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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 녹음했어요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5. 5. 22.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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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영 사회복지사, 세 줄 일기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날씨: 야식을 주문할지 말지 고민하는 내 마음처럼 비가 오락가락 내린다.)

     

    (누가/무엇) 1. 입원한 클라이언트가 오늘만 8번째 사무실로 전화했다.
    (내용/의미) 2. 병실로 올라가서 '저는 OO님 개인 비서가 아니예요'라고 말하고 나왔다.
    (생각/감정) 3. 내가 너무 했나? 아니야, 잘했어. 이 일은 내 영역이 아니야.


    <확장판> 

     

    제목: 이거 녹음했어요

     

    글쓴이: 김제영(인천 현대유비스 병원, 2025) 

    첨삭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5) 

     

    띠리리리~ 띠리리리~ "안녕하세요. OOO병원 사회복지실입니다." "저, 강OO인데요." 클라이언트의 이름을 듣자마자 한숨부터 나온다. 오늘만 벌써 8번째 전화하셨다. 병원비를 알고 싶어서, 서류를 요청하고 싶어서, 보험금액을 알고 싶어서 등 이유도 참 다양하게 대신다. 병원에 자주 입원한 환자여서 문의 창구가 어디인지 뻔히 아는데 자꾸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신다. 마지막 통화에서는 나에게 본인 보험금 청구를 알아서 하도록 요구하셨다. 전화를 끊고 병실로 올라가서 클라이언트에게 '저는 강OO님 개인 비서가 아니예요'라고 말하고 나왔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일주일 중 월요일이 제일 바쁘다. 환자들은 휴일 동안 아파도 참았다가 병원이 문을 열자마자 여가 가지 증상을 가지고 내원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전화가 빗발치고 노크 소리가 쭉 이어져서 커피도 마시지 못하고 정신이 없는데 자꾸 전화를 걸어 오니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아이고.

     

    사무실에 앉아서 '내가 너무했나?'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서 노크한다. "안녕하세요. 김OO 보호자인데요." 익숙한 장소에 들어오는 사람처럼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길래 친한 사람인 줄 알고 아는 척을 하려 했는데 처음보는 얼굴이라서 당황했다. "아! 네~" 하고 대답하며 생각해 보니 목소리가 너무 익숙하다. 이 보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시청과 통화한 내용, 동생과 통화한 내용, 환자인 아버지와 통화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내가 절차를 안내하면 전화를 끊으면서 늘 "이거 녹음했어요"라고 말했다.

     

    '오늘도 녹음하려나?' 생각하면서 자리를 안내했다. 의료비지원 절차를 다시 설명하고, 2일 후 퇴원일정과 수속절차, 퇴원 후 재활계획에 대해 상담했다. 오늘도 상담했다기보다는 보호자 지시 사항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해야겠다. 보호자는 본인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일방적으로 이야기했고 나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퇴원과 지원 절차를 안내했다. 녹음을 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녹음은 하지 않았고 2일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보호자가 사무실 문 밖을 나서자 다시 한숨이 난다. 내가 지금 무엇을 했지? 환자를 도우려 상담을 진행했는지, 나를 방어하기 위해 작전을 수립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나중에 보호자가 이러 저러한 이유로 꼬투리를 잡을까봐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단어를 신중히 골라서 말했다. 이게 맞나? 상담을 복기하면서 나 자신이 창피해졌다.

     

    새로운 클라이언트는 새로운 환경이기에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서 상담 경력을 쌓아도 새로운 환자 앞에서는 늘 초보가 된다. 그래서 상담일지를 쓰거나 복기하면서 늘 '이렇게 말할 걸' 하고 후회한다. 당당하게 베테랑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직도 나는 한참 더 배워야 한다. 

     

    모두 퇴근하고 환자도 없는 불꺼진 로비를 보니 내 마음도 다시 차분해졌다. 환자도, 보호자도 어렵고 힘들어서 나에게 문을 두드렸으니 내가 더 이해하고 잘 해야지. 나는 비서일 수도 있고, 의료비지원 창구 직원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볼펜을 들고 강OO님 보험 청구서류에 인적사항을 적은 후 계좌번호와 싸인을 받으러 병실로 올라갔다. 강OO님은 옆으로 누워서 한 쪽 발을 다른 한 쪽에 올려놓으신 채로 최소한 한 달은 씻지 않았을 것 같은 발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나를 보고 반갑게 웃으신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울보. 김제영 선생님을 떠올리면 '눈물'이 먼저 생각납니다. 수업 중에 동료가 쓴 글을 들으며 우시고, 본인께서 쓰신 글 읽으며 우시고, 소감을 말하면서 또 우시고. 본인 말씀처럼, 겉모습은 전형적인 도회녀로서 모닝 커피를 즐기며 세련되게 걸어가실 듯한데, 실제로는 마음이 약해서 작은 일 하나를 못 넘기시고 우시죠. 그래서 울보가 딱 맞습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칭찬입니다. 사회복지사가 순수하고 마음 약하면 오히려 칭찬해야죠. 우리는 마음으로, 인격으로 일하니까요. 진흙 속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 맑고 곱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이 세상엔 오늘도 수많은 김제영이 매일 맑고 곱게 피어난다고 믿습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우면서 때로는 (속으로) 화를 내고 짜증도 내며 좌절하지만, 결국엔 곱게 미소를 지으며 사람 손을 붙잡아 끌어 올리잖아요. 

     

    김제영 선생님, 병원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 솔직하면서도 따뜻하게 잘 써 주셨습니다. 선생님 가시는 길을 응원합니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김제영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김제영 선생님께서는 인천사협 '성숙을 담는 글쓰기' 클래스(제 3기)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세 줄 일기, 이렇게 씁니다(다양한 사례와 원리)>

     

    세 줄 일기, 이렇게 씁니다(다양한 사례와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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