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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을 두괄식으로 하세요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 5. 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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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 7화 중에서>

    도재학: 교수님은 말을 두괄식으로 하세요, 두괄식으로. 수술결과부터 말씀하시라고요. 잘 됐는지, 아닌지.
    김준완: 의사는 보호자에게 수술실 안의 상황을 모두 말씀 드려야 할 의무가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다.
    도재학: 두 번만 차분하게 말씀드렸다가는 거 보호자들 다 하트 어택 와요. 어휴... 이거, 아... 보면 참 사람 마음을 몰라. 누가 사탕발린 말 하래요? 팩트를 말하되, 일단 보호자 안심부터 시켜야 할 것 아니냐구요! 

    =====

    "넌 왜 맨날 얻어 맞고 다니냐? 계집애 같이..."

    내가 왜 말이 지나치게 많은 수다장이가 되었을까? 어떤 화제를 이야기해도 꼭, 굳이, 하필이면, 장황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항을 낱낱이,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회로를 두뇌에 장착하게 되었을까?

    어머니는 이 아들이 강한 남자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무슨 대단히 고매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당신께서 살아오셨던 역사에 기초해서 본능적으로 메시지를 발송하셨던 것인데... 무지와 가난으로 인한 폭력과 학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어머니는, 17살 무렵 섬에서 도망쳐 나오시기 전까지, 그러니까 일종의 무방비 상태에서 사셨던 것 같다. 예컨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추측하긴 싫지만) 억눌린 며느리가 미쳐서 피칠갑 복수 잔치를 벌이는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나 나올 법한 딱 그런 환경에서 자라신 듯 싶다. 그러니 무의식적으로라도 아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강인한 남자로 성장하길 바라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하지만 상당히 여성적인 면이 많은 아들이었다. 나는. 그리하여 내 인생에서 가장 지긋지긋한 잔소리는: "계집애 같이..."

    요즘 같은 시대엔, 남성이 여성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종의 미덕의 반열에까지 올랐지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기는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 어릴 때부터 대책 없이 키는 컸는데 맨날 맞고 들어오니 (그것도 키가 작은 동네 형, 박홍훈 형아에게 맞아서: 내가 이름도 안 까먹는다!) 맨날 혼나기 일쑤였다. 아니, 맞고 들어와서 기본적으로 기분이 더러운데, (성차별적인) 비난을 끝없이 들어야 하느냐고! (아직도 짜증나.)

    어머니는 아들이 뭐라고 항변을 할 기회를 도무지 주지 않으셨다. (실제로는 자주 앉아 주셨겠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으셨다. "아... 나는 어머니가 원하는 아들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판타지적 사실에 직면하기가 너무나도 무서워서) 나의 목소리를 지그시, 억눌렀다. 할 말은 많았을 텐데도 그냥 참았다.

    이런 사연 때문에, 언젠가부터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 뭔가 내가 말할 기회가 생겼다, 는 생각이 들면 말을 폭포수처럼 내뱉기 시작했다. 배설. 그래, 정서적 "배설"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주어진 이 짧은 시간 안에서, 내 처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고 설명하려면, 말이 빨라야 했고, 동시에 최대한 그럴듯하게 납득시켜야 했다. 그래서 내 말은 장황하고 빨라졌다, 라고 나는 추정을 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위에 인용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대화록 중에서, 도재학의 말보다는 김준완의 말에 "이상하게" 좀 더 관심이 갔다. 그에겐 어떤 히스토리가 있을까? 나 같은 히스토리는 아닌 것 같지만, 뭔가 그럴 듯한 "사연"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삶에서 그렇다는 것 뿐. 내가 원조전문가로서 일할 때는 내 자신의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나처럼 말이 많고 수다스러운 상담자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내 이야기가 전면에 나와서 면담 분위기를 주도해서는 아니된다.

    변화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20대 중반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30대를 넘어서면서부터 상담을 배우기 시작했고, 30대 후반부터 내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으며, 최근까지는 더 깊이 더 솔직하게 쓰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내 글의 강점은 고백적인 문체와 두괄식 서술이다. 고백적인 문체는 대학생 선교단체 생활을 하면서 익혔던 문체인데 나의 조금은 수동적이었던 성격과 맞아 떨어진 부분이고, 두괄식은 나름대로 글쓰기를 공부해 오면서 알게 된 효과적인 글 전개 방식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변화는 역시, 내가 최근 수년 동안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왔다. 내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지 않고 정면을 느끼면서, 나 자신에 대한 공감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이 여파로 상담 장면에서 클라이언트의 정서와 정서적 환경에 대한 민감도가 함께 좋아졌다. 여전히 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지만, 상담 분위기를 깰 정도로 많이 하지는 않으며, 최소한, 내가 하고 싶은 말 만큼이나 상대방의 말과 그 진의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진정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니 결국에는 두괄식, 이라는 언어 형식 자체, 테크닉 자체는 덜 중요해진다. 그보다는, 도재학 선생의 말처럼, '사람 마음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이게 본질이요, 핵심이다. 나의 개인적인 스타일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맞추어서 내 언어 형식, 내용을 수정하는 태도.

    전문가는 어떤 사람인가?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하는 모든 행동을 "의도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 "알고서 하는 행동"은 필연적으로 자신에 대한 반성과 인식을 전제한다. 정확한 반성과 인식이 있어야 의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디테일에 들어가서 말이 적고 많고를 따지는 것 자체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반성과 인식을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하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그대에게도 질문하고 싶다: "전문가로서" 그대의 언어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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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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