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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쿵 포인트가 있으시네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 5. 11.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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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 3화 중에서>

    아들: 어? 근데 이거 누구야?
    부인: 아빠 수술해 준 선생님 아냐?
    아들: 누나, 오늘 선생님도 오셨어?
    딸: 응.
    부인: 언제?
    딸: 신부대기실에 1빠로 오셔서 인사하고 가셨어. 
    부인: 근데 넌 표졍이 왜 그러냐?
    딸: 같이 사진도 안 찍으시고 그냥 밥만 먹고 가셨어.
    아들: 에이, 오신 게 어디야?
    딸: 식사 뭐냐고 해서 갈비탕이라니까, 신나 가지고 바로 지하 식당으로 가셨다니깐. 결혼식 오신 게 아니고 저녁 드시러 오셨어.
    부인: 갈비탕이 뭐야, 엄마는 갈비라도 사 주고 싶은데.
    딸: 어차피 줘도 안 받으셔. 교수님들은 그런 거 못 받아.
    아들: 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심쿵 포인트가 있으시네.

     

    =====

    2014년. 한 줌도 채 안되던 내 모든 인간 관계가 공중에서 한 순간에 분해되어 낱낱이 낙하하는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다. 어떤 이는 내가 떠나 보냈고, 어떤 이는 스스로 나를 떠났다. 나는 가끔씩 사람들이 남기고 간 뼛조각 일부를 영혼에 품고 심장으로 눈물을 흘리며,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절감했다.

    남들에게는 매우 일상으로 보이는 관계가 나에게는 대단한 사치였다. 좋은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가볍게 산책하면서 일상을 나누고, 서로 마주 보고 미소 짓고... 다음 문장은 당시 내 생활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문장이지만 완전히 사실이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겨우 풀만 뜯어 먹으면서 단검을 갈았습니다." 

    2019년. 좀비 같이 살던 시대를 끝내고 마음 속 깊은 장롱에서 손가락을 떨면서 관계라는 씨앗을 하나씩 둘씩 다시 꺼내어서 페허 위에 다시 심기 시작했다. 적잖게 두려웠다. 씨앗이란, 그 안에 생명과 성장, 그리고 풍요로움을 담고 있는 상징이었지만, 왠지 아무런 열매도 나지 않을 것 같다는 공허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 길고도 외로운 시간 중에 내가 생각한 것: 진심은 겉으로 보이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 이면에 숨겨져 있다.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쌓아 나가는 것은 기나긴 과정이다. 앞으로 내가 산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만약 산산이 부서진 내 인간 관계가 복원된다면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길 바라는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김준완은 '싸가지가 없는'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은 여기 저기에 "심쿵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는 츤데레 캐릭터이다. 가만 보면, 그가 메스로 사람들의 가슴을 열고 심장을 꺼내거나 바꾸는 작업을 하는 흉부외과 전문의라는 사실은 대단히 역설적으로 상징적인 것 같다. 그는 결국 심장에 뭔가 작업을 하는(심쿵) 사람이다.

    최근에 어떤 벗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길고 얇게 가고 싶어요. 단기간에 막 친해지고 그러지 말고 늘 옆에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고 잔잔하게 우리 관계를 가져가고 싶어요." 나는 무릎을 쳤다. 그가 인간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다: 냄비 같은 사람보다는 온돌 같은 사람이 되자.

    현재 스코어: 과거에 잃어버린 인연과 관계를 모두 되돌리거나 복원할 순 없겠지만, 벽돌을 하나씩 쌓아가는 심정으로 다시 만들어 가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서, 어느 때고 심장에 쿵, 하고 충격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굴 속에서 풀 뜯어 먹으며 다짐했던 바를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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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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