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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례관리가 싫었다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5. 5. 21. 05:51728x90반응형
제목: 나는 사례관리가 싫었다
(부제: 어쩌면 동희님은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허인옥(성산종합사회복지관, 2025)
첨삭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5)
나는 ‘사례관리’ 업무가 싫다. 천성이 사람에게 관심이 적을 뿐더러, 전 직장에서 아동학대 가정을 도우며 사람들에게 자주 크게 데였다(?). 그래서 징글징글했다. 그러나 동희님(가명)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작년에 은둔고립 중장년을 위한 볼링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당시 동희님은 우리 복지관 사례관리 당사자였는데, 동희님 담당 복지사가 내게 동희님을 추천해 주었다. 동희님은 한때 운동을 좋아했지만 여러 사유로 고립되어 살아가신다.
동희님과 몇 차례나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모르겠다. 몇 주가 지나도록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말하지 않으셨으니까. 참여한다고 말했다가 또 도저히 못 가겠다고 말했다. 온갖 정성을 담아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 빨리 계획서 써야 하는데’, ‘한 명이라도 더 모집해야 하는데’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동희님은 무척 수다스러우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살고 싶다는 의지가 사라졌단 이야기, 하루 한 끼 라면만 먹는다는 이야기, 공황장애로 인해 새소리도 듣기 힘들어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일은 당연히 하지 않고 그나마 복지관에 반찬 가지러 갈 때 외출한다고 말한다. 상황을 들으니 참여를 번복했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어쩌면 동희님은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프로그램이야 진행되든 말든’ 이런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한 사람이 고립되어 이렇게나 오래 살았는데, 어떻게 바로 누군가를 만나서 볼링을 칠 수 있을까? 나라도 힘들겠다 싶었다. 동희님과 통화를 끊기 전 말했다.
“우리 볼링공만 잡아보고 그냥 집에 가요.”
“...(정적) 그래도 돼요?”
“그럼요. 그것도 힘들면 그냥 볼링장만 슬쩍 보고 가도 돼요.”
동희님은 이 말에 용기를 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년 일 년 동안 진행한 볼링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으셨다. 그리고 활동이 마무리 될 쯤 내게 말해주셨다. “그때 선생님 말씀을 듣고 제가 변했어요. 제게 강요하지 않으시고, 마치 잔디로 만든 푹신한 계단을 깔아주신 느낌이 들었달까?” 그리고 올해, 동희님은 볼링 모임 언제 시작하는지 연초부터 전화하고 계신다.
나, 어쩌면 사례관리 좋아할지도?
<이재원 선생 피드백>
허인옥 선생님께서는 아직 자신을 충분히 모르시는군요? 저도 제가 천성적으로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뇨! 그렇지 않았어요.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을 뿐. 천성적으로 사람에게 관심이 없으면, 사람을 돕는 일을 수 년씩 지속할 수 없어요. '사람에게 관심있다' 개념도 한국에선 너무 단일하다고 봅니다. 맞아요. 사람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은 대단히 다양합니다. 그러니 누굴 겉으로만 보고 '쟨 사람에게 관심 없구나' 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물론, 스스로도요.
글을 쓸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예쁜 문장? 표현력? 아닙니다. 저는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구조를 탄탄하게 짜고 그 위에 내용을 얹으면, 집필하면서 삼천포로 빠질 가능성도 줄어들고, 군더더기 없이 날씬하면서도 풍성하게 쓸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글처럼요. 네, 아주 잘 쓰셨습니다.
‘모르겠다. 프로그램이야 진행되든 말든’ / “우리 볼링공만 잡아보고 그냥 집에 가요.”
허인옥 선생님께서 글에 보석을 박아 두셨어요. 반짝반짝 빛납니다.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하니, 한 사람이라도 더 모아야 해서, 모집 자체에 집착했다면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셨겠지요? 허허실실. 네, 그렇습니다. 변화는 우리가 만들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 손을 잡는 당사자께서 만드십니다. 내민 손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구나, 잡으시려면 용기가 필요하겠구나,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부담스러우실까, 이렇게 상대방 처지에 서서 고민하시고, 오히려 한 발 물러서시니 동희님께서 오히려 한 발 다가오셨습니다.
글이 겉모습도 훌륭한데, 글에 담긴 내용은 더욱 훌륭합니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허인옥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허인옥 선생님께서는 인천사협 '성숙을 담는 글쓰기' 클래스(제 3기)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세 줄 일기, 이렇게 씁니다(다양한 사례와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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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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