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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과 알약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1. 3. 24. 11:04728x90반응형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이것은 우선적으로, 전통적인 가부장이셨던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막내 아들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유명할 법한 이야기 한 토막:
나는 계란 후라이가 아예 처음부터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음식인 줄로만 알았다. 어릴 때 우리집은 상당히 가난했지만 아침마다 계란 후라이는 두 어개씩 올라왔던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아버지 드시라고 만든 계란 후라이 하나는 늘 내 목으로 넘어갔다. 아버지께서 늘 막내 아들을 무릎에 앉히시고는 귀한 계란 후라이를 먹이셨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 누나들은 십 수년 동안, 아마도 마음 속으로, 나를 무슨 원수 마냥 생각했을 거다.
어쩌면, 내가 첫 결혼을 실패하고 오랫동안 깊은 수렁에 빠져서 방황을 했던 이유도,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20대 중반 이후 오랫동안 어른이 되고 싶었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어른으로 대접을 해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래서 망했다. 당연히, 타인의 인정과 대접을 받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내가 다시 재혼을 결심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존재만으로도 영혼을 울리는 진정한 짝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책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끼는 사람을 진정으로 품고 편히 쉬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오빠! 저는 그냥 오빠, 라고 부를래요."
나는 우리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고, 더구나 연인/부부 사이에 무슨 "오빠"냐며 그냥 "재원씨" 라고 부르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연애할 때부터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명실상부하게 오빠 노릇을 했느냐? 솔직히 자신이 없다. 여러 모로, 생각하는 면에서나 행동하는 면에서 아내가 나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사람이다. 결혼하고 함께 살을 부비며 살다 보니 점점 더 체감하게 된다: 그녀의 따뜻함과 배려심.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만 생각하던 사람이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욕실에 무심하게 걸려 있던 뽀송뽀송한 수건. 아내가 먼저 씻고 나서 나를 위해서, 나 쓰라고 걸어둔 수건이었다. 부끄럽지만, 이 사실을 알아채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 그렇지. 인간이 하는 일 치고, 그냥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는 법이지. 부끄러웠던 만큼, 나도 아내에게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 행동을 따라하게 된다.
이건 또 뭔가, 싶었다: "왜 알약을 안 먹고 갔지?" 난임 클리닉 의사 선생님이 준비 기간에 먹으라고 권장하신 약. 그래서 건강관리 잘 하시는 사모님께서 매일 빼 먹지 않고 챙겨 드시는 알약. "아이고~ 그러니까 이게 나 먹으라고 챙겨 놓으신 거였구나!" 다시 한 번 더, "그렇지. 인간이 하는 일 치고, 그냥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는 법이지." 인간은 따라쟁이다. 사랑을 받으면 사랑하게 되고, 배려를 받으면 배려를 하게 된다. 그래서 나도 따라한다.
역시, 사랑은 위대하다. 이기적인 나도 변한다. 계속, 바뀌고 싶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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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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