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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땅콩이 이야기 들려 줘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5. 2. 11.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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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세 줄 일기

    2025년 2월 10일, 목요일. 날씨: 걷다 보면 찬바람이 내 귀를 후벼 파서 시렵다 못해 아프다

    (누가/무엇) 1. "아빠, 땅콩이 이야기 들려 줘." 잘 시간, 딸이 또 그 이야기를 꺼내란다.
    (내용/의미) 2. 그래서 오늘도 이야기 속에서 땅콩이와 함께 온 세상 천지로 돌아다닌다.
    (생각/감정) 3. 내가 지어내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딸이 사랑하니, 웃기면서 신기하다.


    <확장판>

    "아빠, 땅콩이 이야기 들려줘." 이제 잘 시간, 딸이 또 '그 이야기'를 꺼내란다. 땅콩이가 누군가? 예전에 옆집에 살던 작고 귀여운 갈색 강아지다. 그집 주인 아주머니는 땅콩이를 앞세워서 산책 가실 때 엘리베이터에서 내 딸 봄이를 만나면, 귀엽다며 종종 배춧잎(만원권 지폐)을 지갑에서 꺼내 주셨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시는 강아지 땅콩이를 우리 봄이가 많이 예뻐하고 좋아하니 흐뭇하고 좋으셨겠나 보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아주머니는 그냥 우리 가족을 만났을 때 가볍게 인사 나누고 대화 몇 마디 나누는 정도까지만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셨다. (솔직히, 우리 마음도 비슷했다.) 우리는 아주머니 이름도 모르고 몇 년을 지냈다. 그리고 새집으로 이사왔다. 그런데 봄이는 땅콩이가 무척 좋았나 보다. 밤마다 아빠 품에 파고 들면서 땅콩이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요구했다. 엥? 땅콩이가 갈색이고 작은 강아지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음... 아빠가 별 수 있겠나. 딸내미가 당장 땅콩이 이야기를 꺼내 놓으라는데. 나는 땅콩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전혀 아무런 건덕지도 없는데 완전히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어서, 아내와 함께 자주 놀러 가는 '보람 어린이 놀이터'에 땅콩이가 함께 놀러간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미 경험한 이야기에 가상 인물 땅콩이를 슬쩍 끼워 넣었다. "그래서, 봄이는 땅콩이랑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탔어. 땅콩이랑 타니까, 너무 재미있었어!"

    그런데 봄이가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조르니, 금방 밑천(?)이 떨어졌다. 봄이는 아직 어리니(만 3세) 그냥 익숙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겠으나, 허구헌 날 보람 어린이 놀이터에 놀러간 이야기만 들려줄 순 없잖은가. 그래서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전래 동화나 유명한 외국 동화 이야기에 봄이와 땅콩이를 데려가 보았다. 예컨대, 신데렐라 이야기에 등장하는 호박 마차를 사람이 된 땅콩이가 몰고, 봄이가 시종이 되어서 신데렐라를 안내하는?

    결과는? 대성공! 봄이는 아빠가 지어내는 온갖 '말도 안 되는' 땅콩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내가 어떤 재미있는 장면을 신나게 묘사하면, 희미하게 비치는 조명에도 봄이가 웃는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무서운 이야기를 꺼내면 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무서워한다. 봄이 표정이 너무 생생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 딸이 아빠 이야기 속에서 진짜로 땅콩이를 만나는구나. 진짜로 신나고 재미있구나. 이야기 속에서 놀면서 자기가 경험한 일을 다시 경험하고 모든 생각과 감정을 재확인하는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 봄이는 내 이야기를 수동적으로만 듣지 않고 가끔씩 자기가 덧붙이고 싶은 말을 꺼내거나 질문을 던진다. "아빠, 땅콩이가 무서웠쪄?" 아! 이 순간이 무척 중요하다. 봄이가 꺼낸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응. 땅콩이가 무서웠쪄. 봄이는? 봄이는 어땠어?" 그러면 봄이가 자기 나름대로 품은 생각/감정을 말하거나 이야기를 새로운 장면으로 끌고 간다. 나는 아이가 상상력을 발휘하는 이 순간을 흘려 버리지 말고 머물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가지를 뻗는 순간이니까. 성장점이니까.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존재다. 인간은 이야기 속에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새롭게 만들어 간다. 내 딸도 이야기 속에서 성장한다. 아직은 꿈과 현실을 완벽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나이. 아빠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다시 느낀다.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새롭게 느끼고 알게 된 세상을 자기 일부분으로 빨아 들여서 수용한다. 흠... 오늘은 봄이, 땅콩이와 함께 어떤 곳을 여행할꼬? 아빠는 마음이 설렌다. 아무 생각도 억지로 떠올리지 말고, 그냥 봄이 손을 잡고 슝~ 날아갈 테다!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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