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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01] 나는 어떻게 글을 쓰나?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3. 31. 12:18728x90반응형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415)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나는 딸기를 많이 좋아한다. ‘환장한다’고 말해야 할 정도다. ‘환장’이 무슨 뜻인가? 한자어다. 換腸(환장). 원래 형태는 換心腸(환심장)이란다. 換이 ‘바뀐다’는 뜻이니까, 심장이 바뀔 정도로, 말하자면 심장이 꼬일 정도로 정신 못 차리게 뭔가를 좋아한다는 뜻이 된다.
어릴 적 우리집은 가난했다. 그래서 그토록 좋아하는 딸기를 마음껏 먹어 본 적이 없다. 늘 싸구려 떠리를 사 오신 어머니. 그마저도 없어서 못 먹었다. 식구가 많으니 잠시만 긴장을 늦추면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딸기를 대단히 빨리 먹는(?) 생존 기술을 익혔다.
나는 숨을 안 쉬고 물을 마시듯 벌컥벌컥 딸기를 먹는다. 마치, 포도를 빨리, 많이 먹기 위해 씨를 안 씹고 대충 우물거리고 삼키는 방법과 같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딸기 꼭지, 아무런 맛도 없는, 그래서 반드시 떼고 먹는 그 부위까지 그냥 삼키면서 먹고 싶을 정도라고나 할까.
딸기는 그냥 통째로 씹어서 먹어도 좋고, 잘게 잘라서 아껴 먹어도 좋으며, 믹서기에 윙~ 갈아서 마셔도 좋다. 그래, 먹는 방법은 과히 중요치 않다. 입에만 들어가면 된다. 그러면 입에서 살살 녹으니까. 살살 녹으면서 목 뒤로 스리슬쩍 넘어가니까. 그러면 나는 행복해지니까.
나는 딸기를 포기해 본 적이 없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 인생 전체를 두고 생각해 봤는데도 없다. No! 아무렴, 그럴 리가 없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관심 없다. 딸기가 보이면 무조건 직진이다. 닥치고 돌진해서 먹어치우고 만다. 배려 따윈 없고 남기지도 않는다. 꿀꺽!
그런데 내가 달라졌다. 숨도 안 쉬고 딸기를 먹던 내가, 엄머니께서 누나들 준다고 몰래 숨겨 놓으셨던 딸기까지 귀신같이 찾아내서 먹어치우던 내가, 그리하여 신나게 매를 맞으면서도 빙그레 웃던 내가, 딸기 앞에서는 이성을 예외없이 잃던 내가, 딸기를 포기했다. 여자 때문에.
나를 꼭 닮은 그 여자. 내 딸 봄이다. 녀석이 하필이면 딸기를 좋아하는, (아니 환장하게 좋아하는) 내 식성을 닮아버렸다. X발. 아냐, 딸이라도 상관없어, 나는 여전히 딸기 앞으로 돌진한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다만 한 조각이라도 더 먹이려고, 녀석에게 바치고 있다.
딸기보다 좋은 대상은 오로지 아내 뿐이라고 철썩같이 믿으며 살았는데, 내가 틀렸다. 틀려도 완전히 틀렸다. 아, 멘탈이 무너진다. 48년간 견고하게 쌓아온 일편단심 딸기 사랑이 허망하게 사라지다니. 겨우 딸 때문에. 여기까지 생각했는데 따님께서 딸기를 달라고 손짓하셨다.
“아이고, 우리 예쁜 봄이~ 딸기가 먹고 싶다고? 그래, 아빠가 줄 꼬얌. 자, 아~ 입 벌려. 딸기가 들어간다, 입으로 들어간다아아~ 그렇지! 아이고 잘 먹네! (엉덩이를 토닥이며) 우리 딸 쵝오! 짱짱짱! 자, 또 먹자. 입 벌리세요~ 딸기가 들어간다, 입으로 들어간다아아~ 그렇지이!”
<글을 쓴 과정 분석>
글을 쓰는 방식은 결국 두 가지로 떨어진다고 본다. 첫째, 구체적인 경험에서 출발해서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둘째, 추상적인 의미를 마음 속에 품은 채 살아가다가, 이 의미에 들어맞는 경험을 발견하고 골라 내는 방식. 이를 각각 귀납적 방식과 연역적 방식이라고 칭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디에서 출발하든지 경험과 의미를 연결해야 하므로, '어느 것이 먼저(중요하)냐?' 질문은 크게 의미가 없다. 경험도 있어야 하고, 의미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잘 연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나는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415)'를 어떻게 썼을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해 보자면, 어떻게 글감을 찾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글감을 주제로 정리했으며, 어떻게 글 구조를 짜고, 어떻게 집필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는 글을 쓰고 공유하면, 내가 직접적으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학생과 내 글을 읽는 보통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글쓰기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이런 취지로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떠올린 여러 질문에 가급적이면 꼼꼼하게 답해 보려고 한다.
먼저 출발부터. 평소처럼 아침에 딸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다. 보통, 아이 식단은 잡곡밥, 고깃국, 과일, 이렇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과일은 거의 매일 먹이는데, 이날은 딸기가 냉장고에 있었다. 어젯밤에 시장에서 사 온 고급 딸기. 제철 과일인데도, 양이 적은데도(작은 바구니 하나) 비싸서(2만원) 놀랐다. '조금 싼 놈을 사야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샀다. 우리 부부도 먹겠지만 아이도 먹여야 하니 그냥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딸기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잘게 자른 후에 아이 식판에 담았다.
딸 아이는 이제 갓 돌이 지났다. 아직은 말을 못해서 또렷하게 말하는 '엄마'나 '아빠' 외에는 손가락질과 '응응' 소리로 의사소통한다. 식판에 담긴 딸기 조각을 가리키며 '응응'거린다. 아마도 '먹고 싶으니 빨리 대령하라'는 뜻이리라. 그래서 포크로 한 두 조각을 찍어서 입에 가져간다. 보통은 얌얌, 잘도 받아 먹지만, 종종 먹는 척하다가 혀를 내밀면서 '몹시 더러운 방식으로' 뱉어 버린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이 녀석아~ 이게 얼마나 비싼데...' 얼른 주어서 입에 다시 넣어 주는데, 또 뱉어 버린다.
이 순간, 휴대전화를 들어서 사진을 찍었다. 뭔가 글로 옮기면 좋을 법한 영감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마른 나뭇잎에 불똥이 튀면 연기가 나고 순식간에 산불이 나듯이, 내 머릿속에 산불이 난 상태. 이 산불을 제대로 다루려면, 일단 사진부터 찍어야했다. 나와 딸기, 딸기와 딸, 나와 딸. 이 관계를 사진으로 잘 보여주려면 한 프레임 안에 딸 모습과 내가 잘라서 식판에 놓은 딸기가 동시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경에 놓인 딸기에 초점을 맞추고 딸은 배경에서 날리는 사진을 찍었다.
다음 순간, 나는 본론에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고민했다. 우리가 글을 읽을 때는 서론을 제밀 먼저 만나고, 그 다음엔 본론을 만나며, 마지막으로 결론을 만난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서론보다 본론을 먼저 써야 한다. 내가 쓰고 싶은 핵심 생각이 본론에 나오기 때문이다. 서론은 본론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글감을 가볍게 소개하는 부분일 뿐이다. 그리고 결론은 본론에 쓴 핵심 생각을 강조하거나 재확인하는 부분에 불과하다. 우리가 본론을 뚜렷하게 쓴다면, 서론과 결론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 고민한 본론. 곰곰 생각해 보니, 무척 정성스럽게 딸기를 먹였는데 딸 아이가 뱉어버린 순간, 내가 딸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분명하게 다시 느꼈다. 나는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과일을 특별히 좋아한다. 딸기, 포도, 파인애플. 내가 좋아하는 과일 삼총사다. 이 삼총사는 없어서 못 먹을 정도. 나에겐 피같이(!) 소중한 존재. 헌데, 이 귀한 딸기를 뱉어버리다니! 몹시 괘씸했다. 그리고 분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 놀랐다. 나 자신을 보고 무척이나 놀랐다.
딸 아이가 태어난 후에, 몇 번 정도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아이와 온전히 함께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 날. 너무 힘들었지만, 딸과 나 사이에 정이 붙었다고 느꼈다. 부녀지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애착이 내 마음에도 생겼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 또 절감했다. 내가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꼈다. 딸기는 그냥 과일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초보 아빠로서 딸 아이에게 느낀 애정을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상징물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글을 써도 되겠다고 느꼈다. 내가 정리한 본론은 '나는 딸 아이를 무척 사랑한다'였다. 그리고 이 본론을 예비하는 서론에는 내가 딸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다소 과장스럽고 익살스럽게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냥 정직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나는 딸기를 환장하게 좋아한다' 이 문장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괜찮은데... 환장? 넝확하게 무슨 뜻이지? 첫 문장을 '나는 딸기를 많이 좋아한다'고 바꾸고 환장을 뒤로 빼서 상술했다.
나는 딸기를 많이 좋아한다. ‘환장한다’고 말해야 할 정도다. ‘환장’이 무슨 뜻인가? 한자어다. 換腸(환장). 원래 형태는 換心腸(환심장)이란다. 換이 ‘바뀐다’는 뜻이니까, 심장이 바뀔 정도로, 말하자면 심장이 꼬일 정도로 정신 못 차리게 뭔가를 좋아한다는 뜻이 된다.
그 다음에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딸기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이 떠올랐다. 원래, 새콤달콤 과일을 좋아한다고 썼지만, 이런 기본 성향을 더욱 강화시킨 요인이 생각났다. 정말로 좋아해서 많이 먹고 싶었는데 원없이 먹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그래 맞아. 늘 부족했지. 식구가 많으니 많이 사 와도 부족했지. 자연스럽게 내가 익힌 기술이 떠올랐다. 그래, 이 이야기를 쓰면 내가 얼마나 딸기를 좋아하는지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겠어: 나는 딸기를 거의 물 마시듯 엄청나게 빨리, 쉽게 흡입한다.
어릴 적 우리집은 가난했다. 그래서 그토록 좋아하는 딸기를 마음껏 먹어 본 적이 없다. 늘 싸구려 떠리를 사 오신 어머니. 그마저도 없어서 못 먹었다. 식구가 많으니 잠시만 긴장을 늦추면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딸기를 대단히 빨리 먹는(?) 생존 기술을 익혔다.
나는 숨을 안 쉬고 물을 마시듯 벌컥벌컥 딸기를 먹는다. 마치, 포도를 빨리, 많이 먹기 위해 씨를 안 씹고 대충 우물거리고 삼키는 방법과 같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딸기 꼭지, 아무런 맛도 없는, 그래서 반드시 떼고 먹는 그 부위까지 그냥 삼키면서 먹고 싶을 정도라고나 할까.이 대목에서, 약간 사족 같아도 내가 얼마나 딸기를 좋아하는지 한 단락만 더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먹는 속도에 대해서 썼으니, 여기에서는 먹는 방법에 대해서 열거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쓰고 나서) 아니지. 진정한 딸기광에게 먹는 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지. 딸기를 먹으면서 느끼는 포만감과 행복감이 중요하지. 입에서 살살살 씹어서 목 뒤로 부드럽게 넘기는 그 느낌이 중요하지. 여기까지 쓰고 난 후에, 나는 절대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딸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쓴다면 썩 재미있겠다.
딸기는 그냥 통째로 씹어서 먹어도 좋고, 잘게 잘라서 아껴 먹어도 좋으며, 믹서기에 윙~ 갈아서 마셔도 좋다. 그래, 먹는 방법은 과히 중요치 않다. 입에만 들어가면 된다. 그러면 입에서 살살 녹으니까. 살살 녹으면서 목 뒤로 스리슬쩍 넘어가니까. 그러면 나는 행복해지니까.
나는 딸기를 포기해 본 적이 없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 인생 전체를 두고 생각해 봤는데도 없다. No! 아무렴, 그럴 리가 없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관심 없다. 딸기가 보이면 무조건 직진이다. 닥치고 돌진해서 먹어치우고 만다. 배려 따윈 없고 남기지도 않는다. 꿀꺽!서론을 어느 정도 썼으니, 본론으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본론 내용은? (1) 전환: 이렇게나 딸기를 좋아하던 내가 달라졌다. (2) 이유 제시: 내가 딸기를 포기하게 된 이유는 딸이다. 우선, 첫 번째 대목에서는 간단하게 '그런데 내가 달라졌다' 라고 쓰고, 이전에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보여주는 몇 가지 사실을 열거하면 더 또렷하게 핵심 생각을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번째 대목에서는 딸이 내 식성을 닮았다고 쓰면서 이 기구한 운명(?)에 욕을 바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달라졌다. 숨도 안 쉬고 딸기를 먹던 내가, 엄머니께서 누나들 준다고 몰래 숨겨 놓으셨던 딸기까지 귀신같이 찾아내서 먹어치우던 내가, 그리하여 신나게 매를 맞으면서도 빙그레 웃던 내가, 딸기 앞에서는 이성을 예외없이 잃던 내가, 딸기를 포기했다. 여자 때문에.
나를 꼭 닮은 그 여자. 내 딸 봄이다. 녀석이 하필이면 딸기를 좋아하는, (아니 환장하게 좋아하는) 내 식성을 닮아버렸다. X발. 아냐, 딸이라도 상관없어, 나는 여전히 딸기 앞으로 돌진한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다만 한 조각이라도 더 먹이려고, 녀석에게 바치고 있다.이제 마지막 결론. 익살스럽게 쓰겠다는 계획대로 쓰고 싶었다. 어떻게? 내가 딸기에 대한 온갖 기억과 생각을 떠올리고 있던 중에, 딸이 딸기를 하나만 더 달라고 손짓한다. (실제로 그랬다.) 그러면, 나는 딸기를 빼앗기면서 억울해 하던 모습을 순간적으로 내려 놓고, 혀 짧은 소리를 내며 곧바로 딸에게 딸기를 먹인다. (실제로 그랬다.) 그래, 이렇게 쓰면 유쾌하면서도 재미있게 글을 끝맺을 수 있겠다! 그리고 다시 딸기를 먹이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끝낸다면, 만족스럽게 끝맺을 수 있겠다. 과연.
딸기보다 좋은 대상은 오로지 아내 뿐이라고 철썩같이 믿으며 살았는데, 내가 틀렸다. 틀려도 완전히 틀렸다. 아, 멘탈이 무너진다. 48년간 견고하게 쌓아온 일편단심 딸기 사랑이 허망하게 사라지다니. 겨우 딸 때문에. 여기까지 생각했는데 따님께서 딸기를 달라고 손짓하셨다.
“아이고, 우리 예쁜 봄이~ 딸기가 먹고 싶다고? 그래, 아빠가 줄 꼬얌. 자, 아~ 입 벌려. 딸기가 들어간다, 입으로 들어간다아아~ 그렇지! 아이고 잘 먹네! (엉덩이를 토닥이며) 우리 딸 쵝오! 짱짱짱! 자, 또 먹자. 입 벌리세요~ 딸기가 들어간다, 입으로 들어간다아아~ 그렇지이!”글을 많이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낀다. 어떤 때는 내가 글을 쓰고, 어떤 때는 글이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쓸 때 전체 구조는 거의 언제나 미리 짜고 들어가지만, 빈 구석을 모두 채우지는 않는다. 어떤 순간에는 즉흥적으로 좋은 발상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그동안 써 온 내용이 또 다른 내용을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잘 쓴다는 말은 자신이 쓰는 글을 전반적으로 많이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종종 그 통제력을 내려 놓고 글이 글을 쓰도록 놓아 둔다는 뜻도 된다.
(두괄식) 단락 수준에서 정리해서 말하자면, 나는 단락 앞에 나오는 소주제문까지는 대략 미리 설계를 한다. 그리고 소주제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전개하는 순서도 대략 예상한다. 하지만 사전 예측 및 설계는 여기까지만 한다. 나머지 구체적인 내용은 쓰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로 채운다. 그러면 글이 알아서 글을 쓴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글을 압도적으로 많이 쓰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그냥 할 수 있었다. 필력이란 의도와 즉흥이 만나는 춤이라고나 할까.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415)'를 쓴 과정을 요약해 본다. (1) 딸에게 딸기를 먹이고 있었다. (구체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 (2) 내가 얼마나 딸기를 좋아했는지 깨달았다. (3) 이 경험을 기초로 글을 두 덩어리로 나누어 설계했다: (전반부) 내가 얼마나 딸기를 좋아하는가 + (후반부) 나는 딸을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 (4) 각 단락을 쓸 때마다 내 경험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소주제문을 썼다. (5) 그리고 글이 글을 쓰도록 놓아 두었다. (6)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밸런스를 생각하며 퇴고했다.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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