아서 약간 반항기가 있었던 친구를 발로 차고 밟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헀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 속에서 산다. '두 번째 기회'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한 번 미끌어지면, 죽음 외에 답이 없다고 느낀다. (실제로 자살률도 전세계 일등!) 안 그래도 다양성이 부족하고 획일적인 문화가 남아 있는데, 경제적으로 철저하게 각자 도생하는 세상에서, 모든 삶의 기준은 경제적인 요소로 귀결된다. 가난해서 밥 한 술 뜨지 못하면 불행이요, 게다가 아픈데 돈이 없어서 치료받기 어려우면 좀 더 불행. 이런 상황이니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는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답변이 뻔하기도 하거니와, 답을 듣는다 한들 그렇게 살 수 없는 분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첫 번째로 말씀해 주신 분께서는 어째서 "제가 돕고 있는 어르신들께 '근데,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라고 꼭 물어보고 싶어요" 라고 말씀하셨을꼬. 문득, 상상해 본다. 내가 다시 혼자 살고, 돈은 한 푼도 없고, 쇠약해져서 가만히 있어도 몸이 아프고, 가족도 없고, 집도 절도 없다면. 당연히, 삶이 힘들겠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 진짜 절망스럽다면 벌써 죽었겠지. 어쩌면 죽음이 무서워서, 죽지 못해 살고 있을 수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든 다른 사실을 덮을 정도로 의미있고 중요하다. 아직은 먹고 있고, 자고 있고,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실, 사람들은 해결중심을 한참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다. 온통 부정적인 삶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힘들고 외로운 삶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이야기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해결중심은 '긍정적인 면도 좀 보자'는 이야기다. 애초에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던 삶에 그렇게 부정적인 요소만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지나친 낙관주의도 위험하지만, 지나친 비관주의도 그만큼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반드시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현실적인(사회경제적) 조건이 매우 열악한 사람을 해결중심적으로 도우려고 할 때 기억해야 할 이야기다. 간단하다. 해결중심은 (가족)상담모델에서 출발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개발된 모델이 '전혀' 아니다. 따라서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은 해결중심을 떠올리지 말고 '그냥' 도와 드리면 된다. 즉각적인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시는 분에게, 어줍잖게 혹은 무책임하게, 이상한 질문을 구사하면 안 된다. 한참 어리석고 무례한 일이다. 어떤 학생 분 말씀처럼, '희망고문'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다시, "제가 돕고 있는 어르신들께 '근데,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라고 꼭 물어보고 싶어요" 라고 말씀하신 학생 분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분께서는 자칫하면 '희망고문'으로 느끼실 수도 있는 어르신께 왜 저 질문을 꼭 드려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걸까? 그 이유는 아마도, 그동안 우리가 바쁘다는 핑계로, 실적을 중시해야 하는 현실적 상황에 밀려서, 단 한 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해당 어르신께서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답변이 예상했던 바처럼 뻔하더라도, 어차피 당장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고문이라고 해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느끼셨기 때문이 아닐까?

    요약하겠다: (1) 우리는 현실 속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감안하고 존중해야 한다. (2) 당장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시거나, 당장 호전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계신 분에게 상황이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던지는 '해결중심 질문'은 공허하고 희망고문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3) 그러므로,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분에게는 그냥 경제적으로 지원하자. (4)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부분적인 조건이지, 유일한 조건이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5)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기에, 구체적인 현실도 결국 가치나 지향점과 연결된다. (6) 즉각적인 뒷치닥거리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질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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