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크리스탈, Oppa에게 꿀 하나만 더 보내 다오."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1. 3. 2. 10:55
    728x90
    반응형

    내 미국 동생, 크리스탈은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산다. 한국인 이민 2세대인 남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크리스탈은 무려 Zoom 회사(온라인 회의 도구로 유명한)의 정직원으로 일한다. (성공한 회계사로서 주로 IT 기업에서 인하우스 회계사로 일하는데, 최근에 핫한 Zoom 미국 법인에 스카웃이 되었단다.) 성격을 말하자면 외적으로는 활달하고 명랑하며 친절하고, 내적으로는 독립적이고 침착하며 강인하다. 

    우리는 2015년에 서로 알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인생의 큰 고난을 만나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멀어져 있었다. 구체적으로, 한국 사람들과는 직계 가족과 아주 가까운 친구 외에는 연락을 끊고 살았다. 대신, 외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영어도 공부할 겸, (무료) 언어교환 사이트르 통해서 한국어를 배우고(연습하고) 싶어하는 외국인을 찾았다. 크리스탈도 그 중에 한 명이었다.

    헌데, 이야기를 깊게/길게 나누어 보니 크리스탈은 개인적으로 특별한 역사가 있었다: 크리스탈은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간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서, (실질적인) 고아라는 말이다. 물론, 크리스탈은 성장한 후 한국에 여러 번 와서, 혹은 수 년 동안은 아예 한국에서 영어교사로서 일하면서 생모를 찾으려고 했단다. 끝내 실패하긴 했지만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지금부터 5년 전, 수 개월 동안 카톡 등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크리스탈이 한국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한국에 오면 꼭 만나자고 청했고 그녀는 좋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만났다. 그녀를 어디로 데리고 갈꼬. 나는 과천 현대미술관을 선택했다. 그곳엔 미술관 뿐만 아니라 동물원도 있고 놀이 동산도 있어서 손님을 맞이하는데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그녀는 과천현대미술관을 좋아했다!)

     

    2019년 5월에도 크리스탈은 가족과 함께 한국에 방문했고, 나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 주었다. 우리는 활기찬 홍대 거리를 걷고, 한정식 집에서 불고기를 먹고, 맛있는 한국 전통차를 마셨다. (그날, 돈 좀 썼다.) 그런데 헤어지기 전, 크리스탈이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용기에 꿀이 담겨 있었다: 크리스탈이 살고 있는 애틀란타는 미국 남부 조지아 주에 위치하는데, 조지아주는 유명한 꿀 생산지다.

    우와! 무려 Unfiltered Raw Honey였다. 가공식품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꿀, 벌집에서 채취한 자연 그대로 용기에 담은 100% 꿀이었다. 미국에서 매긴 등급이 A라고 하니, 실제로도 정말 좋은 꿀이었다. 나는 크리스탈에게서 받은 꿀 두 통 중 하나를 어머니께 드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먹었다. 예컨대, 술 마실 때 담백한 비스켓에 꿀을 발라 먹으니 말 그대로, "끝내주는 맛"이었다. 

    최근에 크리스탈과 대화를 하던 중에 갑자기 그 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말했다: "크리스탈, Oppa(오빠)에게 꿀 하나만 더 보내 다오. 뜬금없이 부탁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이를 생각하면 너한테 부담없이 이 정도 부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크리스탈은 "알았어요, Oppa" 라고 답하면서 아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물어왔다. "크리스탈, 나는 그냥 꿀을 조금 더 먹고 싶을 뿐이야. 그냥 꿀만 보내."

    꿀 발송이 조금 늦어지는 것 같아서 왠지 불안하긴 했다. 꿀 외에 값 나가는 선물을 더 넣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지 말라고 말을 하려다가, 우리가 길게 인연을 이어갈 사이니, 크리스탈이 선물을 조금 더 보내준다고 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언젠가는) 한국에 올 텐데, 그때 여러 모로 잘 맞이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리스탈이 바뀐 우리집(신혼집) 주소를 물어 왔을 때 흔쾌히 알려주었다.

    그런데... 2 주일 전, 인천 페덱스에서 전화가 왔다. 미국에서 뭔가 왔는데, X-ray 촬영 결과 보낸 사람(즉 크리스탈)이 적은 서류와 달리 꿀이 5병이라서 뜯어 봐야겠단다. "에고... 이걸 어쩌나. 세금 내게 생겼군."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뜯어서 보라고 말했다. 이미 X-ray 촬영까지 했다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페덱스에서 또 전화가 왔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기가 막혔다: 

    페덱스 맨: "손님, 소포를 열어 보니 꿀이 진짜로 5병 들어 있네요. 그리고 가방 두 개와 지갑 하나, 화장품 몇 개가 들어 있어요.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닌데, 꿀이 관세가 많이 나와서..."
    나: "얼마인데요? 세금이 붙어봤자 10% 정도 아닌가요?"
    페덱스 맨: "아뇨, 다른 물건은 그 정도인데, 꿀은 관세율이 240%라서요..."
    나: "네? 240%요? 그러면 만약에 꿀 가격이 10만원이면, 관세를 24만원 내야 한다고요?"
    페덱스 맨: "맞습니다."
    나: "아이고야..."
    페덱스 맨: "그래서, 이 소포를 받지 않으실 거면, 보내신 분에게 연락을 드려서 확인한 후에 서류를 받아서 미국으로 보내게 됩니다. 조금 복잡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낸 세금은 총 20만원이었다. 꿀 가격이 아주 높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세금/관세) 폭탄은 폭탄이었다. 졸지에 예상치 못한 세금을 20만원이나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서 속이 무척 쓰렸지만, 보낸 사람 마음을 생각하니 반송시키거나 못받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런 저런 사정을 모르고 있던 아내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세금이 조금 많이 나오긴 했지만 그냥 정직하게 내고 받자고 설득했다. 

    며칠 후, 페덱스에서 전화가 또 왔다: 

    페덱스 맨: "손님, 이거 소포에 붙은 세금이 총 20만원인데, 받으실 거죠?"
    나: "네, 지난 번에 그렇게 말씀 드렸어요."
    페덱스 맨: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개인이 물건을 들여오는 경우 150불까지는 세금이 안붙거든요. 대개 사람들은 비싼 물건을 받으시면서도 서류에는 1불이라고 쓰시거든요."
    나: "그렇군요. 이제 알았네요. 하지만 저는 내야 할 세금은 그냥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금을 피하려고 축소 신고하는 게 통상적인 일이라고 해도요."

    우여곡절 끝에 크리스탈이 Oppa(오빠)에게 보내준 소포를 받고야 말았다! 두근두근~ 가슴팍을 부여 잡으면서 소포를 열어 보니, (1) 신선한 조지아 주 꿀 5통, (2) 우아하고 아름다운 하얀색 여성용 백 1개, (3) 편하게 메고 다닐 수 있는 검은색 남성용 백 1개, (4) 튼튼하고 멋진 남성용 소가죽 반지갑 1개, (5) 이브생로랑 등 고급 립스틱 3개, 이렇게 풍성하게 선물이 들어 있었다. 에고~ 크리스탈~ 

    그래도 내가 세상을 헛 살지는 않았나보다. 크리스탈처럼 좋은 친구를 두었으니까. 진실하게 자기 생활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는 친구니까. 우리 관계는 꿀 몇 통이나 고급 백 따위로 환원될 수 없다. 이 정도 선물은 나도 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줄 수 있으니까. 귀한 친구에게 돈을 쓰는 게 별로 아깝지 않으니까. 

    크리스탈은 (남편 직장 때문에 지금 당장은 올 수 없지만)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살고 싶다고 했다. 생물학적인 어머니를 찾지 못해도 상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미국인으로 성장해서 정신 세계도 미국인에 훨씬 더 가깝지만, 이상하게 한국이 끌린단다. 그리고 한국에 온다면 우리집 옆집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서로 편안하게 집에 오가고 삶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한다. 

    언젠가,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어서 국제 여행이 다시 재개되면 꼭 크리스탈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우리 집에 부르고 싶다. 크리스탈 가족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먹이고 그윽한 향기를 내는 차를 함께 즐기고 싶다. 지구 상 어느 곳에서 어떤 이름으로 살아도 지울 수 없는 한국인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다. 정, 이라는 문화적 DNA를 서로 주고 받고 싶다. 꿀차처럼 깊은 정서를 나누고 싶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jaewonrhie@gmail.com)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