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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se Study #02] 나는 어떻게 글을 쓰나?
    카테고리 없음 2023. 9. 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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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582)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저기 어때? 오늘 가 볼까?”
    “그럴까? 반응이 없으면?”
    “아냐, 반응이 올 거야.”
    “오늘, 봄이에게 신세계가 열리는구나!”

    붕붕이(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와요. 근데, 엄마랑 아빠가 대화를 나눠요. 날 데리고 또 어딜 가려나 봐요. 너무 어려운 말을 써서 전부 알아 듣진 못했어요. 그래도 느낄 수 있어요. 옷 가게? 장난감 가게? 어디 가요, 우리?

    길가에 붕붕이를 세웠어요. 다 왔나 봐요. 물(비)이 와요. 우산을 쓰고 들어가요. 언니, 오빠(어른들)가 많아요. 뭐가 재밌는지 시끄럽게 이야기해요. 우리도 자리에 앉아요. 아빠가 웃어요. 엄마도 웃어요. 뭘 먹을 거래요.

    “당신은 뭐 먹을래?”
    “자장면 먹어야지. 봄이랑 함께 먹을게요.”
    “난, 새우볶음밥!”
    “봄아~ 자장면 먹자!”

    음… 엄마가 왜 웃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자장면’이 뭘까요? 어떤 오빠(웨이터)가 우리에게 와요. 엄마가 자장면이랑 새우볶음밥을 달라고 웃으며 말해요. 오빠(웨이터)가 절 보고 빙긋 웃길래, 저도 따라서 웃었어요.

    파랑색 아기 의자에 앉았어요. 조금 불편한데, 그냥 앉았어요. 이런 데 오면 여길 앉아야 한대요. ‘안전’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대요. 난 일어서서 놀고 싶은데… 그러면 아빠가 소리를 질러서 안 되겠어요.

    “나왔다! 자장면!”
    “잠깐만, 잠깐만~”
    “봄아, 먹어 봐. 자장면이야.”
    “먹, 먹네? (찰칵!)”

    아빠가 사진을 찍으며 눈물(?)을 글썽여요. 맛이 어떠냐고 물어요. 맛이요? 글쎄요… 달아요. 조금 끈적한 국수인데, 달아요. 그래서 계속 먹어요. 엄마가 숟가락에 담아 줘서 먹어요. 달콤한 이 느낌… 너무 좋아요.

    진짜로 집에 돌아오는 길, 아빠가 말해요. “봄아, 아빠는 자장면 속에서 살 수 있을 정도로 자장면이 좋아. 우리 봄이도 자장면 좋지?” 국수 속에서 산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좋아요. 자장면, 저도 좋아요.

    봄이가 처음으로 자장면 먹은 날,
    2023년 9월 14일, 봄이 아빠 씀.


    <글을 쓴 과정 분석>

     

    우리 딸은 2살이 채 안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9개월 차. 아직 너무 어려서, 간이 들어간 음식은 피한다. 얼마 전 발달 검진 받을 때, 소아과 의사 선생님께서도 간이 들어간 음식은 가급적 피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딸 아이 '미각 세계(?)'는 아직 무채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음식을 먹을 때 배가 고프니까 먹지, 맛을 음미하면서 먹지 않는다. 이런 무채색 세계에 맛이 들어온다면? 어쩌면 귀에서 종(!)이 울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첫 맛을, 자장면에서 느낀다면? 

     

    며칠 전, 아내를 픽업하러 사무실에 들렀을 때,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묻는다. "오늘, 외식하죠. 오빤, 뭐 먹고 싶어요?" 내가 답했다. "글쎄... 딱히... 자장면 먹을까?" "린찐(집 근처에서 자주 가는 단골집)에서? 그러면, 우리 봄이는 뭘 먹이지?" 역시, 엄마는 엄마다. 딸 아이 먹을 종목을 우선 생각한다. "아, 그렇지... 그럼 딴 거 먹자." "아냐, 오빠. 오늘은 자장면 먹여 보자." "어? 자장면 먹여도 될까?" "얼마 전에 먹였을 땐, 안 먹었는데~ 오늘 한 번 먹여 보자고." "그래, 좋아!"

     

    생애 처음으로 자장면 먹은 날.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된다. 왜? 이 글감을 면밀하게 평가해 보자. (불특정 다수) 독자에게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친숙하지 않다. 내가 무엇을 먹든, 독자가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자장면 먹는 이야기라면 사정이 다르다. 자고로 자장면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울 푸드' 아니던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 아니던가. 한 마디로, 보편적인 이야기다. 그렇다면, '딸 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자장면 먹은 날 이야기'는 독자에게는 '모르는 사람의 아는 이야기'가 된다. 

     

    썩 괜찮은 글감을 찾았으니, 이 '글감에 관한 핵심 생각(주제)'을 정리할 차례. 그런데 '생애 처음으로 자장면 먹은 날' 글감은 '특별한 날이다' 이상으로 핵심 생각을 풍부하게 봅아내서 쓰기가 어렵다. 글을 쓰다 보면, 글감이 곧 주제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딸 아이가 자장면을 처음 먹은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면 그 자체로 주제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리라 판단했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순간을 얼마나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느냐'가 관건. 

     

    이 내용을 누구 시점으로 쓸까? 글감을 떠올린 순간부터 딸 시점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장면 먹은 경험이 아니라, 딸이 먹은 경험을 쓰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딸은 아직 말을 하지 못한다(대략 10단어 정도를 구사하는 수준). 생애 처음으로 자장면을 먹은 그 특별한 느낌을 말로 물어볼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관찰한 딸 아이 표정을 기반으로 써야 한다. 다행히, 나는 '자장면 성애자'다. 따라서, 딸 아이 마음에 빙의해서 자장면에 대한 감상을 생생하게 쓰면 된다. 

     

    어떤 장면에서 시작해야 할까? 첫 부분부터 자장면 이야기를 꺼내면 재미가 반감되리라. 독자가 이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 무슨 이야기지?'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차피, 중반 이후가 되면 글감이 드러날 테니까. 그래서 '엄마-아빠 대화록'으로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일 저녁, 딸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한 후, 아내가 일하는 기관으로 가서 아내를 픽업했다. 집으로 가서 밥을 먹을 수도 있지만, 아내가 외식하자고 제안한다. 무엇을 먹을까. 바로, 자장면! 


    “저기 어때? 오늘 가 볼까?”
    “그럴까? 반응이 없으면?”
    “아냐, 반응이 올 거야.”
    “오늘, 봄이에게 신세계가 열리는구나!”


    나쁘지 않다. 다음으로는 두 순간을 선택하고 문장을 두 개 썼다. (1) 붕붕이(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와요. (2) 길가에 붕붕이를 세웠어요. 그리고 후속 문장을 써서 이야기 덩어리를 두 개 만들었다.


     

    “저기 어때? 오늘 가 볼까?”
    “그럴까? 반응이 없으면?”
    “아냐, 반응이 올 거야.”
    “오늘, 봄이에게 신세계가 열리는구나!”

     

    붕붕이(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와요. 근데, 엄마랑 아빠가 대화를 나눠요. 날 데리고 또 어딜 가려나 봐요. 너무 어려운 말을 써서 전부 알아 듣진 못했어요. 그래도 느낄 수 있어요. 옷 가게? 장난감 가게? 어디 가요, 우리? 

    길가에 붕붕이를 세웠어요. 다 왔나 봐요. 물(비)이 와요. 우산을 쓰고 들어가요. 언니, 오빠(어른들)가 많아요. 뭐가 재밌는지 시끄럽게 이야기해요. 우리도 자리에 앉아요. 아빠가 웃어요. 엄마도 웃어요. 뭘 먹을 거래요.


    이 정도 쓰게 되면, 패턴이 생긴다: '짧은 대화록 + 상황을 묘사하는 두 단락'. 이 패턴을 활용해서, 뒷 부분을 이어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장면에서는 우리 세 식구가 자동차를 타고 중국집까지 가는 내용으로 채웠으니, 두 번째 장면에서는 중국집에 도착해서 음식을 시키는 내용을 쓰면 되고, 마지막 세 번째 장면에서는 절정 부분으로 자장면 맛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각 대목마다 '짧은 대화록'을 먼저 제시해서 리듬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당신은 뭐 먹을래?”
    “자장면 먹어야지. 봄이랑 함께 먹을게요.” 
    “난, 새우볶음밥!” 
    “봄아~ 자장면 먹자!” 

    음… 엄마가 왜 웃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자장면’이 뭘까요? 어떤 오빠(웨이터)가 우리에게 와요. 엄마가 자장면이랑 새우볶음밥을 달라고 웃으며 말해요. 오빠(웨이터)가 절 보고 빙긋 웃길래, 저도 따라서 웃었어요. 

    파랑색 아기 의자에 앉았어요. 조금 불편한데, 그냥 앉았어요. 이런 데 오면 여길 앉아야 한대요. ‘안전’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대요. 난 일어서서 놀고 싶은데… 그러면 아빠가 소리를 질러서 안 되겠어요. 

    “나왔다! 자장면!” 
    “잠깐만, 잠깐만~”
    “봄아, 먹어 봐. 자장면이야.”
    “먹, 먹네? (찰칵!)” 

    아빠가 사진을 찍으며 눈물(?)을 글썽여요. 맛이 어떠냐고 물어요. 맛이요? 글쎄요… 달아요. 조금 끈적한 국수인데, 달아요. 그래서 계속 먹어요. 엄마가 숟가락에 담아 줘서 먹어요. 달콤한 이 느낌… 너무 좋아요. 

    진짜로 집에 돌아오는 길, 아빠가 말해요. “봄아, 아빠는 자장면 속에서 살 수 있을 정도로 자장면이 좋아. 우리 봄이도 자장면 좋지?” 국수 속에서 산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좋아요. 자장면, 저도 좋아요.


    꽤 근사하게 내용을 채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세상살이 19개월 차인 우리 딸 시점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어야 했다. 결국, 문장과 문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문장은 가급적 짧아야 하고, 문체는 순수하게 느껴져야 했다(딸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인과 관념이 희박하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문장을 써 보고 어미도 다양하게 고쳐 보면서('-했어여' vs '-했어요') 이 글에 맞는 톤을 찾았다. (최종 결과물은 상당히 짧지만, 퇴고 과정에서 굉장히 다양하게 실험해 보았다.)


    [글 쓰는 과정을 해부하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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