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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리고 나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4. 16. 21:07728x90반응형
그날, 그리고 나.
그날, 나는 복지관 식당에서 처음 그 TV 화면을 보았다. 바다에 뭐가 떠 있는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저게 뭐지? 배란다. 여객선이란다. 경기도 어디에서 제주도 가던 배였는데, 사고가 나서 엎어졌단다. 에고… 저걸 어째… 근데, 뭐 이리 생중계도 하고 있는데, 빨리 구하겠지.
다음날부터 복지관 동료들이 울기 시작했다. 회의 때도 울고, 의자에 앉아서도 울고, 복도에서도 훌쩍이고, 카톡 방에서도 울고, 계속 울었다. 무슨 일이야? 출근해서 물었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았는데, 사람은 거의 못 구했단다. 배와 같이 가라앉은 사람들이 전부 학생들이란다. 수학여행 가던.
나는 울지 못했다. 너무나 부끄럽지만 단 한 방울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유컨대, 나도 물 속에 가라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몸은 살았으되, 영혼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누굴 돌아볼 수 있겠는가.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이미 몇 번쯤은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숨만 쉬는 송장처럼 살고 있었다. 솔직히, 머리 털 나고 광화문에 몇 백만 명이 모이는 장면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부끄러운 독재자의 딸이 쫓겨나고 선거를 새로 하고, 새 대통령이 뽑히고, 몇 번의 봄이 오고, 또 갔다.
그런데, 재작년 가을부터인가, 갑자기 세월호 참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느끼게 되었다. 세월호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주체하지 못할 눈물을 흘렸다.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고장이 난 것처럼 눈에서 물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제서야 내가 회복되기 시작했던 거였다.
공감이란 무엇일까? 나는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위인이었다. 스스로, 너 같은 게 무슨 상담이냐, 싶을 정도로 심각했다. 주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내담자들의 인생사를 다루고 감정을 다루겠냐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을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어내고 난 후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마음이 헤아려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눈치 없이 했던 내 모든 잘못과 어리석음과, 유치함과 찌질함이 전부 인식되고 해석되기 시작했다. 너무 어리석어서 놀라운 정도로 잔인한 나 같은 사람을, 등 뒤에서 욕하면서 원망했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한 가지. 내가 실은 공감 능력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는 것. 그동안 내 자신의 문제에 사로잡혀서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지, 내가 정말로 끔찍한 괴물은 아니었다는 것. 잔인할 수는 있었겠지만 개선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있는 영혼은 아니었다는 것.
이런 깨달음을 눈물 속에서 얻었다. 눈물의 계곡, 그 안 깊은 곳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컴컴한 동굴 속에서, 나를 만났다. 안쓰러운 내 모습을 보았다. 두려워서 움츠려 든 앙상한 팔을 보았다. 무서워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연약한 다리를 보았다. 창백한 표정을 한, 유령 같은 나를 만났다.
작년 봄, 목포에 간 적이 있다. 노란색 리본이 가득 달린 철조망 너머로, 흉측한 모습의 세월호를 보았다. 사진 찍길 좋아하는 나이기에, 평소 같았으면 여기 저기를 이미 찍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차마 찍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끝나지 않는 장례식장에서 무슨 사진을 찍나. 그게 사람인가.
그러니까, 남들은 2014년 봄, 여름에 세월호를 생각하면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서 흘렸던 눈물을 나는 작년이 되어서야 흘릴 수 있었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그 원통한 영혼들을 위해서 울어줄 수 있는 게 어디냐. 우는 것, 울어 주는 것이 바로 위로인데.
갑작스러운 죽음. 신체의 죽음이든, 관계의 죽음이든,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은 현실을 부정하게 만든다. 일이 벌어지고 난 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도무지 좇아갈 수가 없다. 아마도 아이들의 부모님들께서는 평생 동안 그 바다에 난파된 상태에서 숨만 쉬며 떨고 계실 거다.
억울하게 가라앉은, 그리하여 원통한 영혼 수백 제위를 위해 고개 숙여 위로와 애도의 기도를 올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들이 구조되지 않은 이유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래야 그런 끔찍한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우리도, 언제 그런 일 당할지 모른다.'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 > Personal Sto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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