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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638)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3. 11. 1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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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아, 귀여운 우리 아가~ 엄마, 갈게. 어린이집 잘 다녀오고, 이따 밤에 만나자?"

     

    엄마가 미워요. 아침마다 그렇게 어딜 가는지. 내가 아침밥을 다 먹을 때쯤, 그러니까 아빠가 '여덟시' 라고 부르는 시간이 되면, 엄마는 가 버려요. 보통은 엄마가 사라진 후에 조금 지나면 아빠가 '봄아, 우리 이제 어린이집 가자'라고 말하는데요, 오늘은 그 전에 '병원'에 가야 한대요. 병원? 파란 옷 입은 아저씨가 제 등에다가 차가운 뭉치를 대는 곳? 아, 맞다! 거기 가면 가끔씩 팔에 뾰족한 걸 찌르는데? 아픈데?!

     

    신나게 뽀로로 그림책을 보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화장실로 저를 데리고 갔어요. 빨리 씻고 '병원'에 가야 한대요. 빨리 안 가면, 다른 아이들이 많이 와서 '1빠'로 가야 한대요. 그래야 빨리 어린이집에 갈 수 있대요. 난 '아니야!' 외치며 허리를 젖히고 발버둥을 쳐 봤지만, 소용 없었어요. 아빠는 힘이 세니까요. 근데, 아빠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요. 제가 좋아하는 물! 을 먼저 보여주고 내 얼굴에 물을 뭍혔어요. 

     

    세수하고 다시 거실로 나와 보니 쇼파 위에 엄마가 두고 간 옷이 보이네요. 저도 잘 알아요. 이젠 옷을 입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아빠가 휘리릭, 휘리릭 옷을 입혀 주는 동안, 나는 팔도 움직이고 다리도 움직이면서 도와 줬어요. 당연하죠! 내 옷을 입는데. 그런데도 아빠는 제 엉덩이를 두드리며 '아이고, 우리 딸~ 기특해. 옷 입는 거 도와 주고.'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칫, 저도 조금 있으면 두 살이라고요! 이 정도야, 뭐. 

     

    아이고... 근데 오늘은 입을 옷도 많고 두껍네요. 엄마가 제일 무서워하는 '겨울'이 와서 그런가 봐요. 요즘엔 유모차를 타면, 뭐더라...? 맞아요. 바람. 아빠가 말하는 '찬 바람'이 불어서 얼굴이 아프더라고요. 내 옷을 다 입혀주고, 아빠도 옷을 갈아입어요. 그리고 모자를 쓰고 저를 들어 올리죠. 아, 이젠 정말 갈 때가 되었나 봐요. 아빠는 신발을 신고, 나를 유모차에 앉히고, 집앞으로 나가서 빠르게 걷기 시작했어요.


    "엄~마! 아~빠! 루~피! 에~디! 멍멍멍! 안녕~"

     

    날씨는 썩 추웠지만 우리 딸내미 기분이 나쁘진 않나 보다. 유모차에 앉아 자기가 아는 단어를 외치고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 준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 빨리 가야 한다. 40분이 넘으면 병원은 도떼기 시장이 될 테니까. 그래서 거의 뛰듯이 빨리 걸었다. 문득, 아이에게 로션을 안 발라준 사실이 떠오른다. 애 엄마한테는 꼭 발라 주겠다고 말했는데... '아, 몰라. 그냥 갈래. 어떻게 모든 걸 다 챙기냐?'

     

    8시 35분. 거의 날아서 병원에 왔다. 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아과 문을 열어 보니 우리가 '1빠'였다. 아싸~ 이젠 9시까지 봄이가 쉬지 않고 뛰어다닐 테니 잘 챙겨야 한다. 어? 그런데 오늘따라 봄이가 얌전하다. 여기저기 들쑤시며 뛰어다니질 않고 타요 버스가 그려진 의자에 얌전히 앉는다. 뭔가 쌔~한 기분이 들지만, 봄이가 웃으니까 별 일 없겠지 싶어서 그냥 둔다. 그리고 옆에 앉았는데... 구수한(?) 냄새가 난다. 

     

    나: 봄아, 이 냄새 뭐야? 

    봄: (멀뚱히 나를 쳐다본다) ...

    나: 봄이 너, 똥 쌌니? (제발 '아니야! 라고 말해랏.)

    봄: (또릿또릿하게) 응! 

    나: 정말 똥 쌌어? 

    봄: (또릿또릭하게) 응! 

     

    이걸 어쩌나. 사고가 났다. 바쁘게 오느라, 무방비 상태로 왔는데... 따님이 똥님을 싸셨단다. 

     

    대안1: 진료시간까지는 15분 남았다. (너무 시간이 촉박하다.) 그냥 뭉개다가 1빠로 진료 받고 집에 들린다. 

    대안2: 간호사 선생님, 혹은 이제 하나 둘씩 들이닥치는 다른 아이들 부모에게 기저귀 하나 구걸(?)한다. 

     

    내 머리로는, 두 가지 대안 밖에 안 떠오른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기저귀를 구걸할 수는 없겠다 싶다. 사람들이 많아져서 너무 바쁘게 일하시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우리 사정을 말하기도 싫다. 그래서 첫 번째 대안을 선택했다. '뭐, 냄새도 별로 안 나네!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조금 뭉개다가 진료 끝나면 달려가자!' 그런데 이 사정을 아내에게 알렸더니... 또 다른 대안을 말해준다. 

     

    대안3: 화장실에 가서 기저귀를 제거하고 휴지로 똥을 닦아낸 후 '기저귀가 없는 채로' 옷을 입혀서 진료 받고, 곧바로 집에 간다. 

     

    역시, 우리 사모님께서는, 임기응변 뛰어난 돌봄 전문가! 잠바 주머니를 뒤져봤더니, 마침 휴대용 물티슈가 손에 잡힌다. '오케이!' 타요 버스 그림 보느라 정신 없는 봄이를 들쳐 메고 화장실로 돌진했다. 일단 바지를 내려서 기저귀를 제거했는데... 우와 많이도 쌌다! 허나. 감탄하기엔 이르다. 소변도 지려서 내복 바지가 살짝 젖었다. 나는 빠르게 물티슈로 엉덩이에 뭍은 잔변을 제거하고 일단 바지를 끌어 올렸다. 

     

    헐... 그런데, 화장실에 휴지통이 안 보인다. 똥 기저귀를 어딘가에 버려야 하는데, 버릴 곳이 없다. 시계를 보니 8시 55분. 이제 5분 후면 진료를 받고 집으로 달려가야 한다. 또다시 아이를 들쳐 안고 비상계단을 뛰어 올라 3층 화장로 향했다. 어랏? 여기도 휴지통이 없네? 그래서 한 층 더 뛰어올라 갔다. 다행히, 4층 화장실에는 휴지통이 있었다. 얼른 똥 기저귀를 뭉쳐서 버리고, 바쁘게 2층 소아과로 달려 갔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에이~ 씨발..."


    어? 어린이집이 아니라 우리집으로 왔네요? 아빠는 왜 우리집으로 왔을까요? 아빠는 나를 내려 놓고 잠시 숨을 헐떡이다가 말했어요: "봄아, 너 얼른 바지 갈아입자. 음... 오늘은 위/아래 내복을 짝짝이로 입을 수밖에 없겠다." 어휴~ 아래가 조금 축축하긴 했지만, 왜 또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빠는 제 다리를 여기저기 만져 보더니 새 기저귀를 입혀주고, 바지도 엄청나게 빨리 갈아입혀 줬어요. 

     

    그리고 다시 유모차를 탔어요. 이젠 진짜로 어린이집으로 간대요. 내 얼굴에 닿는 바람은 차갑지만, 햇님이 높이 떠서 따뜻했어요. 기분이 좋아졌는데, 갑자기 루피랑 에디랑, 뽀로로랑 생각나서 아빠한테 말해 줬어요. 내가 뽀로로와 친구들 이름을 외치면 아빠는 너무 좋아해요. 사실, 난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보고 싶어서 외치는데, 아빠는 내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요. 내가 기특하다나요. 왜요? 

     

    아,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빠에게 묻고 싶어요: "근데, 아빠 씨발이 뭐예요?"

     

    2023년 11월 10일 금요일, 이재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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