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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의 자녀 A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지식 공유하기(해결중심모델)/해결중심 고급 테크닉 2023. 12. 28. 07:42728x90반응형
(사례관리자 질문)
"자녀 A가 관공서에 OOO 관련해서 신청을 해 주면 좋을 것 같은데, 너무 소극적이시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이유가 있는지 물어도 보고 이리 저리 살펴 보는데, 딱히 납득할 만한 이유는 없어 보여요. 본인이 사는 곳에서 관공서가 너무 멀다, 신청해도 의미가 없다고 계속 말씀하세요. 이 상황이 지속되니 저도 소진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앞으로 자녀 A가 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싶은데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자문을 요청합니다. 구체적으로 해결중심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재원 사회복지사 답변)
클라이언트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기 전에, 사례관리자께서 쓰신 어떤 단어에 대해서 먼저 다루고 싶습니다. 사례관리자께서는 자문요청서에 '소진'이라고 쓰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례관리자께서 '소진되는 느낌'을 받으시는 이유가 뭘까요? 사례관리자께서는 클라이언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을 세우셨고, 그 방향을 (성인) 자녀 A를 제외한 모든 클라이언트 가족원과 대략적으로 합의하셨지요. 이 방향이 실제로 진행되려면 자녀 A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자녀 A는 상당히 소극적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알 수 없는 이유로 핑계를 대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녀 A 때문에 이 가족과 합의한 개입 계획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사례관리자께서는 클라이언트의 자녀 A를 '답답하게' 바라보시는 듯합니다. (사례관리자가 고개를 끄덕임.)
자녀 A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로 말한 내용을 살펴 볼까요? (1) 본인이 사는 곳에서 관공서가 너무 멀다. (2) 신청해도 의미가 없다(실제 상황은, 관공서가 도와 줄 가능성이 50:50 정도임). 우선, 관공서가 아무리 멀어도 뭔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가셔야겠죠. 당연히 가야죠. 그러므로 이 이유는 그다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신청해도 의미가 없다? 이 이유는 조금 더 세심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마도, 이전에도 이 가족을 도우려고 나선 사회복지사가 여럿 존재했을 듯합니다. 모두 이 가족을 도우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했겠지요? 그런데 결국 (이 가족이 기대하는 수준) 이하로 도왔다면? 돕는 손길에 대해서 대단히 실망하고 비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신청이라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사례관리자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겠지요. 그러니 답보 상태에 빠져서 앞으로 전혀 나아가지 못하는 이 상황을 보시면서 '소진된다'고 느끼셨겠지요. 사례관리자께서 품으신 답답한 느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클라이언트 관점에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비유를 들어 볼게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걷기 연습을 하다가 넘어졌습니다. 머리가 깨져서 피가 났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어른이 보기엔, 아이 상황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앞으로 절대로 걷지 못할 정도 상황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다시 걸어보라'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주저합니다. 또 다시 다칠까봐 두려워서 못 걷겠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어른은 답답하게 바라봅니다.
어른 시각에서 보면 아이가 넘어져서 피가 난 상황은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겨우 한 번 넘어져서 다친 일 때문에 다시 일어나서 걷지 못하는 아이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 관점에서 보면 상황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본인이 보유한 걷기 능력과 전혀 상관없이,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영영 걷지 못하겠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겁낼 수 있습니다. 지금 자문 사례에 등장하는 (성인) 자녀 A 상황이 이 상황과 비슷합니다. 사례관리자께서는 '그래, 당신이 힘들다는 사실은 알겠어. 그런데 이 정도 노력도 못할 정도는 아니잖아?' 라고 느끼십니다. 그래서 자문 요청서에 '소진된다'고 쓰셨습니다.
이 지점에서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30대 중반에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일을 겪은 후, 30대 말에서 40대 초까지 약 4, 5년 동안 심각하게 우울하게 살았습니다. 가장 왕성하게 일해야 할 시기에 돈 한 푼 못 벌고 단칸방에서 누워서 겨우 숨만 쉬면서 살았습니다. '폐인'이라는 단어 아시죠? 이 단어를 생각하면 마음에 떠오르는 모습, 바로 그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족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제가 몇년 동안이나 아무 일도 못하고 살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저를 바라보시면서 마음이 어땠을까요? 참담하고, 한심하고, 답답하셨겠지요. 실제로도 '왜 그러고 사냐?'고 여러 번 물으셨습니다. 저는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준 사람이 두 명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군대 친구, 한 사람은 대학 동기였습니다. 두 사람은 성별도, 나이도, 얼굴 생김도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마음은 같았습니다. 왜 저에게 그렇게 대했는지 직접적으로 물어보진 못했지만,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두 사람은 저와 무척 친챘지만, 저를 누구보다도 걱정했지만,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사람이 저와 같은 지점에 섰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최소한 당분간은 어떤 행동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해 준다고 느꼈습니다. 두 사람 눈빛에서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답답해하는' 느낌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해결중심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해결중심상담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셔서 대단히 반갑고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테크니컬한 질문 기술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색하게 들리는 번역투 질문 기술은 지금 이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례관리자께서 '소진된다'고 느끼시는 지금 이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례관리자께서 클라이언트의 (성인) 자녀 A가 느끼는 우울감을 조금만 더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관심을 끊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처럼, 따뜻하게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다만, 한 발만 물러서 클라이언트가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수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다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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