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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745)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4. 2. 24.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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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집 선생님 기록> 

    "봄이가 놀이하다가 바닥에 붙여진 사진을 보더니 선생님에게 얼른 달려와서 가족사진을 찾아 알려 준답니다! "엄마, 아빠"하고 말하기도 하고 사진을 뚫어져라 들여다 보기도 하네요. 친구들이 사진 위에 올라가 폴짝 뛰어보기도 했는데, 뛰다가 봄이 가족사진 위에 올라가자 봄이가 울며 선생님에게 왔답니다. 엄마, 아빠를 소중히 생각해서, 친구들이 올라가자 눈물을 보이는 봄이가 너무너무 귀여웠습니다."


    일단, 나는 살면서 아이가 생기리라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다. 아내와 너무 늦게 만나서(75년생 아빠 + 76년생 엄마), 임신이 어렵겠다고 느꼈다. 혹시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로 낳아서 키우려면 너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갔다가 (역시나 연령 때문에) 하이패스로 난임 클리닉으로 넘어갔고, 그 힘들다는 시험관 시술을 세 번 정도 받았지만 모두 실패. 서로 명시적으로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냥 우리끼리 재미있게 잘 살다 가자고 마음 먹었...

     

    는데, 이게 웬일. 어느 날, 기적처럼 봄이가 잉태되었다. 아! 바로 이래서 아이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삼신 할매가 점지하는 존재라고 반만 년 동안 믿었구나! 아침마다 아내 배를 잡고 주삿바늘을 찌를 때마다 달 밝은 밤 물 한 사발 떠 놓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빌고 또 빌었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더니, 둘 다 자포자기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쿨쿨 자던 밤 사이에 봄이가 홀연히 우리 부부에게 왔다. 세상 사람들, 우리 마누라가 기적이오. 47세에 이렇게나 곱고 건강한 아이를 낳다니! 

     

    하지만 봄이가 우리 곁에 온 후로도 나는 계속 마음을 졸였다. 부모 나이가 많으면, 특히 아빠 나이가 많으면, 자폐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에게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무조건 낳아서 키우겠지만, 그래도 나는 딸과 눈을 마주치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살고 싶었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봄이 이름을 몇 번씩 부르고 아빠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아빠를 대단히 또렷하게 바라보았다. 

     

    무남독녀 늦둥이 외동딸, 이봄 아가씨. 

     

    우리 딸이 중3이 되면 나는 65세가 된다. 우리 딸이 대학에 다닐 나이가 되면 나는 70세가 넘어가고, 우리 딸이 직장 다닐 나이가 되면 80세가 된다. 어쩌면, 우리 딸이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아내가 나보다 건강하니 어쩌면 엄마는 더 오래 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아빠 없이 살아갈 내 딸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역시, 나는 '걱정 매니아(?)'다. 이 말을 들으면, 낙천적인 아내는 '또 쓰잘데기 없는 말'을 한다며 핀잔을 주겠지? 


    며칠 전, 평소 밝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지인과 인스턴트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그의 프로필 사진을 살펴 보았다. 삶에서 가장 찬란한 20대를 지나는 젊은이라서 모든 사진이 보기 좋았는데, 그 중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특히 보기 좋았다. 그런데... 그 사진, 느낌이 묘했다. 그래서 다른 사진 몇 장을 넘겨 보다가 다시 그 사진으로 돌아갔다. 지인 뒤에 앉으신 두 분은 그냥 봐서는 분명히 할머니, 할아버지로 보였는데, 지인과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다. 상의를 검은색으로 맞춰 입은 분위기도 조부모와 손녀 느낌은 아니었다. 훨씬 더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달까. 

     

    그래서 메신저로 슬쩍 물어 봤다.


    나: 그리고 김 선생님... 혹시 외동딸? 

    지인: 저... 외동딸입니다!

    나: 하... 

    지인: 티가 나나요? 

    나: 아뇨, 전혀요. 아시다시피, 제가 외동딸 아빠잖아요. 오히려 내적 친밀감이 느껴져서요. (프사 봤어요.) 

    지인: 제가 외동딸에 늦둥이랍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는 할아버지 손 잡고 다니냐고, 주변에서 물어 봤는데... 

    나: 하하... 역시! 제가 제대로 알아 봤네요. 왠지 선생님이 더욱 가깝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제가 들을 이야기. 사실, 어린이집에 가서도 그런 이야기 들었음. 봄이 할아버지 오셨냐고. 

    지인: 슬프고 웃깁니다. 저도 소장님과 입장이 같아서 아이가 더 예뻐 보였나 봐요. 늦둥이 외동 아빠, 항상 건강 챙기셔야 해요! 

    나: 그런데 저는 확신이 있어요. 아이에겐 정서적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늙은 아빠는 바로 이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있다. 건강만 잘 챙기면 오히려 더 좋다.

    지인: 저도 아빠에게서 정서적 안정감을 많이 느꼈어요. 개인사업을 하셔서 제가 어릴 때부터 많은 시간 동안 함께 해 주셨거든요. 후후. 따님도 분명히 안정적으로!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자라겠네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딸, 봄이는 나를 꼭 빼닮았다. 그리고 아내도 빼닮았다. 아내와 나는 '순진하다', '뒤가 없다', '서로 깊이 사랑한다'는 공통점 말고는 대단히 다르다. 많이 달라서 종종 싸우지만, 절대로 선을 넘진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많이 다르기에 서로 깊이 보완한다. 우리는 매우 자주, 봄이 영혼에 내 영혼과 아내 영혼이 온전히 다 깃들어 있는 모습을 보는데, 가족으로서 깊은 일체감을 느낀다. 

     

    당연히, 엄마, 아빠가 늘 신경써서 체력을 관리해야겠다. 그리고 항상 적게 먹고 열심히 운동하려고 애써야겠다. 하지만 봄이가 우리 품에서 정서적으로 안정적으로 자라난다면, 그리하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깊이 이해하면서 살아간다면, 엄마, 아빠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가끔씩 힘들고 외로운 상황에 처해도, 늘 밝게 웃는 지인처럼, 웃으면서 꿋꿋하고 씩씩하게 다시 일어설 테니까. 

     

    친구들이 엄마, 아빠 사진 밟았다고 우는 봄이, 엄마와 아빠를 많이 사랑하는 봄이, 우리 딸 봄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해 줘야겠다. 

     

    <참고>

    글에 등장하는 지인에게 사진을 사용해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허락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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