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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인성을 꼬셔라?!
    지식 공유하기(해결중심모델)/해결중심 고급 테크닉 2023. 9. 21.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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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김두식(조인성): (구룡포와 함께 안기부 건물로 들어간다.)  

    민차장(문성근): (나레이션) 눈치채지 않게 가까워져야 하네. 상황을 만들어. 모든 게 자연스러워야 하네. 그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자네 재량에 달렸어.

    이미현(한효주): (잰걸음으로 서류 뭉치를 들고 걸어가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김두식, 구룡포 옆을 슬쩍 스쳐 지나간다.)

     

    [장면 #2] 

    김두식: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커피 자판기 앞에 선 이미현을 보고 걸어간다.) 

    이미현: (김두식이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자리를 뜬다.) 

    김두식: (이미현이 자리를 뜨자, 자판기로 가지 않고 돌아선다.) 

    구룡포(류승룡): 뭡니까?

    김두식: 응, 커피 한 잔 마시려고 했는데...

    구룡포: 커피?

    김두식: 동전이... 없네.

     

    [장면 #3] 

    이미현: 안녕하세요?

    김두식: 네, 안녕하세요?

    이미현: 몇 번, 뵀죠?

    김두식: 아... 오가다 몇 번 뵀습니다.

    이미현: 여기가 오다가다 알 만한 곳은 아닌데...

    김두식: 나도 여기 직원입니다. 제가 외근직이라, 마주칠 기회가 적었나 봅니다. 

    이미현: (악수를 청하며) 아, 정보관리국 이미현이예요. 

    김두식: (화답하며) 김두식입니다.

    이미현: (돌아서서 가려고 한다.)

    김두식: (급하게) 저, 이미현씨. 그... 동전 있습니까? 

    이미현: (다시 돌아서며) 한 잔 뽑아 드릴까요? 

    김두식: 네. 

     

    [장면 #4] 

    김두식: 나, 동전 있습니다. 

    이미현: (미소를 띄우며) 자판기 일 층에 있는데. 

    김두식: 가시죠. 

    이미현: (앞서서 걸어간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장면 #5] 

    김두식: (미소를 띄우며) 민차장이죠? 

    이미현: (당황하며) 역시 알고 계셨네요. 

    김두식: 미현 씨도 제가 알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네요? 

    이미현: 김두식 씨는 언제부터 아셨죠? 

    김두식: 그, 들고 다니는 서류가 매번 같았으니까. 

    이미현: 훗... 하아... 작전 실패네요. 

    김두식: 왠지, 홀가분해, 보이십니다? 

    이미현: 미안합니다. 민차장님이 하달한 업무라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김두식: 예, 이해합니다. 

     

    [장면 #6] 

    이미현: 김두식 씨는, 내가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걸 알았으면서도 왜 나를 피하지 않았죠? 

    김두식: ...

    이미현: 왜요, 내가 예뻐서? 내 얼굴 보고? 

    김두식: 네. 얼굴 보고, 반했습니다. 

    이미현: (뜨거운 커피를 한 번에 들이킨다.)

    김두식: 뜨거운, 데... 괜찮아요? 


    요즘 핫한 드라마, '무빙'을 보다가 대단히 흥미로운 시퀀스를 발견했다. 이미현(한효주)이 윗사람 명령을 받아 하늘을 나는 초능력자 김두식(조인성)을 서서히 꼬시는 시퀀스. 이미현도 초능력자다. 그녀의 재주는 엄청나게 발달한 오감(예컨대, 정교하게 숨겨 둔 CCTV 카메라도 찾아내고, 벽 너머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도 잡아낸다). 안기부 직원 이미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김두식과 친해지되, 방법은 알아서 선택하라는 지시를 받고,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구상, 실천한다.

     

    이미현이 선택한 방법은 김두식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스쳐 지나가기. 무척 어려운 과업이다. 너무 멀리서 지나가면? 김두식이 이미현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 너무 가까이 지나가면? 뭔가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간파당한다. 그러니까 김두식을 꼬시려는 의도는 너무나도 뚜렷한데, 그 어떤 의도도 없는 듯 김두식 시야에 들어갔다가 빠졌다가를 반복해야 한다. 이미현은 김두식이 안기부 건물에 올 때마다 서류 뭉치를 들고 슬쩍 지나가거나 보이는 곳에서 커피를 마신다. 

     

    나는 김두식과 이미현 관계가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와 사회복지사 관계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어째서? 김두식이 가진 주된 초능력은 하늘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능력. 덕분에 적에게 붙잡히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가능하면 사회복지사 레이더 망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 모습과 무척 비슷하다. 한편, 이미현은 침착하고 인내심이 많은 데다가, 오감이 발달해서 주변 상황을 세심하게 감지할 수 있다. 역시, 이런 특성은 세심하게 접근하는 사회복지사와 같다. 

     

    틈만 나면 숨거나 도망가려는 사람과 어떻게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부담을 주면 안 된다'가 가장 중요한 원리.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대상에게 눈도 맞추고 친절하게 웃으면서 가까이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너무 드러내 놓고 접근'하면, 도망치는 사람은 대단히 부담스럽다. 그리고 사냥감이 된 듯한 느낌을 받자마자, 사라진다. 그렇다면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할까? 아니다. 상대방에게 아예 접근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스며들기 혹은 젖어들기


    사회복지사는 바쁘다. 처리해야 할 일도 너무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너무 많다. 그런데 시간은 없다. 그러니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빨리 물어보고, 빨리빨리 알아내고, 빨리빨리 전해주고, 빨리빨리 끝내야 한다. 하지만 상대에겐 초능력이 있다. 빛보다도 빠르게 숨고 도망가는 능력. 그러니 내 마음이 조급한 상태에서 좇아 봤자,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를 뿐.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현실을 무시하라는 말이냐. 뭔가 결과물을 내 놓아야 하는 현실은 어쩌란 말이냐.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자, 오해하지 마시라. 현실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선 현실을 어떻게 무시하나. 애초에 불가능하다. 우리가 기울이는 모든 노력은, 현실이라는 한계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가치나 원칙을 적용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현실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라는 전제를 깔아야만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망치려는 초능력자(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를 붙잡으려고(?) 할 때도, 현실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만 노력하고 시도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미현에게 몇 가지 원칙을 배울 수 있다. 첫째, 부담없이 접근했다. 클라이언트에게 접근하지 않을 순 없다.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부담을 주면 안 된다. 클라이언트에게는 무엇이 부담스러울까? 놀랍게도, 클라이언트는, 그대가 진심으로 눈을 맞추고, 밝고 명랑하게 인사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방식을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다. 상담 원칙을 소개하는 교과서 내용은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진리가 아니다. 특히,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에게는 오히려 틀린 원칙이다. 부담스러우니까.

     

    진심으로 눈을 맞추고, 밝고 명랑하게 인사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방식. 아예 이렇게 접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이런 방식을 기본 설정값(default)으로 두지 말라는 말이다. 이런 상식적인 방식에 대해서 상대가 그대처럼 반응하리라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오히려, 원래 모습보다 훨씬 더 담백하게, 그래서 거의 무관심에 가까워 보이도록 대하면서 시작하라는 말이다. 어째서? 상대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니까. 그에게 갑자기 도망가거나 홀연히 사라질 이유를 주면 안 되니까. 

     

    둘째, 그러나 이미현은 임무를 마음 속에서 지우진 않았다. 이미현이 하달받은 임무는, 어디까지나 김두식을 꼬시라는 임무.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를 가족이나 친구로서 만나지 않는다. 원조전문가로서 분명하게 특정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만난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자연스럽게 접근하면서도 진짜로 자연스러우면 안 된다. 원조전문가로서 임무에 충실한다면, 언젠가는 클라이언트도 진정성을 알아준다. 혹여 몰라 준다고 해도, 감수해야 한다. 전문가니까. 

     

    셋째, 이미현은 감각을 총동원했다. 드라마 속에서 이미현이 품은 능력은 엄청나게 발달한 오감. 이미현 귀는 거의 레이다 수준이다. 너무 예민해서 등 뒤에서 김두식이 걸어와도 마치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움직임을 느낀다. 눈은 또 어떤가. 초고성능 CCTV 렌즈 못지 않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점도 다 구별한다. 어허~ 사회복지사는 초능력자가 아닐세, 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맞다. 당연히 초능력자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뢰 관계를 맺기 위해서 초능력이 필요하진 않다. 

     

    끊어진 팔이 저절로 재생되어서 다시 솟아날 순 없겠지만, 우리가 '이미' 가진 감각 능력을 훈련해서 예민하게 가다듬을 순 있다. 예컨대, 가만히 연애했을 때를 떠올려 보라. 상대가 보이는 모든 표정, 미세한 감정선도 우리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때는 특정한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나도 모르게 가능했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능력은 우리 상상보다 더 많고 더 크다. 심지어 타고난 오감도,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하면 향상되고 좋아진다. 부디, 그냥 못하겠다 말하지는 말자.


    [덧붙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노년에 프랑소와 트뤼포와 나눈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끔씩, 사람들이 저에게 대학 강단에서 영화 제작에 관해서 강의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저는 이런 제안에 거의 응하지 않습니다만, 만약에 응한다면 중요한 조건을 걸 것 같습니다. 바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무성영화를 찍게 하고 토론하는 과제이지요. 영화는 문학이 아닙니다. 영화는 텍스트로 말하지 않습니다. 시각 정보로 말합니다. 지금은 토키 영화 시대이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시각 정보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과연, 1958년에 히치콕 감독이 만든 '현기증' 같은 영화를 보면, 이 양반이 얼마나 대단한 영화 작가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주인공 A가 주인공 B를 몰래 좇는 시퀀스. 대사는 거의 없고, 심지어 음향도 거의 들리지 않는데, 그냥 A가 B를 조용히 좇기만 하는데, 관객 심장은 쿵쾅쿵쾅 마구 뛴다. A에게 B는 늪 같은 존재. 일단 발끝이라도 빠지면 서서히 빨려 들어가서 몸 전체를 삼키는 늪처럼, A가 B에게 빠져든다. 히치콕 감독은 A가 B를 뒤쫓는 동선을 나선형으로 설계해서 추격전을 지켜보는 관객 마음도 심리적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무빙'에서 이미현이 김두식을 꼬시는 전체 시퀀스를 보면서, 영화 애호가로서 감탄했다. 커다란 눈을 대단히 풍부하면서도 섬세하게 사용하는 조인성. 무표정과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는 미소를 정확한 타이밍에 사용하는 한효주. 이 두 사람이 이동하는 동선은 아주 짧다. 특히, 건물 안에서는 뻔한 동선. 하지만 두 사람이 심리적으로 좇고 좇기는 사태를 감독은 대단히 리듬감 있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중간에 류승룡이 웃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그 장면보다도, 조인성-한효주 커플이 대사 없이 보여주는 추격전이 훨씬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내가 가르친 뛰어난 사회사업가께서 들려 주신 이야기: "제가 돕는 청소년이 너무 기특한 행동을 하기에, 저나 제 동료들이나 아주 자연스럽게 물어보게 되었어요. '우와~ 너 어떻게 이렇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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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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