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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 일기 (D+895)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4. 7. 23. 16:42728x90반응형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D+895)
파인애플 맛 사탕
"아빠, 이거 먹어."
딸 아이가 길을 걷다 말고 사탕을 내민다. 조금 전까지 자기가 빨던 사탕인데 나더러 먹으란다. 침이 줄줄 흐르지만 얼른 받아서 입에 넣는다. 아빠를 좋아하니까 사탕도 주지 싶어서 오히려 기분이 좋다. 파인애플 맛이 입 안에 확 돈다.
"아빠, 딸기맛 사탕 줘."
으이그, 그럼 그렇지. 또 다른 사탕을 먹으려고 빨던 사탕을 내게 버렸다. 좋다가 말았다. 다른 곳을 보면서 무심하게 손만 뻗는 녀석. 꿀밤을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지만 참는다. 나는 딸에게 슈퍼 을이니까.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하니까.
딸이 태어났을 때 분만실 간호사가 딸을 안고 나에게 다가 왔다. 그리고 나에게 특정한 포즈로 서라고 주문하고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주었다. 내가 이를 보이며 웃지 않았더니 웃으라고 농담조로 핀잔했다. 하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뭐랄까, 그냥 낯설었다. 아내 배가 하늘로 높이 솟은 모습을 여러 달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 배에 손을 얹고 태교 동화를 읽어 주었다. 기적아, 기적아(태명) 부르며 교감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런데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가족은 가족인데 정은 안 붙은 가족. 지나치게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후에도 몇 달 동안은 계속 낯설었다. 아기를 안고 살짝 뜨끈한 체온을 손에 느껴도 어색했다.
어느 날 딸과 내가 단 둘이서 하루 종일 지냈다. 이 하루가 지나면서 처음으로 딸을 가깝게 느꼈다. 그날 딸은 똥파티를 벌였다. 기저귀를 갈다가 손에 똥을 뭍히니, 아이가 현실로 다가왔다. '아, 이제 나도 아빠가 되었구나.' 싶었다.
생후 4개월부터 거의 매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줬다. 비가 와도 힘들었고 눈이 와도 힘들었다. 하지만 힘들어서 정이 붙었다. 더운 여름날, 안아 달라고 보채는 딸을 안고 땀을 많이 흘리며 걸었는데 확실히 느꼈다.
'아, 내가 딸을 많이 사랑하는구나.'
최근에 어떤 지인이 아이를 낳았다고 소식을 전해 왔다. 꼭 한 마디 조언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남자는 아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느껴요. 엄마 마음에 안 들어도 아빠를 너그럽게 봐 주시고 이해해 주세요."
"아빠, 이거 먹어."
두 번째로 입에 넣어 준 딸기맛 사탕도 절반만 먹고 내게 버린다. 나는 얼른 받아서 입에 넣는다. 딸기 맛도 흐뭇하게 달콤하다. 쪽쪽쪽 빨다가 마지막엔 톡톡 깨물어서 목 너머로 삼킨다. 딸이 주는 사탕,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음... 몇 년만 지나면 사탕이 다 뭐냐, 아빠를 외면하고 친구들에게 휙, 날아가 버리겠지? 한편으로는 어서 빨리 그 날이 오길 바라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딸이 영원히 나에게 자기가 빨던 달콤한 파인애플 사탕을 버리면 좋겠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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