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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턴에서 먹은, 눈물 젖은 자장면 이야기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4. 5.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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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턴에서 먹은, 눈물 젖은 자장면 이야기

    수 년 전, 조금 희한한 계기로 미국에서 2달 간 산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해외 친구들과 언어교환(그들에게는 공짜로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대신 나는 공짜로 영어를 배우는)에 홀딱 빠져서, 수많은(?) 언어교환 친구를 만들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제니퍼. 남편과 함께 미국 동북부(뉴잉글랜드 지방), 캐나다 접경지역인 메인 주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성격도 다정하고 유머도 있는 친구라서 화상 채팅으로 약 석 달을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 친구가 날 더러 미국에 와서 잠시 함께 살지 않겠냐, 고 제안을 해 왔다. 2달 정도 자기 집에서 살면서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쳐 달라는 거였다.

    엥? 뭐라고? 제니퍼는 분명히, "미국 체류 기간 동안 발생하는 모든 비용과 심지어는 국제선 왕복 비행기표까지, 심지어심지어는 비즈니스 클래스로(!)"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심하게 힘든 일을 겪느라 몸무게가 약 20kg이 빠져 있을 때였다. 우울감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어 나가고 있던 중. 이 야릇한 제안에 솔깃했다. 혹자는 여기까지 읽으면, "아니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줄 알고 이역만리 그 먼곳까지 간단 말이오?" 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지만, (1) 난 그때 너무 힘든 상황이라서 그곳에 가서 비명횡사 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2) 석 달간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만약 그동안 보여준 모습이 가식이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악마,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기 때문에 그녀(그리고 그녀의 남편)를 믿었다.

    그렇게 해서 갑자기 떠나게 된 미국. 인천-댈러스-아틀랜타-메인, 이렇게 비행기 여행을 했다. 댈러스에서는 1박을 했는데, 언제 미국에 또 올지 몰라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결중심실천가/강사인 엘리엇 코니를 만났다 - 이 비용도 제니퍼가 모두 대 주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비행기를 탄 끝에, 아담한 크기지만 그래도 국제공항인 메인 주 공항에 내렸다. 천만 다행으로(!) 제니퍼와 그녀의 남편 에릭은 늘 화상 채팅으로 만나던 모습 그대로, 매우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들이었다. 차를 타고 그들의 집으로 가던 길,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제니퍼 부부의 집은 동물 천지였다. 집 밖에 닭이 25마리, 집 안에는 대형견 3마리, 고양이 10마리, 기니피그 5마리, 그리고... 팔뚝만한 들쥐 5마리까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평화주의자, 제니퍼는 (젊은 시절 너무 막 살아서 - 온갖 중독...) 불임이었는데, 이루지 못하는 육아의 꿈을 동물을 키우는 것으로 메꾸는 듯 했다. 아,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전투적인 비건(vigan: 철저한 채식주의자)여서, 계란은 물론 우유도 안 먹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에게 선언했다: "너희들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내가 이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너희들처럼 100%채식 - 즉 비건 다이어트 - 을 하겠다"고.

    (이 글 주제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 집에 머물면서 겪었던 온갖 신나고 행복했던 기억은 생략) 나는 처음으로 완전 채식에 도전하는 셈이었는데, 우왕... 사실은 너무 좋았다. 제니퍼 부부와 함께 완벽한 콩고기의 향연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먹는 콩고기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고기의 종류별로 육질과 식감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최고급 비건 식품이었다. 콩으로 만들었는데 맛은 완전 고기와 똑같았다. 나는 두 달 동안 그들과 함께 완벽한 비건 다이어트를 경험했다: 살은 빠지지 않았으며, 육식이 그립지도 않았다. 기분이나 성격이 이상해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행복했다...

    로 끝났다면 좋았으련만. 나에겐 사정이 하나 생겨버렸다: 한 달이 넘어가면서부터... 한국 음식, 특히... 김치... 그 중에서도 남도 출신 어머니께서 온갖 젖갈을 풍부하게 집어 넣어서 만드신 배추 김치와 깍두기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아서, 내가 진짜로 특이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도 분명히 한국 사람이었고, 무엇보다도 우리 어머니의 김치를 그리워하는 완벽한 한국 사람이었다. 김치는 한 가지 상징적인 사례에 불과했고, 각종 문화적 차이를 느끼면서 그토록 짜증나고 싫었던 한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제니퍼 부부가 보스턴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물론 나도 함께 갔다. 자동차를 끌고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서 약 1,000킬로 미터 정도를 여행하는 코스였다. 우와! 정말 희귀하고 훌륭한 경험이었다: 내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 보겠는가! 당시가 크리스마스가 포함된 연말 시즌이어서, 나는 자동차 여행을 통해서 미국 문화를 진하게 맛보았다: 이때 가 보았던 곳 중에서는 메이 플라워 호가 서 있던 곳과, 어느 유명한 인디언 추장 동상이 대서양을 바라보며 늠름하게 서 있던 해안가, 그리고 침엽수가 끝없이 펼쳐져 있던 미국 동북부 숲길이 특별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각설하고, 우리는 보름 간의 드라이브를 거쳐서 아름다운 도시, 보스턴에 도착했다. 그런데... 보스턴에 진입하면서부터 내 마음 속에서는 한국 음식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몸이 닳고 있었다. 몸이 닳다...는 표현이 맞았다. 한국 음식이 너무나도 그리워서 잠이 안올 정도였다. 물론, 제니퍼에게는 말할 수는 없었다. 걔한테는 돼지고기 볶음이 들어가는 자장면 같은 한국 음식은 살인자 집단이나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 몰래 계획을 세웠다. 보스턴에는 한국 유학생이 많을 것이고, 따라서 한국 음식점도 있을 것이니, 대략 찾아보고 혼자 다녀와야겠다! 

    검색을 해 보니 가장 가까운 한국 자장면 집이 걸어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 밖에 있었다. 간다! 무조건 간다! 마음 속으로 다짐을 하고 길을 나섰다. 호텔 밖으로 몰래 나와 보니 마침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보슬비가 내리는 보스턴 거리를 걷다가, 허름한 전철을 탔다가, 또 걸으면서 자장면을 먹을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졸라 행복했다.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자장면 그릇을 떡, 하고 받으면 곧바로 느껴질 춘장 향기와 윤기가 좔좔좔 흐르는 면발, 그리고 보기만 해도 흐뭇한 완두콩/오이채 고명까지... 이 그림을 그리며 한 시간 반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착한 자장면집. 우왕... 진짜로 거기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서 오세요!" 라는 인사가 들린다. 앳된 알바생이었다. 아마도 내가 동양인처럼 생겨서(이곳은 거의 한국 사람들만 올 테니) 한국말을 한 것 같다. 우왕... 이미 여기서부터 내 마음은 울고 있었다: 졸라 반가워서. 자리에 앉아서 자장면 곱배기를 시켜 놓고, 나는 흥분한 중딩처럼 다리를 떨면서 자장면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는 자장면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자장면님을 경배하고 영접하려고 온 것이었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 한국 문화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확인하러 온 셈이었다. 

    음... 그리고 입에 넣었던 첫 젓가락질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하겠다: 왜냐하면, 그 감동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도저히.

    한국 식당답게, 지긋지긋한 팁은 신경쓰지 않고 정가를 내고 나왔다. 밖에는 여전히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보슬비를 마치 한 방울씩 세듯이 내 몸에 기쁘게 받아 흘리면서, 나는 90분 동안을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어쩌면 그 사이에 자장면은 모두 소화되었을 수도 있지만, 너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정말로 한국 사람이구나!" 내 뺨에는 어느새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것은 순수한 감격의 눈물이었다. 슬퍼서 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기뻐서 난 것도 아니었다. 뭔가에 순수하게 압도되었을 때, 나오는 물이었다.

    여기까지, 가 보스턴에서 먹은, 눈물 젖은 자장면 이야기였다. 그대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그대가 여턔까지 먹어 보았던 가장 맛있었던 자장면 이야기를 나에게도 들려 주면 좋겠다. 나처럼 특별한 사연이 없어도 좋다. 당신 기억 속에서 영원이 살아 있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그 맛에 대해서, 부디 짧게라도 나누어 주면 좋겠다. 당신의 나눔 속에서 오늘 같은 일요일 아침,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그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함께 확인하고 싶다.

     

    사진: 작년 5월, 부산에 가서 먹었던 자장면. (졸라 맛있었다.)

    덧붙임: 그래서, 제니퍼와는 어떻게 되었냐고? 약간 허무하지만 절교를 당했다. 내가 귀국하는 길에 캐나다 몬트리올에도 들렀는데, 그곳에서 먹었던 자장면 사진을 보더니, 채식을 포기했다고, 자기들을 기만했다고(아니, 내가 언제 채식주의자가 되겠대?), 단칼에 절교를 선언했다. 쩝... 

    덧붙임2: 내가 또 다른 언어교환 친구인 크리스탈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페이스북 포스트.

    며칠 전에 크리스탈이 내게 물었다.
    "자장면 좋아하세요?"

    그래서 답했다: 
    "그럼요, 자장면 안에서 살 수도 있는 걸요."

    생각해 보니, 나는...
    자장면 안에서 춤도 출 수 있고,
    자장면 안에서 수영도 할 수 있으며,
    자장면 안에서 공부도 할 수 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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