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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반의 작은 기적
    상담 공부방/해결강독 2020. 6.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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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반, 아니 언니반의 작은 기적

    올해 봄부터, 내가 2019년에 쓴 해결중심모델 책 원고를 가지고 강독하는 스터디 그룹을 조직해서 운영하고 있다. 주로 밤 시간(21시~23시)에 카카오톡 그룹콜(일종의 그룹 전화) 기능을 활용해서 공부를 한다: 참여자는 내가 pdf로 만들어서 공유한 원고를 인쇄해서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전화기를 든다(핸즈 프리 이어폰을 사용하기도 함). 정해진 요일 밤에 내가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걸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학생들이 전화 통화를 매개로 모인다. 첫 5분 동안은 근황 토크를 하고, 이후에는 멤버 별로 돌아가면서 원고를 읽고, 내가 상세하게 개념과 배경을 설명한다. 중간에 5분 간은 쉬는 시간이고, 약 50분씩 두 시간에 거쳐서 공부한다. 매 시간이 끝나면 하루나 이틀 내로 레포트를 작성해서 낸다: 배운 점, 느낀점, 실천할 점, 질문을 포함한다.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해결중심 강독 공부반이 현재 요일별로 4개 정도 된다.)

     

     

    깨똑으로 상담 공부를 한다굽쇼?

    1. 2019년 세상에 다시 나왔다. 지난 8년 동안 내가 공부하고 실천해 온 해결중심모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오프라인 강독 스터디를 생각했다. 강독이��

    empowering.tistory.com


    사실, 얼마나 잘 운영될지는 나도 몰랐다. 전화로 하는 공부가 제대로 굴러갈까? 전화기를 켜 놓고 다들 노는 것은 아닐까? 긴장도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많이 어색하지 않을까? (멤버들은 서로 거의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분들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머머, 웬일이니? 다들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1) 전화기로 하니 왠지 모르게 더 집중되는 매력(?)이 있었다. (2) "강독"이라는 형식이 선생이 마음껏 가르치고 설명할 수 있는 형식이라서 나에게 맞았다(나는 말이 많다). (3) 다들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다들 이게 될까? 라고 생각했단다) 우리가 실제로 깊이 있게 공부를 들어가니까 너무나도 만족스러워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끌어 당기는 반이 있다. 바로 일요일 밤에 모이는 엄마반, 아니 언니반이다. 이 반은 세 분이 멤버인데, 모두 엄마이면서 사회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원래는 다들 평일에 진행되는 강독 스터디에 참여하고 싶어하셨는데, 아이를 매달고 다니셔야 하는 분들이라서 평일에는 도저히 시간을 내실 수 없다고 호소하셨고, 그래서 부득이하게 일요일 밤에 모이게 되었다.) 솔직히, 일요일 밤에 강독반을 운영하는 게 나도 힘에 부친다. 그렇지만 공부를 하고 싶다는 학생 분들의 피맺힌(?) 향학열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분들이 정말로 공부를 하실 수 있을까? 언제까지, 어디까지 가실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했다.) 

    이 글의 제목으로 돌아간다: 엄마반, 아니 언니반의 작은 기적. 

    무엇이 작은 기적이란 말인가?

    언니 반에 참여 중이신 어느 학생 분의 솔직, 담백한 고백: "저도 처음에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분들과 수업이 가능할까, 라고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직장에 있는 선배들보다 그분들이 더 믿음이 가고 좋답니다. 직장에서는 진짜 남 잘되는거 배 아파하고 그러거든요. 우리 방은 그렇지 않아서 솔직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다 표현하고 꾸미지 않으니 인간적이어서 너무 좋습니다."

    강독반을 운영하면 멤버들끼리 오프라인, 혹은 대면 온라인 모임과는 또 다른, 청각적 정보를 나누는 모임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오래전 PC 통신 시절, 컴퓨터 화면에서 반짝이는 커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면서 나의 메시지와 그의 메시지가 오고 가는, 뭔가 아련한 고전적 채팅 같은 분위기랄까?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과 끈끈한 동지 의식이 생기고, 따뜻한 마음이 오고 가며, 멤버십이 형성된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분위기요 멤버십이다. 

    그런데, 이 반, 일하는 혹은 공부하는 엄마반에 모인 언니들은 또 다른 차원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바로 여성이라는 정체성: "저는 엄마로서 아이를 사랑스러워하지만, 때로는, 아니 사실은 엄마로서가 아니라 저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어요. 누구 엄마나 누구 부인이 아니라, 학생이니까 그냥 학생으로 존재하고 싶어요." 언니 반의 어떤 멤버가 나누어 주신 마음 속 메시지. 그러니까 이분들은 여성으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하고 고유한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분들이었고, 내가 열어 놓은 강독 스터디를 통해서 이러한 열망을 함께 확인하신 거였다. 

    어느 날, 어느 멤버 왈: "저 이거 사서 읽을 건데 이 방에 있는 멤버들과 함께 읽고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싶어요. 기한을 정해서 읽은 후 감명받거나 생각되는 지점 줄친 후 함께 읽고 서로 피드백하기.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결혼한 여자들의 페미니즘") 

    이 제안을 들은 다른 멤버 왈: "나 좋아. 이미 책 주문했어. ㅋㅋ"

    또 다른 멤버 왈: "저도 책 구매했어요 ㅎㅎ"

    해결중심모델과 이야기치료는 무엇인가? 두 모델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단 한 번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확인하고 표현할 수 있는 마이크를 쥐어주는 방법"이라고. 예컨대 이야기치료가 페미니즘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해결중심모델과 이야기치료는 주류나 강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소외된 자의 목소리와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억압되어 말하지 못했던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이제 내가 왜 엄마반의 대화를 듣고, 작은 기적을 보았다고 믿는지 알겠는가? 

    기적이란 무엇일까? 바로 스스로 자신을 약자로 규정했던 사람들이 각성하고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려고 시도하는 것. 이 세 사람의 언니들이 뭔가 마음 속에 가둬 두었던 정말 솔직한 삶의 이야기를 타인의 판단이나 세간의 평가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풀어놓기 시작한 것. 내가 제안한 해결중심모델 강독 스터디가 이분들에게 시나브로 좋은 자극이 되었다는 사실. 이분들의 귀한 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다는 사실.

    이런 게 기적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 기적이겠는가?

    기적은 작은 것이다.
    작은 기적이 큰 기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기적을 꿈꾸어야 한다.


    (덧붙임)

     

    엄마반, 아니 언니반 선생님들,
    제가 사랑하는 학생, 아니 동료 선생님들.
    그대들이 원하시는 대로 하셔요.

    작은 기적을 계속 만들어 가세요.
    제가 응원합니다.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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