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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와 친해지는 법, 그리고 사회사업
    카테고리 없음 2021. 10. 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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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지만, 지난 번 교육 때 제가 말씀 드렸던 친구 있잖아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충격과 공허감에 빠져 있을 것 같은데, 도와주려고 하면 대화를 회피하고, 복지실에서 선물을 주거나 상담이나 프로그램을 권유하면 자기를 동정한다고 생각해서 그냥 가버리는 학생이요. 그 친구 이야기인데요, 지난 번 교육이 끝나고 나서,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 주부터 이틀에 한 번 꼴로 여기에 오는 거에요. 그 전에는 이렇게 자주 안 왔는데... (제가 조식 사업을 하는데) 아침에도 불쑥 찾아와서 자기도 아침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이 친구가 저에게는 가장 힘든 내담자였는데요, 시간이 꽤 지났잖아요. (중학교) 입학할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친구인데, 지금은 2학년 말이 되었으니까요. 그동안 제가 대단한 노력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제가 여기 있다는 인상을 계속 주고, 가끔씩 컨택을 부담스럽지 않게 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변화가 시작된 게 아닐까... 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거든요. 이렇게 오랫동안(약 2년) 기다린 적도 처음이고요."

     

    (참고) 소속과 성함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코멘트를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받았음.


    내가 가르치는 어떤 해결중심상담 클래스에서 모 지역에 위치한 중학교 교육복지실에서 일하고 계신 A 선생님께서 귀중한 사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위에 인용한 말씀에서도 나타나듯이, 집안에 힘든 일이 생긴 후에 (아마도) 혼자서 어려움을 견디고 있었을 어느 중학생 이야기다. 복지실에서 작은 선물이라도 주면, "제가 불쌍해서 주시는 거에요?" 라고 외치며 가 버리던 친구. 복지실 선생님께서는 도대체 이 친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느냐고 나에게 질문하셨다: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인데, 학생이 복지실의 성격을 알아서인지 일부러 피해 다닙니다. 어떤 감정인지 이해가 가지만, 계속 어떠한 컨택도 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담당자로서 어떻게 대처하는 게 지혜로운 방법일지 고민됩니다. 이 학생과 대화가 안되더라도 맨땅에 헤딩처럼 계속 시도를 해야할지, 아니면 접근하는 저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내버려 둬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그런데 극적인 변화가 갑자기 찾아왔다. 복지실이라면 그렇게 학을 떼며 싫어하던 학생이 제 발로 찾아왔다는 이야기. 와서 심지어는 먼저 말까지 건넸다는 이야기. 그래서 A 선생님께서는 마음 속으로 '아싸!' 하며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부담스러워할까봐 조용히, 가만히 계셨다는 이야기. 이렇게나 오래 기다리게 될 줄은 모르고 기다리셨겠지만, 관심을 끊지 아니하면서 끝까지 기다린 끝에, 결국은 학생이 먼저 다가오는 모습을 보게 되셨다는 이야기.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 이야기.

    그냥 전해 듣기만 했는데도 기분 좋은 이 이야기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A 선생님께서 2년 동안 기다리셨다는 이야기에서, 문득 여러 가지 트라우마 기억 때문에(주로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이겠지만) 사람이 보이는 관심과 손길을 극단적으로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고양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반려 동물 교육과 관련된 동영상을 보면 늘 등장하는 흔한 이야기 아니던가. 보통 사람은 두 가지 선택지만 떠올린다: 고양이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쓰다듬어 주거나, 싫다며 혐오하고 멀리하거나.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고양이를 대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쓰다듬는 방법도 아니고, 외면하고 관심을 끊는 방법도 아닌, '제 3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그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말아야 한다(귀찮게 하거나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주의하시라! 나는 선의를 가지고 다가가지만, 명백하게도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사실은 선의로 가득 차 있는 내 행동을 얼마든지 거꾸로(귀찮게 하거나 괴롭히는 행동으로) 오인할 수 있다. 오해마시라! 다가가지 않는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배척하는 건 아니다. A 선생님 사례를 생각해 보라. 이 선생님께서는 2년 내내, 혹은 그 이상(입학 전부터 학생에 대해서 아셨다고 한다) 해당 학생에게 관심을 쏟으셨다. 마음 한 켠 어딘가에는 언제나 이 학생에게 마음을 쏟으면서 신경쓰는 공간을 남겨 두셨다. 둘째, 고양이가 먼저 다가올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 호감과 선의는 계속 표시한다. 고양이가 다니는 동선 위에 사료와 물을 두고 언제든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조심스럽게 소통을 시도한다. A 선생님께서는 해당 학생이 복지실에서 주는 작은 선물에 대해서 "제가 불쌍해서 주시는 거에요?" 라고 말하며 사라져 버리는 다소 민망한 일을 겪으시면서도, 음으로 양으로 계속 관심을 표현하셨다. 본인 말씀처럼, "그동안 대단한 노력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기 있다는 인상을 계속 주고, 가끔씩 컨택을 부담스럽지 않게 했기 때문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셋째, 내 모든 노력과 시도를 오롯이 그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건 행동 지침이라기보다는 모든 세세한 과정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원리다.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고양이는 사람이 아니다. 개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내 속도, 내 방식, 내 언어를 고수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고 어쩌면 불편한 그의 속도, 그의 방식, 그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고양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섬세한 존재인 사람에게 접근할 때는 훨씬 더 전향적으로 그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젠 사회복지 기관이, 사회사업가가 앞에 서서 사람들을 끌고 다니는 사회사업은 끝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반 세기 이상 앞에서 끌고 가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에, 앞에서 끌고 가는 방식을 중단하기 어려워 한다. 그래서 이 상황에 겁을 먹거나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앞에서 끌고 가는 방식이 잘못되었거나, 어쨌든 시대에 뒤떨어지는 방식이라는 건 알겠어.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저 사람들을 내버려 둬야 하나? 관심을 끊어야 하나? 내가 명색이 사회사업가인데 그래도 되나?' 아니다. 또 다른 길이 존재한다. 제 3의 길이 존재한다. 부담스럽게 다가가지 않으면서도 관심을 끊고 방임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서도 선한 마음과 따뜻한 관심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Cats(캣츠)'의 원전인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에 나오는 시 한 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적인 극작가인 T. S. Eliot(엘리엇)가 쓴 이 짧은 구절에는 제 3의 길로 나아가는 사회사업가가 명심해야 할 원리가 기가 막히게 잘 요약되어 있다.


    고양이를 대하는 규칙은 하나 뿐이라는 사람도 있어.
    말을 걸어올 때까지 말하지 마라.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
    고양이에게도 말을 걸어야 한다는 얘기야.

    물론,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양이는 친한 척하면 화를 낸다는 사실.

    나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이런 식으로 말을 걸지. '아, 고양이!'

    하지만 전에도 자주 만난 옆집 고양이라면
    나도 '이야, 고양이네!' 라고 인사해.

    제임스 버즈 제임스라 부르는 소리는 들었지만
    아직 서로 이름까지 가르쳐 주지는 않았으니.

    황송하게도 고양이가
    믿을 만한 친구로 대해 줄 때까지는

    조그만 존경의 표시도 필요해.
    이를테면 크림 한 접시 같은 것.

    때로는 캐비아 약간이나 스트라스부르 파이,
    꿩고기 통조림이나 연어 페이스트를
    내놓을 수도 있지.

    분명 고양이마다 취향이 있을 테니
    (내가 아는 어떤 고양이는
    토끼 고기만 먹는 버릇이 있는데,
    다 먹으면 양파 소스가 아까워서
    발바닥까지 싹싹 핥거든).

    고양이는 이러한 존경의 표시를
    기대할 자격이 있어.

    그렇게 하면 너도 곧 목표를 이루어
    마침내 고양이를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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