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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니까, 비벼주는 거야.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 4. 26.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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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록: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 7화 중에서> 

     

    준완: 응, 나 면제 맞아.

    익순: (준완을 빤히 쳐다 본다.)

    준완: 어떻게, 내 지난 과거 한 번 들려줘? 엄청 긴데? 

    익순: 아유 됐어요. 사정이 있었겠죠. 근데 오빠, 나 지금 자장면 비벼 준 거에요? 

    준완: 응. 

    익순: 감동이다, 정말. 

    준완: 허, 별 걸 다... 

    익순: 우리 오빠나 같이 사는 정원 오빠에게도 이렇게 해 줘요? 

    준완: 미쳤어? 야, 각자 처 먹기 바빠 죽겠는데, 비벼 주긴 뭘 비벼줘. 엄마한테도 안 비벼 줘. 너니까,

    익순: (다시, 주환을 빤히 쳐다본다.) 

    준완: 비벼 주는 거야. 

    익순: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단무지를 주환의 그릇에 넣어 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은 명백히 캐릭터 드라마다. 극본을 쓴 이우정 작가는 1박 2일의 메인 작가 출신. 등장 인물의 특성(캐릭터)을 유머 속에서 설정한 후, 강력한 메인  플롯(갈등) 없이 다소 느슨하고 자유롭게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캐릭터 자체가 이야기가 되고, 캐릭터와 캐릭터가 맞닿으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준완이 캐릭터는 까칠한 의사 캐릭터이고, 환자들에게는 팩트 폭력을 수시로 행사하는, 싸가지 없는 캐릭터. 하지만 사랑하는 여성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캐릭터. 대학 동기들과 자장면을 먹을 때는 각자 처먹기 바쁜 와중에 자기 그릇만 챙기지만, 익순이에게는 세심하고 다정하게 자장면을 비벼서 건네준다.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사랑이란, 구체적인 언어로 가장 적확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때로는 이례적인 행동이, 그 어떤 다정한 말보다도 달콤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7화에서 까칠 + 싸가지 캐릭터, 준완이가 익순에게 자장면을 비벼주는 행위는 친밀한 대학 동기들에게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이례적인 행동이고 달콤한 행동이다. 

     

    "너니까, 비벼주는 거야."


    부부-가족상담을 하다 보면, 의사소통 교육이 필요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늘 서구적인 방식으로, 반드시 말로 하는 표현을 가르치기 쉽다. 물론, 말로 하는 소통이 가장 빠르고, 쉽고,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적인 방식도 무시하고 싶지 않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한국적인 사랑 방식도 놓치면 안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 어떤 실천론 책에도 써 있는 "I-message"를 생각해 보자. 다들 이 소통법을 실제로 사용하는가? 정말로 효과가 있는가? 난 아니라고 본다. 왜? 영어는 주어를 생략해서는 안되는 언어이지만, 우리말은 거의 항상 주어를 생략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우리말로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말투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너니까, 비벼주는 거야" 라는 간접적인 표현,

    혹은 "...(말 없이 자장면을 비벼주는 행위)"가 더 절절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니까, 비벼주는 거야."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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