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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가 쏙쏙 되네요
    카테고리 없음 2021. 7. 4.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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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명태 교수 외래 진료실>

    환자 가족: 남편이 요새 자꾸 밤에 다리가 저리다고...
    천명태: (귀찮다는 듯이) 그런 거는 심장하고 상관이 없구요. 궁금한 거 없으시죠?
    환자, 환자 가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김준완 교수 외래 진료실>

     

    김준완: 어, 김수인님 수술 전 엑스레이 자료부터 제가 쭉 리뷰를 했는데요, 오늘 엑스 레이도 좋고, 피 검사 결과도 좋고, 심전도도 정상입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쪽이 수술 전, 이쪽이 이번에 찍으신 건데, 까만 게 폐, 하얀 게 심장인데요, 수술 전에는 우심방 우심실이 늘어나면서 이렇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전문가가 아닌 눈으로 보시기에도 확실히 심장 사이즈가 줄었죠?
    환자: 네, 제가 봐도 좋아졌네요.
    김준완: 다른 별일은 없으셨어요? 지난 달 저 보시고 나서?
    환자: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 일어서면 핑~ 하고 어지러워요.
    김준완: 종종 그러세요?
    환자: 아뇨, 그렇진 않고 가끔씩?
    김준완: 수술하고 나면 그러신 분들이 계시는데,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세요.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누워 있을 땐 심장이란 뇌랑 같은 레벨이거든요. 같은 높이에 위치하는데, 딱 일어나는 순간 뇌가 심장보다 몇십 센티미터 높아지잖아요? 높아지는 순간 혈관은 수축을 해야 해요. 왜 우리가 화단에 멀리 있는 곳에 물 줄 때, 호스 끝을 조이면 멀리 가잖아요? 같은 원리로 혈관이 수축하면서 뇌까지 피를 보내 줘야 하는데, 수축이 잘 안돼서, 피가 바로 가지 않아서 어지럽게 느껴질 수가 있어요.
    환자 가족: 이해가 쏙쏙 되네요.
    김준완: 수술하고 쓰는 이뇨제나 혈압 강화제 같은 약 때문에 일시적으로 조화가 안 이뤄질 수 있어요. 이럴 땐 굳이, 나 오늘 좋아졌나? 나빠졌나? 실험해 보지 마시고, 일어서실 때 항상 천천히, 천천히 일어나시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아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제 3화 중에서>


    단순한 장면이다. 같은 흉부외과 교수라도, 시종일관 불친절한 천명태 교수는 환자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안해 주고,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책임감 강하고 친절한 김준완 교수는 세심하게 설명해 준다. 말하자면, 의사의 품성과 성격이 초점 같다. 이 장면을 시청한 많은 원조전문가가 비슷하게 느꼈을 것 같다. 아마도 '남을 돕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같은 생각을 했을 터이다. 따뜻한 의사 마음이 전해지면서 그대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따뜻해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의료가부장주의(Medical Paternalism).

    가부장주의는 남성이 절대적인 권위와 권력을 가지고 가족 안에서 (더 나아가 모든 사회 구조 안에서) 통제권을 독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념을 일컫는 말이고, 의료가부장주의는 의사가 가부장처럼 환자를 치료하는 모든 과정에서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의료가부장주의에 따르면, 의사가 내린 의학적 판단이 환자에게 최선이고, 의사는 결코 환자를 나쁘게 하지 않으므로 환자는 의사의 결정과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

    2015년에 에릭 토폴이 쓴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 환자 중심의 미래 의료 보고서" 중에서 한 대목을 인용하겠다:

    “의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여러 가지 질병의 이해에 길이 남을 공헌을 하였고, 의학에서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그는 또한 질병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 환경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이해하였다. (생략) 하지만 그는 의학의 아버지이면서 또한 의료가부장주의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를 가감 없이 그대로 표현하였으며 의사는 “환자가 앞으로 처하게 될 상태나 현재의 상태”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내용을 환자로부터 숨겨야 한다고 적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약 조제법은 환자들이 알지 못하게 비밀에 부쳐야 하며, 이러한 지식은 의사들만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업윤리 규정의 전형인 그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계율과 구두 지시, 그리고 다른 모든 배움을 내 아들과 나를 가르쳐 준 스승의 아들, 그리고 의학의 법률에 따라 맹세를 하고 계약을 맺은 학생들과는 함께 나누되 그 외의 사람들과 나누지는 않는다.” 쿠르츠(Kurtz)는 자신의 글 “고지에 입각한 동의의 법칙(The Law of Informed Consent)”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환자의 치료와 관련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 로버트 비치(Robert Veatch)는 《환자여, 스스로 치유하라(Patient, Heal Thyself)》에서 이것을 두고 “환자를 이롭게 한다는 히포크라테스식 가부장주의 원리”라며 혹독하게 비난했다. 즉, 환자에게 진실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권리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뉴 리퍼블릭(New Republic)>은 비치의 책을 리뷰하면서 한발 더 나아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비판한다. “오늘날까지도 숭배되며 암송되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분명 가부장주의의 빌미를 제공해 주고 있다. 물론 치유자가 환자에게 없는 지식과 기술을 항상 소유하고 있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이러한 태도는 그 전부터 이미 고양되고 있었고, 현재까지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의대생들은 오늘날에도 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암송하고 있다.


    전문가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너는 모르고 나는 안다'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전문가로 대접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는 모르는 배타적인 지식/경험 체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배타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전문가'라고 부르면서 사회적인 지위와 권한을 부여해 왔다. 한 마디로, 어떤 사람이 가진 전문성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우리는 그들의 발밑으로 내려가게 된다. 어쩌면, 바로 이런 맥락 때문에 우리가 김준완 교수에게 감동했을 수 있다.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 봐도 되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분께서, 스스로 우리 옆으로 내려와서 자세하고 자상하게 설명을 해 주니, 어찌 감동을 받지 않으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환자는 소비자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도 있는데, 의료 서비스를 구매하는 환자가 '왕대접' 받는, 어쩌면 당연한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결론을 말하자면, 김준완이 보여주는 온정어린 의사 모습은, 개인적인 성품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한계가 있다. 솔직히 답해 보라. 우리 모두 이 장면을 보면서 '아! 참 멋있긴 한데... 저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저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율제병원이라도 가야만 저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질문하지 않았나? 의사의 권한이 절대적인 구도 속에서는, 치료비를 받은 서비스 제공자로서 의사가 환자에게 당연히 베풀어야 할 친절함도, 환자 편에서 가슴 뭉클해 하면서 감사해야 할 일이 되어 버린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김준완 교수가 보여준 가슴 뭉클한 친절함 그 자체가 가진 가치를 폄훼하거나 깎아 내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사업가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우리가 직업적으로 당연히 베풀어야 할 친절을, 스트레스로 느끼고 있지는 않나? 우리 서비스를 받는 주민/이용인/거주인께서 우리가 베푸는 친절함에 관해 당연히 가슴 뭉클해 하면서 감사해야 한다고 느끼지는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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